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자부할 수 있다. 마음을 다했다고
내게 첫사랑은 그야말로 두근댐의 시작이었다. 상대는 3살 연상의 학교 선배.
참.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지만, 그녀도 이제 아줌마에 사는 곳도 연락처도 알지 못하니 조금은 과감히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녀와의 만남의 시작은 그녀의 친구 덕분이었다. 그녀의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었고 때문에 그녀와의 만남은 3년의 나이 차이에도 자연스럽게 자주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나와 그녀의 연을 이어준 다리였던 셈.
이유야 무엇이든 처음에는 눈만 마주쳐도 꺼뻑 죽던 하늘 같은 선배도 매 교시가 끝난 후 쉬는 시간마다 마주하다 보니 결국엔 편하게 됐고 그 결과 말을 놓는 관계까지 이르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그녀 역시 어느새 친구보다 나를 더 자주 찾게 됐다. 오죽하면 복도 저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는 늘 내 이름이었을까?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 난 그녀의 그 외침이 싫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여성스러운 내 이름이 좋아지기 시작하던 시점도 딱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주객이 전도된 그 만남이 설레었다. 부모와 형제가 아닌 타인에게 인정받았기에. 게다가 또래에게 받은 인정이어서 더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언제나 얘기가 끝날 즈음엔 ‘넌 달라. 남들과는 달라.’하고 말했었으니…
터울이 많은 형제의 덕을 본 탓이려나. 어쨌든 난 세상에서, 아니 적어도 그녀에게만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교사와 선배들이 다 알았을 정도로 그녀와의 마주침은 잦았으며 우리 이야기의 끝은 없었다. 뭐 단순히 이야기만 있었던 건 아니다. 소소한 물건을 주고받기도 하고 멋진 글귀도 나눴다. 그리고 나중에는 못다 한 이야기를 전화로 해가며 인연을 이어갔다. 우린 그렇게 2년 동안 반복됐지만 발전된 일상을 보냈다. 비록 난 그녀보다 나이는 작았지만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책임감을 가졌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오산이었을까? 3년이 되어 갈 때쯤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기분 나쁜 느낌이었지만 부정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직감은 현실이 됐다. 그녀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었고 그가 결혼할 사람이었음을 꽤나 늦게 알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들이었다. 어린 녀석이 뭘 알았겠냐마는 그때는 정말로 그랬다.
해서 그녀 앞에서 부끄러운 짓은 다했다. 내가 한 행동이 부끄러운 행동인 줄은 알지만 그녀를 내게로 오게 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못하랴 이렇게 마음먹었었는데 어리석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나를 남자로 보지 않았고, 그저 후배의 리액션이 재미있어서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듯하다. 그녀를 향한 마음을 접기로 한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모른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을 하지. 그게 아니라면 다가서기 시작할 때쯤부터 선을 긋든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내 첫사랑에 대한 기억.
데미지는 꽤나 깊었고, 회복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한참 뒤에 난 새로운 사람을 맘에 두었고, 첫사랑 때의 구조보다 훨씬 단조롭고 힘없이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도 확실한 건 훨씬 더 많이 사랑했다. 누가 봐도 반할 외모와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단언컨대 그 사람과의 기억은 철저히 지우고 싶다. 기구했던 첫사랑보다도 더.
이렇게 내 첫사랑과 두 번째 사랑은 흔히 하는 말로 ‘나의 흑역사’가 됐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도 그때만큼은 사양하겠다. 참으로 오래전 일이다.
혹자는 깊은 상처 때문에 여태껏 기억하고 있고 더 이상의 사랑은 없으며 고로 본인 브런치의 사랑이라고 쓰고 호흡이라고 읽는다 매거진의 전체 내용들이 그때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이후로도 사랑은 찾아왔고, 그 사랑의 결실이 현재까지 이어져왔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주관적으론 그 뒤에 있었던 사랑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더 이상 다른 곳에 쏟을 잉여자원이 전혀 남지 않아서다. 이렇게 떠올리는 것이 별 달갑잖은 순간을 들춰가며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사랑이다.
내 생각에 사람들은 사랑을 정말 쉽게 하는 듯하다. 겪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성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도리어 점점 더 아마추어 틱 해지는 내게는 정말 놀라운 상황이다. 이별도 쉽고 새로운 사랑도 쉽다. 그저 방관자의 입장으로 지켜본 탓이려나. 뭐, 그런 이들을 탓하고자 하는 맘은 없다.
다만 나는 배우는 것이 어렵고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사랑이야 말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들… 즉, 불멸(不滅)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곁에 있어 금방이라도 피어오를 수 있는 이 감정은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막상 눈앞에서 맞닥뜨리면, 생전 처음 보는 것 마냥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두 번의 실패와 그리고 밝힐 수 없는 지난날의 조각들까지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사랑은 어렵다. 경험과 기간만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순간을 소중히 하고, 최선을 다해서 해보고, 느끼고, 누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더라.
영화 <5 to 7>에서의 남녀는 지나치게 서툴러서 자신의 욕망만을 쫓았고, 또 다른 영화 <라 라 랜드>에서의 남녀는 지나치게 진중해서 서로에게 배려만 했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 아닌 공통점은 다름 아닌 헤어짐이다. 사랑은 이처럼 배려와 이기. 어느 한쪽으로만 흘러도 와해된다.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느끼는 씁쓸함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흔한 소재들
이렇게 사랑은 어렵다.
여러 상황과 마주하면서 비록 러브 그라운드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었으나ㅡ 「어느 날엔가 은퇴를 번복하고 새로운 멜로디로 사랑을 읊조릴 수도 있지만」 자부할 수 있다. 마음을 다했다고. 그래서 더 이상 쏟을 마음이 없을 정도로 다 줬다고…
작가의 말
오늘 글은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 역시도 열정과 냉정을 잘 맞추지 못하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어려운 만큼 사랑은 중독성 최고~!!
주 : 본문의 러브 그라운드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 부분은 당분간 ‘러브 그라운드’에서 은퇴한다의 본문 링크입니다
커버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영화 <5to 7, 2014>의 포스터와 영화 <라라 랜드 La La Land, 2016>의 포스터이며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은 해당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