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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Oct 12. 2020

요즘 같은 시대에 책 왜 읽어요?

내가 책을 읽는 이유

<3부 책>

 어디 가서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조금 쑥스럽다. 사실 나의 독서 수준은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국어 교사라는 직업 탓인지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섭렵한 것처럼 ‘이 책 아시죠?’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머쓱해진다. 세상에는 내가 읽은 책보다 듣도 보도 못한 책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설사 알고 있는 책이라도 제목만 알고 있거나 대충 내용만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두 가지의 변명을 하자면 첫째, 나는 이 직업을 가진 지 3년밖에 안 되었다. 둘째, 세상에는 책보다 더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난다.      



 초등학생 때는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중고등학생 때는 재미로 책을 읽는 것이 공부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책을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가 학생 때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소설책을 읽으면 선생님이 압수를 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캠퍼스의 낭만에 빠져 전공 서적 이외의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 돌아 이십 대 후반. 초등학생 때 이후로 다시 독서에 대한 애정이 불타올라 최근에야 독서를 즐기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 내 독서는 걸음마 수준이다. 점점 단계를 높이기 위해 자기 전에 한 장이라도 책을 읽고 자려고 노력한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는 퇴근 후에 침대에 누워 오롯이 재미를 위해 책을 읽는 시간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왜 책이어야 하는가? 사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오로지 책만 고집하기에는 책보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이면 정보가 쏟아지는 유튜브가 훨씬 빠르고 간편하다. 책은 내가 원하는 정보가 어떤 책에 실려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정보가 그 책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그 책을 빌리거나 사야 한다. (요즘에는 E-book이 있어서 이 단계는 생략해도 되지만) 그리고 두꺼운 책 틈에서 내가 원하는 내용이 몇 쪽에 있는지 찾아야 한다. 1분 1초가 아까운 현대인들에게는 비효율적이다.


 사실 내가 초등학생 때 책을 많이 읽었던 이유는 지적 호기심이 많아서도 아니었고 언어적인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니었다. 학교 다녀와서 딱히 할 것이 없어서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 스마트 폰이 있었다면 스마트 폰을 했을 것이다. 하교 후에 친구와 놀아도 저녁 8시면 집에 돌아왔으니 자연스레 책을 읽는 것이 저녁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실 요즘은 스마트 폰 하나면 SNS, 유튜브, 넷플릭스 등으로 집에서도 책을 읽는 것보다 어쩌면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대이니 책을 꼭 읽어야 하나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책을 다시 집어 든 것은 내가 매 순간 느끼는 감정들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였다. 하루는 일기를 쓰는데 그냥 ‘우울하다.’ ‘복잡하다.’ ‘막막하다.’ 이외에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다.’ ‘오늘은 맛있는 것을 먹었다.’ ‘오늘은 누구를 만났다.’와 같은 일상적인 문장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머릿속에 감정들은 휘몰아치는데 지금 내 기분이 정확히 어떤지 내가 나에게조차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 답답했다.      


 하지만 책을 한 권, 두 권씩 읽다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느낀 감정들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문장을 만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 감정들을 설명해주는 문장을 선물을 받은 것처럼 우연히 만날 때마다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 내가 느낀 감정이 바로 이거였어!’하는 문장들을 마주할 때면 쾌감이 느껴진다. 영상 매체에서는 이러한 짜릿한 즐거움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넘쳐나는 영상 매체 시대에도 책을 읽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깥은 여름』(김애란)의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라는 문장을 사랑한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의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라는 문장을 사랑한다.


『아몬드』(손원평)의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라는 문장을 사랑한다.


『서시』(윤동주)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문장을 사랑한다.   

       

 렇게 앞으로 사랑하게 될 문장들을 만나기 위해서 나는 책을 읽기로 하였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기에 그게 어떤 것이든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것은 알고 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빠르게 변하고 있기에 사라지는 것과 새롭게 생기는 것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있다. 알고 있다. 책 그리고 서점은 사라져 가는 쪽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책은 요즘의 그것들과는 다른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래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천천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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