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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11. 2020

꿈속에 나타나는 지나간 인연들을 위하여

나는 오랫동안 인연을 유지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은가?

  <1부 잠>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이십 대 후반이 되면서 SNS에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종종 사진을 올리고는 한다. 그때마다 가끔 내 결혼식에는 몇 명이나 와줄까 걱정될 때도 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친구 모임, 대학교 친구 모임, 각종 사회생활 모임 등이 하나씩은 있던데 나는 그 흔한 모임도 딱 하나 외에는 없다.


 가끔 꿈속에 어릴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불쑥 나올 때가 있다. 그런 꿈들은 너무 생생해서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그들과 즐겁게 떠들고 웃는다. 그러나 잠에서 깼을 때 현실적으로 그 친구들과 더 이상 연락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허무함이 밀려온다. 그럴 때면 인간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 시절 그렇게 즐겁게 떠들고 웃고 나누었던 순간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당시에는 무리로 다니면서 같이 공부할 친구가 있었고, 밥도 같이 먹을 친구가 있었고, 무리 안에서 사소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모든 걸 다 내어놓아도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하나 둘 나이를 먹고 환경이 바뀌니 관계가 거의 끊겼다. 졸업 후 스터디 모임을 같이 했던 언니들도 당시에는 모든 고민을 털어놓고 평생 갈 것처럼 의지를 다졌지만 스터디 모임이 끝나면 연락하기가 영 불편해졌다. 이제는 연락하면 어색한 연락처들을 하나둘씩 넘기며 ‘나는 오랫동안 인연을 유지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연을 유지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듯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학창 시절 모임 등을 성인이 되어서도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겉으로 볼 때는 관계를 유지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게 쉬워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계속 그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용기를 내 먼저 연락하기도 하고 쉬고 싶은 마음을 접고 약속을 위해 시간도 비워놓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에 비해 나는 연락을 먼저 하는 것에 대해 살짝 귀찮음을 느낀다. 모임을 만들어서 단체로 노는 것보다는 일대일로 만나서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또 이틀 연속 약속보다는 하루 건너 약속을 잡는 걸 선호한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약속이 잡히면 가끔은 약속이 취소되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그래도 정작 약속에 나가면 누구보다 재미있게 논다.)


 이런 나의 에너지가 인연을 유지하는 것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고 충전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쏟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그럼에도 지금 내 옆에 남아있는 몇몇의 친구들이 정말 고맙고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 곁에 남은 사람들에게 더 진심으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가끔씩 드는 상실감은 어쩔 수가 없다. 그때 우리들이 나눴던 감정들은 다 뭐였을까.     


 인터넷에서 한 글귀를 보고 크게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인간관계는 버스와 같은 것이라고. 살다 보면 어떤 집단에 소속되게 되고 그럼 그게 버스를 탄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 버스를 타고 있는 동안에는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과 소속감을 느끼고 서로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나 버스 안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지는 않는다. 먼저 내리는 사람도, 나중에 내리는 사람도 있다. 우연히 같은 정류장에 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내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사람과는 계속 인연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다 행선지가 갈라지면 헤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잠깐이나마 내 여행 길에서 말동무가 되어준 지나간 인연들에게 고마워진다. 사람은 어찌 됐든 혼자 와서 혼자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혼자 시작했던 인생 길에 우연히 버스를 탔는데 정말 좋은 인연들을 만나 울고 웃으며 감정들을 나눴다. 그러나 또 각자의 행선지가 다르기에 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부족함도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곁에 있다가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들 덕분에 내 이십 대 여행길은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항상 어디에서든지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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