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의 파괴
감정이 널뛰기를 하는 날이면 남편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었다. 의사들의 난해한 말을 이해하고 그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야 했다. 나는 계속 주치의를 귀찮게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수치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바를 물어가며 보고 익혔다. 바쁜 의사들이 혹시라도 놓치는 게 있을까 봐 남편의 상태를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고, 의사들의 말을 경청하되 내가 직접 눈으로 보는 남편의 상태를 기반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남편의 몸에 자리 잡고 있는 종양 덩어리들은 방사선에 약하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치료에 비해 비교적 수월한 방사선 치료를 먼저 시도하기로 하고 서둘러 날짜를 잡았다. 곧 방사선과 전문의와 진료가 잡혔다. 젊은 의사 분이었는데, 그동안 담당의로 만났던 교수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는 우리에게 PET CT촬영 결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 뒤 방사선 치료계획을 들려주었다.
2주 동안 암세포의 완전한 파괴를 목적으로 대량의 방사선을 조사하게 될 것이라 했다. 설명을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에게 믿음이 갔다. 그의 좋은 인상도 한몫을 했겠으나 곧 그가 되도록 긍정적인 단어들만은 가지고 설명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환자를 배려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세침술로 고관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암세포 조직을 채취하기 쉽지 않았다며, 의료진 모두 조마조마했었는데 결과를 얻게 되어 다행이라는 뜻밖의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남편의 케이스가 워낙 희귀하다 보니 남편을 위한 다학제 간 논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논의에 참여한 다수의 의사들이 혈액암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조직검사로 확인이 되지 않는 한 치료를 진행할 수 없는 노릇이라 많이 답답해했고, 1차 세침술에서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는 크게 낙담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차 세침술에서 드디어 결과가 나왔을 때 모두 크게 기뻐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간 누구를 원망해 왔던 것인가...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렇게 나를 부끄럽게 만들더니 남편의 부끄러운 부위에는 방사선이 조사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일종의 가림막을 만들어주는 세심함까지 보여주었다.
그동안의 지지부진함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치료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정확히 2주 동안 병원에서는 남편을 방사능 물질주의라는 경고 사인이 붙어있는 방으로 싣고 가 그의 몸에 대량의 방사선을 조사했다. 방사선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 들었지만, 치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팔다리를 모두 묶어 버린 마비의 진행이 드디어 멈추었다. 그를 잠 못 들게 하던 통증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느낌이 좋았다. 무언가 제대로 되어갈 때만 느낄 수 있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미묘하고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아무리 다잡아봐도 이리저리 튀어 오르던 감정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남편을 갉아먹던 암세포가 죽어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고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믿었다.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