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잠재된 힘
간병이 이렇게 힘들 줄 미처 몰랐다. 처음에는 남편의 자세를 바꿔주고 일으켜 앉혀서 밥을 먹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누워있는 남편을 챙겨주다 보면 허리가 너무 아팠고, 휠체어에 옮겨 태우려다 힘이 달려 남편을 놓치고 넘어뜨리기 일쑤였다. 퇴원 후 몇 주가 지나자 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손목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자꾸만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다. 정신없이 밥을 차리다 그릇을 깨뜨리고는 쏟아진 음식처럼 널브러져 앉아 서럽게 울곤 했다.
회사일에, 집안일에, 수시로 도움이 필요한 남편을 돌보면서 내 체력은 금방 바닥나버렸다. 어머님께서도 허리통증을 호소하셨다.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매일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게다가 남편은 매일 밤 미칠듯한 고통을 호소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먹이고 계속 몸을 주물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매일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내가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올까 봐 너무 두려웠다.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붙들고 울다가 지쳐 잠드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침착해야 한다. 남편은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정신 차리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병원에서부터 수도 없이 되뇌었던 말이다. 절망에 빠져 울고 있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의 남편은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다.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할 일은 남편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의료용 사지압박순환장치라 불리는 공기압 마사지기를 구입해 남편의 다리에 끼우고 계속 돌렸다. 마사지기는 남편의 통증을 어느 정도는 줄여주었다. 어머님께는 동네에 침을 잘 놓는다는 한의원을 소개해드리고 집 근처 헬스장에 회원등록을 해드렸다. 부디 우리 집에 오시는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기를 바랐다.
간병은 체력전이었다. 사지마비인 남편을 간호하려면 약해빠진 체력부터 끌어올려야 했다. 헬스장을 다닌다거나 필라테스 수업을 수강하는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지만 모든 신체적 활동이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자세를 바로잡았고 짬짬이 맨몸 운동을 했다.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도 내겐 다 운동이었다. 남편과의 체급차이를 극복하려고 살도 찌우기 시작했다.
조금씩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남편을 번쩍번쩍 들어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165cm의 내가 몸도 가누지 못하는 180cm의 남편을 맨손으로 번쩍번쩍 들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남편을 어떻게 옮길 것인지에 대해 머릿속으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만약 누군가 도와준다면 수월하게 옮길 수 있겠지만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든 나 혼자만의 힘으로 남편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길 수 있어야 했다.
남편을 업어도 보고 굴려도 봤다. 업자니 남편이 너무 길었고 굴리자니 서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와상환자들이 이용하는 용품들을 검색해 보았다. 말 그대로 환자를 들어 올리는 거대한 리프트 장비도 있었고, 바퀴가 달린 이동식 침대도 있었지만 집안에 들이기엔 너무 버겁다고 느껴졌다. 병원에서 이제 막 탈출했는데 집안을 병원처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더 검색해 보니 무게를 분산시켜 와상환자를 옮길 수 있게 도와준다는 벨트가 눈에 띄었다. 허리에 두꺼운 벨트를 두르고 허벅지 양 쪽에도 짧은 벨트를 둘러 허리 벨트와 연결시키는 방식이었는데, 보자마자 씨름의 샅바가 떠올랐다. 머릿속으로 들배지기로 남편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그려보니, 지금까지 상상했던 그 어떤 방식보다 그럴듯한 것이 아닌가? 곧바로 환자용 벨트를 구매하고 들배지기로 한판승을 따내는 씨름 경기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벨트를 잡고 남편을 옮기는 장면을 수도 없이 그려 보았다.
남편에게 샅바, 아니 환자용 벨트를 채운다. 남편을 일으켜 앉히고 벨트를 단단히 잡은 뒤 엉거주춤 자세를 잡는다. 순간적인 힘을 모아 남편을 배 높이까지 들어 올린다. 그 상태로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치다 휙 몸의 방향을 틀어 남편의 엉덩이를 모래판이 아닌 휠체어에, 또 변기에 안착시킨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한판승을 따 내었다.
남편을 침대 밖으로 옮길 수 있게 되자 우리 부부의 삶의 질은 수직 상승했다. 남편은 다시는 기저귀를 쓰지 않았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거품 샴푸로 머리를 감는 대신 제대로 된 목욕을 매일 할 수 있었다. 몸을 바쁘게 움직이니 정신도 맑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 남편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초인적인 힘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내 안에 잠재된 힘이 무한하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