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B급브리핑
Tears의 B급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고 비몽사몽 간에 앉아있던 한 아이. 도무지 옴짝달싹할 기세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을 수도 없는 그 아이를 보고 아이의 어머니는 일어나라고, 정신 차리라고 맘에 없는 호통을 쳐 보지만, 여전히 요지부동. 등교 시간이 많이 늦어져 다급해진 어머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어르고 달래서 씻기고 옷 입혀 학교에 보냅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터벅터벅 걸어 학교에 도착하고, 마침내 제 책상에 앉은 이 아이는 그제야 자신이 부지런하지 못해 거른 따스한 밥 한술이 못내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온몸에 다 퍼질 때쯤, 두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매일 아침 책상 위에 굳건히 서 있는 250밀리리터의 우유 한 팩.
그러나 문제는 또 하나 있습니다. 아이는 지독하리만치 흰 우유를 싫어합니다. 매일 신선한 우유가 공급되지만 먹으면 왠지 모르게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해서 늘 먹지 않고, 그냥 갖고 오기 일쑤였지요. 한 번은 어머니의 “우유에는 칼슘이 많이 들어있으니 먹으라.”권유에도 당당히 “유당 분해가 잘 안 되는 거 같다.”며 위기를 넘기는 센스도 보입니다.
아이가 속한 학급에는 아마도 그 아이 말고도 우유를 먹지 않는 아이들이 꽤 많았나 봅니다. 어느 날 학부모님 전원은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에 이릅니다. 우유 먹이기 프로젝트가 가동된 건데요. 그 해법은 다름 아닌 마법의 가루.
자, 오늘(5월 16일)의 키워드는 <마법의 가루>입니다.
이 가루는 제법 비싸며 그 값에 비해 턱없이 적은 양입니다.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정체불명의 가루를 우유에 소량 타서 아이들에게 주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유라는 글자에도 부정의 도리질이 늘 있어왔던 아이들이 이젠 우유를 주지 않아 안달이 난 것입니다. 말 그대로 마법의 가루 작전은 대 성공입니다.
물론 처음에 말씀드린 그 아이 또한 변화의 걸음을 뗐지요. 그렇다면 이 <마법의 가루>는 무엇일까요? 눈치 채신 분도 계시겠죠? 그것은 ‘초콜릿 맛 분말 가루’였습니다. 이 결과, 아이를 스마트하게 보이게 했던 유당 분해 운운은 새빨간 거짓말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 잣대를 성인에게 들이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마법의 가루>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한참 모자라긴 합니다만, 성인들은 대학과 대학원, 박사학위라는 가루를 뿌리고, 자격증과 외국어 마스터라는 가루도 뿌립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이른바 ‘있어빌리티’(주: 있어 보인다란 말과 능력을 의미하는 영단어인 ‘어빌리티’란 단어의 합성어이다.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ㅡ를 과시하기 위해 고급차로 뽐내 보곤 합니다. 하긴 어디 그러고 싶어서 그럴까요? 모두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겠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있어빌리티를 위한 마법의 가루는 더 이상 과시용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필수이다 못해 보통이 되어 버린 마법. 말하자면, 아이들이 먹을 신선한 우유에는 늘 가공된 초콜릿 분말이 들어있는 셈입니다. 유당이 분해가 되지 않아 먹기 힘들다는 그럴싸한 변명으로 치장하지 않고도 맛있게 마실 순 있겠으나 아이의 건강이 걱정될 것 같습니다.
음식에 들어가는 많은 첨가물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첨가물 자체의 위험성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재료 고유의 맛을 해치기 때문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다는 대한민국 청년들. 그들의 미(美)와 지성(知性)은 정말 뛰어나서 논할 필요가 없다는데, 그렇다면 그들 자신의 꿈과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획일적인 교육과 사고방식, 세상이 뿌려주는 ‘필수 감미료’는 오히려 지금의 청년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생각건대 그런 상황 속에서 청년들이 던질 것 같은 작은 속삭임 하나…
‘난 누구?… 그리고 여긴 어디?!’
오늘의 B급브리핑이었습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