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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03. 2020

첫 글을 쓰면서

프롤로그

 나는 물 같은 사람이다. 내 주위에 어떤 사람을 떠올려봐도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 딱히 특징이 떠오를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을 대할 때 내 특성을 내세우기보다는 그 사람의 특성에 맞추려고 노력해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살면 장점은 최대한 주변인들과 갈등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어릴 때는 내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누구나 초등학교 때는 대통령을 꿈꾸니까. 그런데 이십 대 후반이 되니 같은 나이 또래인데도 반짝 반짝 빛나는 가수들이나, 사진 한 장 올렸을 뿐인데 좋아요 수가 폭발하는 인플루언서들이나, 말 한마디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사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나봐.'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될 줄 알았는데 그저 나는 ‘하루를 끝내고 잠을 자는 것, 서점에서 책을 읽는 것, 맛있는 떡볶이를 먹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것도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


 '나는 사실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나봐.'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잡고 있던 끈이 탁 풀린 것처럼 허무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흔한 경품 추첨 이벤트에도 한번도 당첨된 적이 없지 않았는가? 돌이켜보면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아온, 말 그대로 무색무취(無色無臭)의 물같은 나였다. 


 그러다가 주위를 둘러 내 옆 사람을 보았다. 어라? 그런데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과 내가 똑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꼭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만 특별하고 빛나는 것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일상 속에 담긴 인물, 사건, 배경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그러면 내 인생도 단 하나뿐이며 서사를 담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 뿐인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는데 용기가 생겼다. 


 인생 버킷리스트 중에 20대가 지나기 전에 책을 출판하는 것이 있었다. 직업이 국어 교사이다보니 학생들에게 글 쓰기 조언을 많이 해주는 편인데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봐!"였다.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잠, 책, 떡볶이에 담긴 일상들에 대해서 써보기로 하였다. 일상 속 소재들도 한 사람의 서사가 담겨 있으면 특별해지니까. 매일 매일 스쳐지나갔던 감정들을 사진을 찍듯이 포착해서 인물, 사건, 배경을 그려내고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내 또래일, 내 또래인, 내 또래였던 청춘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다 특별한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별한 그들에게 나의 서사가 작은 공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목표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그냥 동네 동생, 친구, 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각자의 일상을 바쁘게 보내고 지친 몸을 침대에 뉘였을 때 조금은 공허해진 마음에 나의 글을 읽다가 약간 위로받는 마음으로 스르르 잠들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내 20대를 되돌아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일상에서 공감과 쉼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굉장히 떨리고 자신 없지만 당당한 척하는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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