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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21. 2020

떡볶이는 나의 힘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

  <2부 떡볶이>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선생님은 떡볶이를 선택할 정도로 떡볶이를 좋아한단다.”

3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제일 어려운 순간은 첫 만남에 나를 소개하는 것이다. 첫 만남이니 나에 대해 멋지게 설명하고 싶은데 정작 나에 대해서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래서 실없이 이런 말이나 내뱉는다.


 길거리에 떡볶이 집은 정말 많다. 대한민국에서 떡볶이에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흔한 떡볶이를 왜 이렇게,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걸까.

 일단 내가 처음 떡볶이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파는 컵볶이였다. 90년대생은 다 공감할 것이다. 종이컵에 담겨 있는 500원짜리 떡볶이. 그 떡볶이는 달달했다. 떡볶이는 맵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컵볶이는 달달한 맛이 비율로 따지면 80퍼센트 정도였다. 한입 베어 물면 달달한 맛이 먼저 확 느껴지고 쫄깃한 떡이 씹혔다. 컵볶이의 매력은 적은 양이다. 종이컵에 많이 담아봤자 5~6개 남짓한 떡이 담긴다. ‘하나만 더!’라고 생각하는 순간 종이컵 바닥에 깔린 국물만이 보인다. 그 시절 달달했던 떡볶이를 생각하면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기억은 초등학생 시절 나다. 달달했던 떡볶이와 달리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썩 유쾌하게 보내지는 못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는 속도가 느렸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 친구, 내 편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게 이리저리 눈치를 보았다. 그렇게 나름대로 치열했던 달달하지 않은 초딩의 하루를 보내고 나면 하굣길에 보상처럼 달달한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다. 하굣길에 떡볶이를 먹을 생각으로 하루를 버틴 것이다. 아쉽지만 컵볶이 집은 내가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사라졌다. 컵볶이를 생각하면 80퍼센트의 달달했던 그 맛과 20퍼센트의 초등학교 시절 특유의 우울이 같이 떠오른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하교 후 다니던 학원 옆에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당시 나의 부모님 연배로 보이시는 부부께서 운영하던 포장마차였다. 그 떡볶이는 비닐봉지에 떡볶이를 담고 스티로폼 그릇에 한번 더 담아주었다. 집에 와서 비닐이 묶인 부분을 가위로 자르고 스티로폼 그릇에 떡볶이를 풀어놓으면 먹을 준비가 완료된다. 그 떡볶이는 간장 맛이 강하게 난다. 그래서인지 먹을 때는 신나게 먹다가 먹고 나면 갈증이 난다. 이 포장마차는 학원 옆에 있어서 그랬는지 손님이 많았는데 결국 몇 년 후 포장마차가 아닌 그 학원 상가 1층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가게는 내가 스물여덟 살이 된 지금도 영업 중이다. 배달 어플로 클릭 한 번이면 배달되는 프랜차이즈 떡볶이가 난무하는 요즘, 배달도 안 되는 그 가게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곳을 대학생 때나 취업 준비할 때, 그리고 직장을 잡은 지금도 가끔 응석 부리고 싶을 때 간다. 마치 졸업한 제자가 가끔 선생님을 뵈러 와서는 ‘선생님, 저 요즘 너무 힘들어요.’라고 응석 부리는 느낌이랄까. 모든 걱정이 풀리지는 않겠지만 간장 맛이 진한 떡볶이를 먹는 순간 중고등학교 시절로 잠시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쫄깃쫄깃 오동통통한 떡의 식감. 그리고 익숙한 갈증.


 직장에 들어간 이후로도 역시 떡볶이 생활은 멈추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납득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실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 지친 마음으로 집에 오면 더 이상 요리를 하고 싶지 않은 건 물론이고 사러 가고 싶지도 않다. 그저 섭취만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럴 때면 배달 어플을 켜서 프랜차이즈 떡볶이를 시킨다. 그리고 배달이 오면 떡볶이를 오롯이 느낀다. 우스갯소리로 예전에는 ‘엄마 나 떡볶이 사 먹게 1000원만!’이었다면 요즘에는  ‘엄마 나 떡볶이 사 먹게 23900원만!’이라고 한다고 한다. 그만큼 가격은 비싼 건 사실이지만 오늘 고생했는데 이 정도쯤이야!라는 마음으로 배달 어플을 누른다.


 이렇게 써보고 보니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냥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그냥. 그런데 공통적으로 내가 떡볶이를 찾게 되는 순간은 우울하거나 힘이 없을 때였다. 그건 반대로 말하면 떡볶이를 먹으면 힘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누구한테나 인생의 소소한 낙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스물여덟 살인 지금도 ‘저녁에 떡볶이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 그냥 눈 잠깐 감고 내 앞에 있는 고민거리들을 얼른 해치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는 남들에게 차마 말하기 민망한 내 힘의 원천이다. 그러니 내일은 꼭 떡볶이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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