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지웠다가 다시 쓸 수 있었다면 당신 옆에서 웃는 것이 가능했을까?
지금이야 30대를 넘어 이제 아재의 길을 걷고 있지만 15세 이전만 해도 내 체형은 완전히 아기 체형이었다. 조산의 탓에 의한 장애 때문이라고 짐작만 할 뿐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한데 체형이 작았던 것이 단점으로만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가족뿐 아니라 타인의 손도 거쳐야 했던 내게 작은 체형은 이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았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아무리 조그맣고 연약해도, 학교는 가야겠기에 입학상담을 받고 테스트도 치렀다.
내 자랑을 조금 하자면 면접관 선생님이 묻는 문제들이 하나 같이 쉬워서 금방 끝냈다는 것. 예습을 끝마친 뒤라 한글도 이미 마스터. (잊지 말아야 할 건 그때 당시엔 한글을 깨치면 굉장히 어매이징 한 어린이였다는 사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날 받아주지 않았다.
이유는 다름 아닌 ‘너무 아기 같다는 것’…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과정이나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그때를 지금 와서 생각하면 꼭 영화의 한 장면과 겹친다.
영화 <록키 발보아>에서는 오래전 링에서 물러나 전설이 되어버린 <록키>가 현세대 절대 강자 <메이슨>을 상대로 마지막을 불태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결과 마침내 록키는 메디컬 테스트까지 합격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 위원들은 록키의 고연령을 핑계 삼아 복귀를 불허하는 장면이 보이는데 조건이 충족됨에도 만류했던 점이 내 경우와도 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끼워 맞추기인 걸까?
어쨌든, 그로부터 정확히 1년 뒤, 난 당당히 국민학생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손가락이 많이 작은 탓에 연필을 쥐는 것조차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연필잡이가 쉬워질 때쯤엔 형과 엄마 아빠가 주로 쓰시는 펜의 고급스러움이 날 시샘하게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볼펜은 연필보다 두께도 굵어서 잡기도 힘들고, 게다가 한 번 틀리면 지우개를 사용할 수도 없다. 때문에 저학년이 펜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쉽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그렇지 않은가.
진하게 뿜어져 나오는 잉크와 부드러운 필기감은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잊히지 않아서 결국 내가 부릴 수 있는 최고의 고집을 동원해 볼펜을 사용하게 됐고, 그 시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막상 사용하고 보니 가족들의 우려대로 글자가 틀리면 지울 수 없어 조금은 불편했지만, 볼펜인데 뭔들 괜찮지 않으랴. 마냥 좋았던 기억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당시엔 소위 '화이트'라고도 불렸던 수정액이 보편화되기 전이다.)
앞서 말한 대로 연필과는 다른 필기감에 이질적인 부분도 없진 않았지만 연필 잡는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필휘지를 구사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그토록 바랐던 어른의 모습이다. 어른들은 쫄장부처럼 틀릴까 봐 연필로 글을 쓰지 않으니까. 틀리면 틀리는 대로 종이 전체를 찢는 한이 있어도 어른들은 펜으로 글씨를 쓴다. 또 그렇게 소소한 소원 하나를 이뤘다.
지금이야 HB 연필의 흐릿함과 지우개의 조화가 소중하고, 아련한 향수로 떠오르지만 당시엔 진하고, 지워지지 않으며 수정 따위는 전혀 생각할 필요 없는 완벽함을 동경했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가 추구해 온 사랑 역시 그 시절, 완벽했지만 무모했던 볼펜의 필체를 동경해왔듯 그렇게 치부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본디 모자란 것이기에 완벽할 수가 없고 행여 완벽성을 띄려 하면 할수록 더 후퇴하는 것임을 몰랐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알았지만 외면하고 싶었단 말이 더 옳다.
사랑이 찾아왔을 때 나는 방관했다. 속에서는 설렘과 두려움, 그리움과 헤어짐에서 비롯되는 처연함 같은 여러 종류의 불꽃이 한꺼번에 타올라서 걷잡을 수 없는 화마로 발전하는데 그 모든 걸 무시하고 그놈의 완벽을 기다렸다.
확실한 건, 먼저 다가와 사인을 주거나 말을 걸어주길 기다린 건 절대 아니다. 나를 허수아비 보듯 하는 그녀에게 난 그저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되레 허수아비라고 인식해서 아주 잠시 동안 만이라도 바라봐준다면 표정도 없고, 감정도 없는 ‘황금들녘 지킴이’가 되는 일조차 기꺼이 받아들였으니 후회는 없다.
타이밍을 노리라느니, 기념일을 챙기라느니, 무조건 눕히라느니, 라면을 먹고 가라느니,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느니 하는 시시한 이야기는 내게 통할리는 없었다. 타인에겐 그게 정석이고 기본일는지 몰라도 내겐 그저 허상에 불과했던 것.
내가 그런 이론 같지 않은 이론들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남들과는 다른 조건이라면 설루션 역시 달라야 하고, 정형화된 방식이 아닌 나만의 밑그림을 그렸어야 했다.
하지만 대책은 없었고, 결국 실천은 하지 못한 채 놓아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어쩌면
연필을 버리고 펜을 쥔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을 뿐만 아니라 이젠 펜을 넘어 키보드가 대중화된 이 시점에 다시…, 그 날의 흐릿한 HB 연필과 투박한 지우개가 그리워지는 것은 무리가 아닌지도 모른다.
비록 열심히 지운다고 해도 그 흔적을 깨끗하게 지울 순 없지만 마치 새로 쓴 것처럼 위장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랑도 그처럼 지웠다가 다시 쓸 수 있었다면 지금의 이 기억이 현재형이 되어 당신 옆에서 웃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 쓸데없는 소리.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기 이전에 참 많이 늦었다. 누누이 이야기한 것처럼 난 이미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줬고 동시에 그 어떤 잔재도 타인에게 줄 수 없으니 내 임무는 이것으로 끝이다.
작가의 말
사랑은 한 번에 쓰거나 그리면 위험합니다.
진한 잉크보다는 흐릿한 연필로,
때로는 지우기도 하면서 천천히…
커버와 본문 이미지는 “Pixabay”와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영화 록키 발보아 <Rocky Balboa, 2006>의 스틸 컷이며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은 해당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