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 판정
퇴원 후 수개월이 지나고 나서 남편의 장애인 증명서가 도착했다.
"지체장애.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라고 적힌 문서를 보고 있자니 온갖 복잡 미묘한 감정이 스쳐갔다.
사지마비로 휠체어에 태우기 조차 힘든 남편과 외출을 하려면 건장한 성인 남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른 건 몰라도 병원 진료만큼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데 이동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값비싼 사설 앰뷸런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알아보니 장애인 콜택시 서비스가 있었다. 장애인 택시는 휠체어에 탄 채로 환자를 태울 수 있도록 벤을 개조한 차량을 사용한다. 장애인연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복지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부부의 소득 수준을 합산하여 그 대상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대부분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 기준에 따르면 나는 꽤나 고소득자이다. 그러나 장애인 택시만큼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서비스였고 나는 오로지 이 서비스를 이용할 목적으로 장애인 증명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장애 등록을 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건강한 보호자가 없는 중증장애인들은 어떻게 장애인 증명서를 발급받으라는 얘기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장애인으로 등록을 하려면 스스로가 장애인임을 입증하는 심사과정을 거쳐 장애진단서를 발급받고, 각종 자료를 구비해 주소지 관할 동주민센터에서 장애인 등록 신청을 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신체를 움직이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여러 번 닥친다. 심사과정도 오래 걸리는 데다가 추가 서류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남편처럼 갑자기 병에 걸려서, 혹은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이 너무 힘들고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막상 장애인 콜택시가 가장 필요할 때는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미 사지마비 진단을 받고 누워만 지내던 남편은 그의 신체적 장애를 입증하기 위해 따로 검사 날짜를 잡고, 전혀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아, 오로지 장애진단만을 목적으로 하는 추가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간의 모든 진료기록과 검사결과를 출력해서 제출하고 영상자료도 cd로 제출해야 한다. 다행히 이는 남편과의 가족관계를 입증하는 서류와 신분증을 가지고 가면 내가 대신할 수 있었는데, 진료기록과 영상기록을 받는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그렇게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겨우 챙겨 들고 주민센터를 찾아 장애인 등록 및 서비스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그 후 한 달이 넘게 기다렸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날아온 문자에는 추가 서류 접수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그 지난한 과정을 다시 반복하면서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요새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앱으로도 언제든 검사 결과나 진료기록 등을 조회할 수 있고 이런 기록들은 클릭 몇 번만으로 전송이 가능할 터였다. 많은 자료들을 검토하고 관리하는 측면에서도 데이터를 전송받는 편이 더 빠르고 수월할 텐데... 어째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과 그들의 보호자가 여러 번 병원을 찾아 긴 시간 대기하면서 불필요한 검사를 받고, 기록과 영상물들을 출력하고, 또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이를 제출하게 하는 걸까?
결국 몇 달간을 아쉬운 소리를 하고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설 앰뷸런스를 이용한 뒤에야 장애인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맙소사,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장애인 택시를 이용하게 되면 남편과 편하게 병원 진료를 다닐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진료시간에 맞춰 택시를 부르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다. 인근 지역 대기 인원수는 늘 두 자리 또는 세 자리 수로 유지되고, 그나마 미리 예약할 수 있는 슬롯들은 열리기가 무섭게 차 버린다. 택시를 이용할 때마다 진료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지 늘 조마조마해야 했다.
집 근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는 아예 택시 잡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직접 남편의 휠체어를 밀고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다니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길이지만 도로는 왜 이리 울퉁불퉁한지, 오르막과 내리막은 어찌나 많은지...
장애인용 저상버스가 있지 않느냐고, 지하철에도 장애인용 리프트가 있지 않냐고 묻는다면 지하철이나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몇 번이나 보았는지 되묻고 싶다.
지하철에 설치된 장애인 리프트를 보면 보호 장치라곤 쇠로 된 안전바 하나뿐이다. 휠체어에 탄 채로 리프트에 올라타면서부터 균형을 잃고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한다. 절대 기우가 아니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이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한 사고는 총 13건 발생했고 그중 5명이 이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저상버스를 이용하려면 버스정류장까지 이동하는 데만 해도 여러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 마치 높은 산처럼 우뚝 솟아있는 턱과 여기저기 버티고 있는 장애물들을 넘어야 한다. 저상버스의 배차시간은 마치 장애인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는 듯 하염없이 길기만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하더라도, 장애인에게 쏠리는 부담스러운 시선과 잘못된 인식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길을 가다 중증장애인을 마주친 적이 얼마나 있는가? 장애인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장애인의 수가 적어서가 아니다. 이 세상은 장애인에게 너무나 가혹하기에, 그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일면식도 없는 여러분에게 무턱대고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가 내밀어주는 손길은 너무나 따스하고 감사하다. 그러나 그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며, 그들에게도 불필요한 관심이나 도움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남편의 경우도 그렇다. 혈액암 환자, 중증장애인이라는 건 그에게 갑자기 부여된 하나의 특징에 불과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특징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에게 낯선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우리 부부도 생면부지인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중 잊지 못할 기억 하나를 꺼내보려 한다.
늘 신경 써서 남편의 이를 닦아줬지만, 어느 날 남편이 치통을 호소했다. 부랴부랴 남편을 데리고 나와 치과를 가려는 데 치과 건물 입구의 턱이 너무 높았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참 낑낑거리고 있을 때였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친구가 다가와 내게 정중하게 물었다.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
그간 여러 번의 도움을 받았지만, 먼저 우리의 의견을 물어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는 매우 정중하기까지 했다. 마치 영화에서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묘사하는 클리셰 장면처럼, 그 학생에게 후광이 비쳐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학생을 알지 못하고 다시 만날 일도 없겠지만, 그가 어디서든 반짝반짝 빛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