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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Feb 23. 2016

절친 22년, 짝사랑 11년

그 새끼가 보고 싶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그 시절… 내 나이 12살. 그때 그 녀석은 마치 계집애처럼 수줍었다. 전학이랍시고 와 놓고 소개하라니까 10분 동안 말 한마디 안 하다가 제 이름 석자 이야기하고 들어간 게 다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나.’했었다. 나도 극소심 A학점이지만 그 녀석이 더했다. 그래서 한숨 쉬었다. 웃기게도 말이다. 그때가 그 녀석이 걷는 모습을 본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그 소심함, 아니 과묵함에는 이유가 있었다. 의젓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뻐기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었다. 소위 안 보는데서 타인을 질겅질겅 씹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나보다 어린데도 그 새끼는 철이 일찍 났다. 그리고 나의 절친이 되었다. 한 살 많다고 형 소리 듣고 싶어 하는 어리디 어린 나의 비위를 잘 맞춰 주었다. 돌이켜 보면 그 새끼도 나에게 많은 이야길 털어놓았지만, 나도 그에 못지않게 떠들어댔다.



그 새끼한테 정말 많이 의지했었다. 갚지 못할 만큼 말이다. 그런데 난 그놈한테 준 게 아무것도 없다. 그놈이 시리도록 사랑 때문에 아파할 때 ‘어쩌냐…’라는 외마디 위로가 다였고, 또 눈치는 얼마나 빠른지 자긴 오래 못 살 거 같다면서 인생 타령을 늘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난 욕으로 응수했다. (사실 슬퍼서 그랬다)



쓸 데 없이 눈치만 빠른 그 녀석은 몇 년 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녀석의 말대로 되었다. 그놈 어머니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에 나는 마치 세상을 다 잃은 듯 오열했다. 제대로 된 친구 노릇 한 번 해주지도 못했는데 떠나보내야 하다니 미칠 듯이 슬펐다.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더니… 그 새끼 불쌍해서 어떻게 해.’ 엄마 품에서 울면서 한 말이다.



거의 반 실신 상태 직전까지 오열해서 장례식장에는 가지도 못했다. 그 녀석의 나이 22살. 참 짧고도 강렬한 삶을 살았다. 나는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여태 짝사랑 중이다. 2월이 되면 심장부터 아리고 뜨거워진다. 그 새끼 죽기 얼마 전 했던 나의 행동이 지금껏 맘에 걸린다. 그런데도 이해해줬으니 할 말이 없다.



이젠 잊으라고, 신파 그만 찍으라고 충고하지만, 난 잊을 수가 없다. 정말 강렬하고 아름다운 기억이기에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시간의 되돌림 따위는 믿지 않지만 만일 할 수만 있다면 그놈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때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하곤 한다. 흠… 그럴 수는 없겠지. 대신 천국에서 실컷 보련다.



그가 보낸 사진 2장은 여태 20대 푸릇푸릇한 얼굴로 남아있다. 그 사진을 보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얼마나 그러든지.



잘 있어. 미스터 리

나중에 보세, 11년 짝사랑 그대로 이어 가겠네

고마우이. 이 자식아. 최고의 우정이었다 말할 수 있게 해 줘서

19840409-20050223



본문 중간중간에 있는 욕설 및 비속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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