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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04. 2020

잠자는 것을 좋아해요

잠자는 것이 유일한 출구니까

나에게 깊은 잠을 선물해야지
<1부 잠>

잠자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은 자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다. 한 사람의 인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일정한 흐름이 반복된다고 한다. 내 기분 혹은 내 일상도 이 ‘일정한 흐름’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아침에 밖으로 나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거야!’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힘차게 시작하는 시기가 있는 반면 ‘하루 종일 바보 같은 짓만 한 것 같다.’고 되뇌며 끝없는 기분으로 빠져드는 시기도 있다.


‘4당 5락’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시험에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다. 또 ‘청춘은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라는 말도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둘 다 잠이 시간 낭비라는 뜻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말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 인생 흐름이 겨울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때마다 새롭게 시작할 힘과 소소한 위로가 되어 준 건 포근한 잠이었다.

 우울하거나 불안하면 잠이 안 온다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잠이 온다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도 나는 후자이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밤이면 복잡한 감정들로부터 궁지에 몰린 듯한 느낌이 든다. 생각을 앞으로도, 뒤로도 해보지만 제자리인 느낌이 드는 것이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떠올려본다. 그러다 보면 유일한 출구는 자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 일단 자고 생각하자! ’

 자고 나면 마법처럼 모든 일들이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몇 시간이 지나고 실제로 눈을 떴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음을 느낀다. 자기 전까지만 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던 감정들이 잠을 자고 시간이 지나면 이리저리 정돈되어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다가 일단 몸을 일으킨다. 이런 몇 번의 경험을 겪고 보니 잠자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무언가 ‘좋아한다.’고 말할 때는 거창한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뮤지컬을 좋아해요.’ ‘골프를 좋아해요.’ ‘골동품을 좋아해요.’와 같이. 나도 처음에 ‘잠자는 것을 좋아해요.’라고 말할 때 뭔가 어색함을 느꼈다.  ‘잠이라면 누구나 자는 것인데 뭘 좋아할 것까지 있나?’ 싶은 것이다. 그래도 잠을 자기 위해서 양치를 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이불과 베개를 판판히 펴고, 계절에 맞는 이불에 쏙 들어가 스르르 잠이 들고, 몇 시간 푹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순간들은 나에게 위로이자 매일을 살아갈 힘을 준다. 그래서 나는 ‘좋아해요’ 목록에 ‘잠’을 넣기로 했다.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깊은 잠을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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