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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09. 2020

왜 실수 후 민망함은 자기 전에 생각날까?

자기 전에 이불을 발로 차면서 하는 생각들

 <1부 잠>


2018년, 나는 꿈에 그리던 중등 교사 임용 시험을 합격하고 첫 발령을 받게 되었다. 시험 준비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시험을 준비할 때는 '이 시험만 합격하면 꽃길만 펼쳐질 거야.’라고 나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걸게 된다.


 하지만 인생의 꽃길은 그렇게 한낱 시험만 통과되는 것으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이고 돈을 번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책임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남의 돈을 받는다는 것은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것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직장을 가지게 되면 프로답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멋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똥오줌 못 가리는 코찔찔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정말 그랬다.) 매일 선배들이 내가 싼 똥오줌을 치워주는 기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 행정 업무도 해야 한다. 아무리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봤다지만 행정 업무는 처음이었고 내 성격 자체가 꼼꼼하지가 않아서 실수도 매우 잦았다. 실수에도 멋진 실수와 창피한 실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실수도 좀 멋진 실수(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실수 같은 것)이면 좋으련만, 단순 계산 실수를 하든지, 오타를 낸다든지, 개수를 잘못 센다든지, 결재 라인을 클릭을 잘 못해서 엉뚱한 사람에게 결재를 올리든지, 최종 파일이라고 보낸 것이 수정 중인 파일이든지, ‘첨부 파일을 참고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첨부 파일을 첨부하지 않았다든지(더 쓸 수 있지만 여기까지만 쓰겠다..) 하는 아주 낯부끄러운 실수들이었다.


한두 번이면 그래도 귀엽게 넘어가 줄 수 있지만 1년 차일 때 나는 마음만 앞서고 계속 허둥댔다. 그러다 보니 24시간 내내 긴장 상태였고 늘 주눅이 들어있었다. 일머리도 없는 내가 괜히 들어와서 학교에 민폐만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밤에 자기 전에 계속 그 일이 생각났고 ‘너 왜 그랬냐’ ‘실수도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하냐’ ‘너는 수도 못 세냐! 눈이 안 보이냐!’와 같은 또 다른 자아가 계속 말을 걸어 불쌍한 이불만 계속 발로 찼다.


 그러다가 한 번은 너무 답답해서 구글에 ‘업무 실수 안 하는 법’이라고 쳐본 적도 있다. 그리고 검색 내용을 요약해서 프린트한 후 내 책상에 크게 붙여놨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보고 웃든 말든 그때의 나는 매우 진지했다. 그때 적은 글은 다음과 같다.      

실수를 했을 때는 깔끔하게 인정하라

실수가 발생하면 숨기려 하지 말고 상사에게 알려라

다시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실수를 적어놓아라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내가 그동안 실수에 고통스러워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먼저 나는 내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다. 앞서 말했듯,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실수도 아니고 단순 실수이다 보니 내 부주의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계속 변명을 생각했다. 내가 그때 굉장히 바쁜 상황이었어, 내가 몰랐던 내용이었어, 일하는 순간 학생들이 와서 정신이 없었어……. 이렇게 나 스스로 끊임없이 변명을 생각하다보니 잠이 오지 않고 합리화가 될 때까지 계속 생각을 했다. 또 같은 맥락으로 실수를 했을 때 이 사실을 알리기 싫어서 혼자 해결하려고 끙끙댔다. 실수를 납득할 수가 없으니 알리기도 싫은 것이다. 자기 전에 실수를 떠올리며 이 상황을 아무도 모르게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느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내가 한 실수가 큰일이 아니었을 때도 많았고 다시 하면 되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알렸을 때 더 명쾌한 답이 나올 때가 많았다. 내가 인정하고 해결 방안을 찾으면 금방 끝날 일들도 많았을텐데 실수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까지가 어려워서 끙끙댔던 것이었다.


나보다 2년 빨리 들어온 동료 선생님이 지나가듯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잘하게 돼요.'

그 때는 정말 그럴까? 생각했는데 3년째 이 일을 하다보니 아주 어렴풋이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교직에서는 아직 햇병아리이지만, 한 해, 두 해 지나 보니 일을 하다보면 실수는 자연스럽게 일어날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간 지나면 잘하게 되는 것'이 실수를 앞으로 영원히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실수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좀 자연스러워진다는 의미 같다. 여러 일들을 하다보니 일단 실수를 직면했으면 그냥 진정으로 인정하는 게 오히려 빠른 해결방법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 어쩔래? 그래,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알려야 한다면 부장님한테 빨리 알려버리자! 끝! 물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기에 적어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도 같은 실수는 일어날 때도 있다.)


이제 나는 자기 전까지 실수가 머릿속에 맴돌면 일단 잊고 자려고 한다. 우선 지금은 처리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리고 자는 동안에는 생각이 안 날 테니까. 그리고 생각한다. 이 실수를 알리면 누구라도 나에게 모진 한마디를 할 테고 잠깐이라도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 나라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자. 잘하려고 하다가 그런 거잖아. 실수하느라 고생했다! 내일 다시 하면 되니까 일단 푹 자!





'누구나 실수를 해. 그래서 연필 뒤에 지우개가 달려 있는 거야.'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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