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인생을 적어가는 것이 먼저
학창 시절에 저는 이른바 ‘범생이’보단 ‘놀자판’이었던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엔 나름 우수한 성적과 학구열로 누구나 인정하는 범생이 중 한 명이었습니다. 허나 그런 저 역시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덫에 걸려서부터는 변해갔습니다. 글씨보단 나의 처지가 먼저였고, 숫자보단 좋아했던 또래 아무개의 이름이 우선이던 그때…
그러나 사춘기라는 그럴싸한 변명이 학생이 감당해야 할 임무를 피하도록 돕진 않았습니다. 해서 최선은 아니었을지도 저의 깜냥 것 해나갔지요.
그리고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뒤에도 배움의 관문은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처럼 가방 끈이 긴 건 아니지만 살아감에 있어 앎은 숙명이기에. 피하고 싶지만 마주했습니다.
제가 가진 여러 특징 가운데 그나마 내세울만한 것은 말하기와 글쓰기입니다. 특히나 글쓰기에서는 아직도 배움을 권면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가방 끈도 길지 않은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도 글쓰기의 방법이나 스킬을 익히라는… 더불어 다독의 습관까지 기르라는 조언들을 듣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좋은 조언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요즘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좋은 글쓰기의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는 곳도 우후죽순 늘어납니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의 흐름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떤 이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일러준 대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긴다든가 혹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야만 좋은 글이라는 잘못된 전재들이 이 땅의 모든 알려지지 않은 필자들의 가슴을 움츠리게 하는 건 아닌가.
글의 출발점은 앞서 말한 모든 것 이전에 자신의 인생을 적어가는 것이 먼저 아닌가.
60억 인구의 삶은 제각기 다르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정신은 어찌 보면 다 같을지도 모르죠.
진실이 결여된 이 시대에 글쓰기가 한 줄기 위로가 된다고들 하죠. 그렇다면 오픈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열어서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필자는 큰일을 한 것이 아닐까요.
글은 가르친다고 써지는 게 아닙니다. 글은 진심을 나누고 삶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글쓰기에서 갖가지 미사여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삶은 참으로 투박하기 때문입니다.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