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선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그 어떤 것이라도 교류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여자들도 그렇겠지만 남자들은 특히 더하다. 무모하리만큼 모든 것을 건다. 내가 가진 것이 없어 당장 죽게 생겼어도 내 여자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바보짓도 서슴지 않는 것이 남자다. 그런 남자를 보는 다른 남자는 하나 같이. “에효.”하고 한숨 쉰다. 뒷 말도 있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남자는 나에게 의지하는 상대와 무엇이든 공유하고 싶어 한다. 여자가 뭘 했는지, 뭘 생각하는지가 궁금한 건 당연하고, 매초 매 순간 여자의 숨소리마저 잊지 못해 안달이다. 여자에게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건 지독히도 싫어하지만, 대신 자신이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믿게 하기 위함이라면, 어떤 기상천외한 행동도 마다않는 게 남자다.
이런 나약(?)한,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존재가 딱 하나 싫어하는 게 있다. 바로 쇼핑이다. 쇼핑은 삶의 낭비이며, 지루하고, 인내하기 싫지만 인내해야 하는 하나의 무서운 관문이다. 물론 군대보다는 덜하다. 그녀와의 쇼핑. 돈이 아까울까? 아니다. 그럼 물건의 가치를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남자들도 쇼핑 좋아한다. (다만 홈쇼핑) 게다가 돈은 더더욱 아닌 것이 하늘의 별도 따다 준다는 어처구니없는 작심도 하는데 하물며 진열된 물건 따위랴.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이라 해도 아이쇼핑이란 명목으로 개 끌려가듯 오랫동안 다니는 건 너무 힘들다.
그런데 여기 백화점을 수시로 들락거려야 하는 사내가 있다. 참 지지리 복도 없구나. 하하하. 짐작했는가?! ^^ 드라마 <태양의 후예> 얘기다. 난 이 드라마를 깊이 보지 않는다. 아니 깊이가 아니라 아예 안 봤다. 배경은 군대인데 순 연애질이다. 그리고 어찌나 폼은 잡는지 어디 나 같은 흠모할 곳 없는 남자들은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더라.
제발 이런 드라마 만들지 말아달라고 어디다 청원 넣고 싶다. 이 드라마 때문에 처녀, 아줌마 할 것 없이 전부 시진 앓이, 대영 앓이 한다. 어쩔 건가?
어쨌든 모종의 이유로 이 드라마를 안 보다가 한 번은 우연히 보게 됐는데, 이런 장면을 보게 됐다.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는 강모연 선생(송혜교 분)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국가적 기밀 때문에 여러 가지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유 대위의 말과 행동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며, 또 그뿐 아니라 모연을 안심시키기 위함도 있다.
때문에 강모연은 자신이 더 이상 유시진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고, 그러자 유시진은 그녀를 설득한다. 유 대위의 진심을 알게 된 강모연은 ‘이제 당신이 목숨을 다퉈야 할 때가 오면 내가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기다리게 하지 말고 차라리 백화점 간다고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다. 그 후 얼마 뒤 어제 (4월 6일) 신(Scene)에서는 유시진이 그녀에게 “백화점에 가야 한다.”고 하더라.
백화점에 간다는 것. 남자들이 여자들의 애완동물이 되어 몇 시간씩 백화점 마라톤을 하는 그 일. 나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 허나 중요한 건 거의 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의 것이라면 글쎄 나는 얼마나 그 사람을 지켜주었을까? 목숨 다해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영원히 내 품에 두고 싶었다.
목숨 다해 지킬 만큼의 그런 위기는 사실 없었지만, 내 사람이 되도록 그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일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내가 아닌 ‘내 인생 속 강모연’이 나를 지켜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게 오는 사람… 그 인생을 위하여 기꺼이 백화점에 갈 일이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본문 이미지는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이미지이며 출처는 KBS 공식 홈페이지이고 저작권 역시 KBS에 있음을 밝힙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