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과 무례함
오래전 함께 일하던 직장동료가 결혼소식을 알렸다. 축하의 마음을 담아 축의금만 전달하려 했는데 식장이 꽤나 가깝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 그간 지인은 물론 가족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다녀오자 싶었다.
식이 끝나고 반가운 옛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만큼 멀어진 거리를 따라잡느라 멀미가 나던 차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사람이 합석을 했다. 늘 본인의 솔직함을 어필하며, 업무에 대한 비난은 물론 외모에 대한 지적까지 서슴지 않던 차장님. 아무렇지 않게 합석하는 그에게 누구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는 앉자마자 한 동료에게 왜 이렇게 살이 많이 쪘냐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더니, 또 다른 동료에게는 못본새 많이 늙었다며 듣기 거북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 폭력적인 언행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여전히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는 더 이상 직장 상사도 아니거니와, 다시 볼일도 없을 터. 예전처럼 그의 눈치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에게 쏟아지는 불편한 반응들에 그는 예전 생각은 못하고 건방져졌다는 둥, 많이 컸다는 둥 하품이 나올 정도로 식상한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의 솔직함을 피력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미숙함이나 편협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수요가 없는 공급은 외롭기 짝이 없는 법. 결국 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싶지 않아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는데, 인사를 하며 잠깐 마주친 그의 눈에 서운함이 역력하다.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쓸쓸한 뒷모습에서 동기들을 여럿 울리고도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던 예전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축 처진 어깨를 보며 여러 감정이 오간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에게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싶었던 건 아닐까? 우리가 먼저 따듯하게 그를 받아줬더라면 어쩌면 오늘의 대화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난 너무 솔직해서 탈이야.
그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말. 그 솔직함이 남이 아닌 자신을 먼저 향했다면,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더해졌다면 탈이 날 일은 없었을 텐데... 무탈하게 살고 싶으니 나의 부족함에 먼저 솔직해져야겠다 다짐해 본다. 때론 아무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솔직한 표현이지 않을까. 내내 입을 닫고 있던 나야말로 누구보다 솔직하게 그에게 대응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그를 반갑게 맞아주지 못했던 내 마음을, 어쩌면 가장 공격적이었을 나의 침묵을 못내 아쉬워하며 그가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