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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Jan 25. 2023

그래, 집에 가자

감당할 수 있는 몫

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병원에서는 우리에게 퇴원할 것을 요구했다. 지금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며 대기환자가 많다는 이유였다.


남편의 상태는 하루하루 악화되고 있었다. 늘 온몸이 저린다고 했고, 밤만 되면 마치 사지가 타 들어가는 듯한 통증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했고 시력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매 끼니마다 먹는 약만 열 댓가지에 달했는데, 남편이 고통을 호소하면 별 다른 조치 없이 진통제만 추가되었다.


마비는 계속 진행되어 그의 몸을 타고 올라가며 사지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는 이제 손의 감각도 느끼지 못했고 스스로 일어나 앉지 조차 못했다. 사지마비 와상환자가 된 것이다. 건장한 성인 남자의 도움 없이는 휠체어에 태울 수 조차 없는... 암환자에게 퇴원을 하라니...


고집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알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집에서 편하게 자고 싶다고 했고, 꾸러기가 보고 싶다고 했다. 오랜 병원생활에 지친 남편에게 좋은 음식이라도 먹이고 싶었다.


“저렇게 아픈데, 움직이지도 못하는 성인 남자를 혼자 무슨 수로 감당하니..”


주위에서는 만류하며 남편을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라고 조언했다. 요양병원 중 재활요양병원이라는 애매한 이름을 붙인 곳들을 알아보고 그중 시설이 좋다는 곳을 방문도 해보았다. 재활병동은 비어 있었고, 대부분 4인실로 이뤄진 병실에서는 간병인들이 커튼도 치지 않고 환자들의 몸을 닦고 있었다. 코로나 상황 때문이었는지 환자의 가족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거의 알몸이다 시피한 상태로 간병인에게 몸을 내맡긴 환자들은 이미 수치심 따위는 잊은 지 오래라는 듯 멍한 눈으로 우리를 보았다. 그들의 몸은 욕창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죽음의 그림자라도 드리운 듯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곳에 남편을 두고 올 수는 없었다. 이런 곳에서 남편이 좋아질 리 없다.


무슨 수로 감당하냐고 포기할 일이 아니라, 무슨 수로든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결국 두 달간의 병원생활을 청산하고 사지마비의 남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퇴원 날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였다. 아버님은 소고기를 부위별로 잔뜩 사 오셨다. 나는 변변치 않은 요리실력을 발휘해 쇠고기 뭇국과 몇 가지 반찬을 준비했다. 병원밥만 먹다가 오랜만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다운 식사를 하니 살 것 같았다.


남편의 남동생과 아주버님까지 계시니 그렇게 든든할  없었다. 그들은 남편을 번쩍 들어 올려 욕실로 옮겨주었고, 남편은   만에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고 제대로  목욕을   있었다. 예전에는 그저 일상적으로 가졌던 만남, 어쩌면 가슴 켠에서 의무감으로 보내왔을지도 모르는 시댁 식구들과의 시간이었지만,   만큼은  시간이 더없이 행복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보는 남편의 웃는 얼굴이 마냥 좋았다.


그날의 기쁨도 잠시, 우리는 곧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먹는 것, 씻는 것, 배설하는 것까지 전적으로 나에게 의존해야 하는 남편을 돌보면서 일을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간병인을 쓸 수도 있었지만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 남편은 다른 사람이 본인을 쳐다보는 것조차 끔찍하게 싫어했다. 일을 그만둘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더 이상 남은 연차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였다. 휴직을 하거나, 도움을 구하거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지 몰라도 누군가의 작은 도움만 있다면 헤쳐나갈 힘이 생길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도움을 구할 줄 모르는 것도 무능력의 소치, 어쩌면 교만일지 모른다. 결국 나는 시어머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어머님께는 너무 죄송했지만, 나를 제외하면 당시 남편이 곁을 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고, 어머님이 함께해 주시는 것 만으로 남편에게 힘이 될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내민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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