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에 대한 작은 오해

사랑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 누구의 말 들을 필요 없어

by LOVEOFTEARS

생명은 울음에서 시작된다. 그 울음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기쁨과 슬픔 같은 그런 영역이 아니라 호흡의 증거이다. 엄마 뱃속에서 10달 동안 자란 아이는 독립적 존재가 되면서부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그 뿐 아니다. 아이는 한동안 자신의 욕구대로 필요한 것을 요청하며 산다. 어쩌면 사람은 늘 욕구 충족에 갈급한 생명체인지 모른다.



그런데 영아기와 유아기를 거쳐 성장하면 할수록 욕구대로 살아가는 것을 억누른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여길지도 모르나 한 번 들여다보자. 이를 테면 남자는 쉽게 우는 것이 아니라며 억지 섞인 규칙을 만들어 놨고, 여자는 남자처럼 괄괄하게 행동하면 조신하지 못하다고 규정지었다. 사실 이건 법도 아니고 그러므로 지켜야 할 이유도 없다.



여기 이처럼 어이없는 규율의 연장선이 또 하나 있다. 사랑의 끝에 있거나 이별을 한 자에게 더 이상 그리워하지 말라는 모순적 규율이다. 사랑으로 인한 그리움은 반드시 둘이 함께할 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별의 시간을 지날 때의 그리움은 말할 수 없이 짙다. 오히려 사랑의 설렘에 의한 그리움보다 훨씬 더하다.



누군가는 그랬다.


그리움의 흔적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하여 자책하거나 감출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맛있게 먹은 밥을 소화하는데도 네댓 시간이 걸리는데 하물며 가슴속에 오래 갖고 있던 존재라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하겠느냐고 말이다.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청개구리 같아서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진하게 떠오르고, 비워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가득 차는 것이 이치다. 힘겨우면 힘겨워하고,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생각하고 울고 싶으면 울자. 그게 가장 사랑에 정직할 수 있는 길이고 자신의 사랑에 후회가 안 남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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