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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Nov 04. 2016

양의 침묵과 운명

부디 모든 분들의 인내의 시간들이 힘겹지 않기를…

흔히 온화한 인성을 가진 사람에게 ‘순둥이’ 또는 ‘순한 양 같다’고들 하지요. 순백의 털로 덮인 양은 그 털의 색만큼이나 온순한 성질을 가졌습니다.



주인이 힘을 다해 때려도,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양은 그 흔한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죠.



사실 본성이 온순한 탓에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경향도 없잖아 있겠지만 살아 있을 때 어눌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시력 탓인 걸 생각하면 양의 삶이나 죽음은 모두 측은하게만 여겨집니다.



그런데 양은 왜 스스로 방어하지 못할까요?



양에게는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 있는 자기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발톱이 매서운 것도 아니고 그 흔한 뿔조차 없습니다. 그야말로 동료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생명에게 위협을 받는 약자의 운명인 것이죠.



양 역시도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십여 년 전쯤 언젠가 ‘양의 운명’처럼 오롯이 타인의 자비를 구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뭐. 딱히 그때뿐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말입니다.



그 날은 주일이었기 때문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교회 갈 준비로 여념이 없었습니다. 도움을 받는 저는 죄스러움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집안은 온통 저의 외출 준비를 돕는 가족들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했죠.



그런데 약속이 어그러져서 교회에 갈 수 없게 됐습니다. 한편으론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가족들의 노고를 알기에 무척 화가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스물 중턱의 혈기왕성한 청춘은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며 비장한 표정으로 나갑니다. 그 후엔 왕성한 혈기를 그릇된 곳에 쏟아냅니다.



‘나 홀로 교회에 가보리라’



전동휠체어가 있으니 교회에 스스로 당도해서 약속했던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도전을 넘어 객기였고, 객기를 넘어 오만이었던 젊음의 이동은 얼마 가지 못하고 실패하고 맙니다. 그 결과는 앰뷸런스 행과 10 바늘 이상 꿰맨 상처들…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었거니와 스쳐가는 가족들의 얼굴은 머리 위로 흐르는 붉은 피가 무색할 정도로 아픔을 모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구해줄 사람 없는 거리 한 복판에서 양의 운명 즉,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제 자신을 목도했습니다.



가까스로 넘어진 휠체어를 일으키고, 그 위에 저를 올렸던 젊은 행인 둘은, 양의 운명이 된 한 사람이 내뱉은 수치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긴 너스레에 폭소를 터뜨렸고, 그 폭소를 듣고 나서 전 “될 대로 돼라”라고 생각했습니다.


들것에 눕혀진 채, 근처 병원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간호사와 능통한 대화를 하는 걸 보니 살아있는 것이 분명했고 신께 감사했습니다. 비록 모양은 빠지고 보이는 상처를 입었지만 크나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제 안에 투지 아니, 객기는 봄날에 눈 녹듯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10년이란 세월은 이젠 녹아버려서 한 방울의 물이 된 그것조차 말라버리게 했고, 이제 다시 새로운 의지의 눈(雪)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진짜 양의 운명과 사람이되 양의 운명을 용납해야 하는 자의 차이는 어디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차이가 거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시 저항한다는 것. 그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일 겁니다. 필시 다른 사람에 의한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수동의 자세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만약 사람이 양의 그 모습처럼 침묵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약하기 때문이거나, 저항할만한 힘이 없어서이거나, 해야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내의 때를 알고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모든 분들의 인내의 시간들이 힘겹지 않기를…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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