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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07. 2020

나는 시간 여행자일지도 몰라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무지개 풍선
<1부 잠>


‘너는 꿈을 컬러로 꿔? 흑백으로 꿔?’

예전에 친구가 물어봤던 질문이었는데 나는 컬러로 꾸는 것 같다. 잠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꿈이 꽤 재미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가끔 재밌는 꿈을 꾼 아침에는 깨기 싫어서 억지로 다시 꿈을 이어서 꾸려고 눈을 감기도 한다.





 최근에 꾸었던 꿈도 역시나 재밌었다. 꿈의 배경은 디즈니 랜드를 연상하게 하는 아주 환상적인 놀이동산이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화려한 원색의 놀이기구들이 주위에 보였고 피에로가 돌아다녔으며 인형 탈을 쓴 사람이 나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화려한 놀이동산을 거닐면서 어떤 기구를 탈까 돌아다니던 중 롤러코스터가 보였다.


 롤러코스터는 두 개의 코스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일반적인 롤러코스터 코스였고 다른 하나는 그걸 타고 빙그르르 도는 순간 과거로 떨어지는 것이다. 마치 타임머신처럼. 단, 어느 시점의 과거일지는 고를 수 없다. 과거로 떨어지면 그 찰나에는 미래에서 온 내 기억이 살아있지만 아주 빠르게 사라져서 결국에는 과거를 두 번 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꿈속에서 나는 과거로 가는 롤러코스터를 탈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작동 오류로 과거로 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롤러코스터에 앉혀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근심에 빠졌다. 무심하게 롤러코스터는 작동되었고 빙그르르 도는 순간 나는 과거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돌아간 과거가 취업을 걱정하던 대학교 4학년 시절 노량진 길바닥이었다. 남자들은 종종 군대 다시 가는 꿈을 꾼다던데 나는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게 신기했다. 아무튼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절망감에 빠지면서 꿈은 끝났다.


 꿈에서 깨고 나서 그 꿈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실제로 그 놀이동산에 갔다 온 것 같은 묘한 기분도 들었다. 지금의 내가 그 놀이동산에 가게 되면, 과거로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탔을까. 물론 꿈에서와 달리 돌아갈 수 있는 과거의 시점을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선택을 하게 된다. 사람은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걸을 수는 없기에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이십 대를 돌이켜보면 십 대보다 더 선택할 일들이 많았다. 복수 전공은 뭘 해야 할지, 어떤 동아리를 들어야 할지, 유학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형편이 넉넉지 않은 부모님께 꺼내야 할지, 계속 꿈을 좇아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현실과 타협해야 할지……. 수많은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왠지 섬뜩한 느낌까지 들기도 한다. 십 대보다 이십 대가 그랬듯, 이십 대보다 삼십 대에는 선택할 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 두렵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과거로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타고 싶지 않다. 작동 오류가 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흔히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정말 열심히 산 사람들이나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매 순간 독하고 치열하게 노력하며 악착같이 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느릿느릿하게 산 편이다. 그럼에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좋은 선택도 안 좋은 선택도 결국 내가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투리 천을 모아 하나의 조각보를 만들 듯이 내 판단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서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기보다는, 완벽하지 않은 누덕누덕한 조각보일지라도 그냥 내 것, 내 인생이라고 인정하고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십 대 후반. 내 마음은 아직 마냥 어린 것만 같은데 앞으로 선택해야 할 일들은 꽤 무거울 것만 같다. 사실 많이 두렵다. 하지만 색깔이 하나인 보자기보다는 다채로운 색깔의 조각보에 더 눈이 간다. 항상 올바른 판단만 내릴 수는 없겠지만 이런저런 선택들을 해보면서 더 다채로워질 날들을 기다린다. 지금보다 더 미래의 내가 되어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꿈은 왜 이렇게 생생했을까. 정말 미래의 더 어른인 내가 지금껏 해왔던 모든 선택들을 후회해서 빨주노초파남보가 반짝이던 놀이동산에 입장해서 과거로 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과거로 돌아가 살아가다가 지금의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 나는 지금 인생을 두 번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잠들기 전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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