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이 움트는 봄날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봄’이라는 단어에 설렘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 때문은 아닙니다. 봄은 겨우내 숨죽였던 생명이 이내 기지개를 켜는 시기죠. 때문에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사람 역시 덩달아서 힘차게 움직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표적으로 봄을 반기는 생명체인 꽃은 사람의 마음을 순수의 색으로 물들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핀 꽃은 봄의 향기를 만끽하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수의 사람들은 꽃이 피는 계절인 봄에 사랑을 꿈꾸고 피워냅니다. 사랑이 시작될 때 흔히 하는 표현인 ‘내 마음에 봄이 왔다’는 말만 봐도 억지는 아니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봄이 찾아와도 사실 그 날들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권태기가 오거나 타인에게 맘이 쏠려서 결국 헤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 전에는 영원을 약속하고, 운명처럼 여겨졌다고 한들 안타깝게도 만남에는 이별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별의 모양 역시 개인의 사랑이 그렇듯 다 다르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이별이 하나 같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이별의 잔재는 어쩌면 헤어져 있음에 의한 고독보다 내가 상대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의 조각이 더 크게 남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고된 날들이 담담함으로 다가오는데는 과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1년? 2년? 혹은 그 이상? 이도 저도 아니라면 늘 진행형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의 경우에도 그렇고 주위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대부분 3년 정도면 이별의 잔재가 조금씩이나마 지워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의 마음에 절대적인 건 없긴 합니다.
하지만 연인을 잊는 것보다 더 잊기 힘든 날, 아니 잊어선 안 되는 날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3년.
남녀노소의 많은 분들이 희생되신 이 날.
솔직히 말씀드리면, 죄송스럽지만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우리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려서 슬픔 속에 잠겨보자는 의도가 아니라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는 이 같은 참사를 늘 기억하다 보면 또 다른 참사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 아닐까요?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비록 크리스천답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부끄럽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누가 뭐래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크리스천입니다.
내일 교회적으로는 부활절입니다. 부활의 기쁨이야 참 크지만 그래도 그 기쁨의 한켠에 3년 전의 슬픔을 돌아보고 기도드리려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계절적으로는 시작의 의미가 담긴 봄이고, 교회적으로는 부활의 감격이 있는 날이지만 세월호 참사의 그 날을 잊지 않아 보려 합니다.
그 날로 인해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부디 예수 부활의 기적처럼, 회복과 치유의 기적도 찾아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