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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16. 2020

어떻게 열등감까지 사랑하겠어, 날 사랑하는 거지

이십 대의 대부분을 열등감으로 보냈다.

  <1부 잠>

내가 이십 대 때 주로 느낀 감정은 뭘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열등감이었다. 물건을 살 때 4900원과 5000원이 다르게 느껴지듯이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이 되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십 대 때는 평범하게 학교만 다녀서 새로운 환경에 놓일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비슷한 환경에 있는 친구들과 비슷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가고, 또 취업을 준비하고, 직장까지 들어가니 내가 살아왔던 환경과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나는 옷을 살 때 대부분 학생들이 만 원 이하의 옷을 사는 줄 알았다. 삼만 원 정도면 꽤 비싼 옷이었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해보니 나와 비슷한 또래들도 브랜드 제품을 척척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내 옷이 괜히 후줄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끔 친구가 입은 브랜드 로고를 기억해두었다가 그 브랜드가 뭔지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내고 얼마나 돈을 모아야 그 제품을 살 수 있는지 계산해보기도 했다.

 또 임용 시험을 준비할 때는 나의 열등감이 최고치를 찍었던 시기이다. 끊임없이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나의 수준을 비교하였다. 제일 힘들었던 건 잠들기 전이었다. 괜히 자기 전에 회사에 취업하거나 시험에 합격한 친구의 SNS 프로필을 구경했다. 그러고는 부러워서 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시험 임박해서는 열등감이 더 심해져서 한번은 모의고사를 푸는 스터디 중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푸나 신경을 쓰느라 뒷부분은 백지로 낸 적이 있다. 나처럼 쓰면 당연히 불합격이라는 생각이 가득한데 스터디원들은 슥슥 잘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자괴감에 빠졌었다.      


 열등감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하게 낮추어 평가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남과 비교해서 나를 낮추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나는 앞서 말한 이야기 외에도 이십 대의 대부분을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남과 나를 계속 비교하는데 시간을 꽤 소비했다. 한 번은 이 감정의 원인이 낮은 자존감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고쳐보려고 ‘자존감 높이는 방법’,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과 같은 주제의 자기 계발서들을 많이 읽었었다. 그런 책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라.’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래, 일단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러면 나는 계속 이렇게 부족한 상태로 평생 살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조차도 사랑하지 못 하는 바보처럼 느껴졌다.


  처음에 나는 이것이 단순히 ‘내가 아직 취업을 못해서’ ‘내가 아직 능력이 없어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취업을 하거나 과거에 비해 능력이 생겼다고 판단될 때에도 또 새로운 분야에서 열등감은 문득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날은  ‘이 감정을 없애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없앨 수 없다열등감은 없애거나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닌 그저 내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감정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더 편해진 것 같았다. 열등감은 그냥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돌이켜보니 오히려 이 감정에 고마운 점도 있었다. 열등감 때문에 동기부여가 되어 시작한 일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학교 끝나고 “나 알바 가.”라고 말하는 게 괜히 멋있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데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은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도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쉽게만 구하는 아르바이트처럼 보였는데 막상 구하려니 면접에서 많이 탈락한 것이다. 잘 풀리지 않자 또 열등감에 빠져 그냥 포기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친구들이 계속 눈에 보였다. 나도 그 친구들처럼 보이고 싶었다. 끈질기게 이력서를 낸 끝에 결국 일자리를 구해서 케이크 가게, 빵집, 식당 설거지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때 얻은 경험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 돈 주고도 못 살 소중한 기억이다. 케이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메리카노와 라테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계산할 때 포스기를 어떻게 찍는지, 손님들이 밥을 먹고 나가면 그걸 치우는 게 얼마나 고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웃으며 넘어가 주는 손님은 얼마나 고마운지……. 몸을 움직여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대학생 때 공부만 하다가 졸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역설적이게도 내 몸을 일으켰고 결론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취업을 준비하 시기는 열등감으로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먼저 취업을 하거나 시험에 합격한 친구는 되도록 안 만나려고 했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꼬박 하루는 나를 비하하는 데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터디 모임을 할 때는 모의고사일 뿐인데도 점수에 일희일비하였고 친구들이 무슨 교재를 보는지, 무슨 강의를 듣는지, 필기는 무슨 펜으로 하는지까지 세세하게 비교했다. 하지만 이러한 열등감이 결국 펜을 쥐어주었고 문제를 풀게 했으며 아침잠이 많은 나를 새벽 여섯 시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일어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고 결국 책상에 앉게 만들어 주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살면서 열등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이십 대 때 느꼈던 감정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감정은 열등감이었다고 고백해본다. 심지어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에 자존감도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열등감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닐까. 내 인생도 남들만큼만, 어쩌면 남들보다 더 멋지게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나 자신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감정이 아닐까. 


 열등감이 고개를 들면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살아가다 보면 나보다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계속 만날 테고 그러면 또 열등감은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만 열등감이 든다고 고민했던 이십 대 초반 시절과는 달리 미래의 나는 이것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는 중이어서 이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열등감까지 사랑하겠어, 날 사랑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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