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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Feb 15. 2022

마음에 들지 않는 가구를 사기로 했다

살림을 다시 차리는 일





이사 온 지 2주가 넘어가는 시점에 내일 장롱과 아이 침대가 들어온다. 다른 가구점에서 산 거실장도 같은 날 들어올지도 모르고. 그렇다 해도 커튼, 서랍장, 식탁, 전자레인지 선반.. 사야 할 게 아직 많다. 아이를 집에서 돌보며 집 정리 중이다. 육아면 육아 가사면 가사, 한 번에 하나만 가능하다. 아이 보면서 메신저를 한다거나 요리하면서 설거지를 하지 못한다. 가능한 멀티라고는 설거지하면서 아이의 물음에 대답하는 정도. 사야 할 가구를 알아보는 일은 아이가 잠든 뒤에나 할 수 있는데 아이 재우다가 먼저 잠드니 그마저도 어렵다.





퇴근해서 들어오는 남편 얼굴에 무언가 쓰여있다. 서랍장은 알아봤나. 정리는 잘 되어가고 있나. 아니나 다를까 소주를 따라 한 잔 털어 넣고는 물었다. 커튼은 알아봤나. 어어 알아보는 중이야. 소주 따르는 소리만 들렸다. 다음날 주말 아침, 가구를 알아보고 있는지 물었다. 알아보긴 했는데..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원의 보고서를 집어던지는 부장님처럼 쏘아붙였다. 가구 이야기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경제권을 넘겼는데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냐고 따졌다.





또 답답한 소리 한다. 지난 신혼가구의 실패를 답습하고 싶지 않아서 나름 차근차근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평생 쓸 가구 알아보는 거냐며 실패를 다 겪어봐야 되냐고 인생 두 번 사냐며. 원래 가구는 이사 갈 때마다 바꾸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농담 섞인 말이었겠지만 최대한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면 좋은 거 아닌가. 평수를 줄여서 이사 왔고 서랍장과 거실장을 버리고 온 데다 장롱도 없으니 갈 곳 없이 널브러진 물건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있는 중이지만, 큰돈 들어가는 가구인데 반찬 재료 고를 때보다는 따져야지. 불편해도 괜찮은 가구 찾을 생각 하며 견뎌보는 중이었는데 남편은 그럴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답답함 느끼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한 기준을 들고 와서 보여줄래. 리스트 한 번 작성해 봐. 엄마로서 잘 해내는 기준, 아내로서 잘 해내는 기준, 가계 관리 잘하는 기준. 얼마큼 해내야 평균이고 나는 어떻기에 그 기준에 못 미치는지. 물러서지 않았다.





가구점에  거면 준비하고 내려오든가. 닫혀버린 현관문 뒤에 남겨진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아이에게 외출 준비를 시켰다. 엄마 아빠는 이사 오고 나서 자주 싸우네. , 그러게. 얼른 나가자. 뒷좌석 문을 열고 아이 옆에 앉았다. 아이와 말놀이를 주고받으니 도착한 가구점.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았다. 처음 갔을  쇼룸을 하나하나 들러서 보다가 나와 보니  시간이 지나있었다. 오늘은 쇼룸 구경하지 말자. 지름길로 빠져나와 아이 옷장이 있는 곳으로 곧장 갔다. 이건 떤대. , 괜찮네. 이거는. 그것도 나쁘지 않네. 원하는 가구를 사는 일이 뭐가  일이라고. 답답하다는데. 같이 사는 이가 답답해 못살겠다는데 가구가 뭐가 대수일까.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대답부터 하는 나를 뒤로 하며 남편은 앞서 걸어갔다. 식탁은 필요 없나. 마트에서 카트를 끌며 양파랑 파는 필요 없냐고 묻던 그였다. 장소만 다를 뿐이다. 이건 어때. 그것도 괜찮네. 심드렁한 반응으로 일관하며 가다 보니 다른 매장이 나왔다. 선반은, 선반 필요하지 않나, 이거는.





정말  맞다. 살면서 서로 다르다는 사실만 실감하며 살아왔지만 가구 취향도 맞지 않는구나. 이를 악물었다. , 그런 것도 나쁘지 않네. 괜찮다는 소리가 진심으로 나오지 않는다. 조용히 걸어 다니며 서랍장 설명서를 요리조리 보고 있는데  남자가 내가 보던 서랍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보, 이런 것도 있다. 어머~ 내가 원하는 스타일인데~ 근데 이게 없네.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 속에서 이게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다. 가구점에는 부부들이 많았다. 손을  잡고 찬찬히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부부, 빠른 걸음의 부인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남편. 소파에 파묻혀 휴대폰만 쳐다보는 이도 있었다. 부인이 이거 어떠냐고 묻자마자 버럭 화를 내는 남편도 있었고, 부드러운 러그를 만지며 괜찮지 않냐는 가벼운 물음에 양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두고는 만져보면서 털이 날리고 먼지가 많이 붙을 거라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남자도 있었다.





결국 공룡 가구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철제 선반, 서랍장, 아이 옷장을 사고 돌아왔다. 남편은 본인이 빨리빨리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고 정중하게 말했고(미안하다고는 안 했다), 나도 알겠다고 답했다(괜찮다고는 안 했다). 인테리어를 검색하며 원하는 스타일의 사진들이 쌓인다. 마음에 쏙 드는 가구를 사고 싶었지만 그 가구가 내 마음에만 들면 무슨 소용일까. 그런데 취향이 반대인 부부지만 아내가 사고 싶다는 가구는 절대 안 된다고 고집하지 않는 남편이기에 트렁크 가득 제품을 실어올 수 있었겠지. 마음에 쏙 드는 가구를 사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예쁜 가구를 사용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다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는 제품도 사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지만, 쿠션을 직접 사보겠다는 남편을 극구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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