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같은 사랑
사랑은 먼지와도 같다. 어쭙잖게 정의를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마치 아이들이 만지며 노는 지점토 같아서 어떤 형태로든 만들 수 있기 때문이며, 또 사랑은 처음엔 쌓인 줄 모르다가 시간이 흘러 방치하면 불어나고 그로 인해 처치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경험담이다.
정말 작은 입자로 내 안에 안착한 사랑이란 먼지는 존재조차도 알지 못해 놔두었더니 어느새 불어났다. 이대로 가다간 먼지가 내 속에 사는 건지 내가 먼지 속에 사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거 같았고, 집중해야 할 것이 많은데 사방을 둘러봐도 먼지뿐이니 하는 수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에 들어갔다.
약간은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예상 밖의 난관이었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는 추억의 조각들, 각종 세제와 걸레를 총동원해도 지워지지 않는 달콤한 잉크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사나이가 이깟 먼지와의 싸움에서 져서야 되겠는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더구나 포기하면 내 호기로웠던 마음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더 그랬다.
깔끔하게는 지워지지 않아도 마음 청소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살던 차분했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잡생각도 안 나고, 뭔가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마음에 허무함이 찾아왔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일이면 갖가지 때와 먼지들이 오늘 청결했던 이 곳을 또다시 채워나갈 거니까.
어차피 재차 닦아내고 쓸어내면 될 일이지만 그래 봐야 새 보금자리 같은 느낌은 들지 않을 터.
게으른 영혼은 내일 또 찾아올 나태함에 지레 겁을 먹었다.
젠장. 티도 안 날 청소.
그야말로 한낮의 이불 킥을 하고 나서야 내 마음 청소는 끝이 났다.
청소의 교훈은 ‘잔 먼지도 다시 보자’
어쨌든 다 끝마치고 나니 조금은 억울했다. 두 팔 걷어붙이고 청소했으면 말끔히 지워지든지 그게 아니라면 추억의 먼지 따위가 바람에 실려 들어오질 말든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모든 것이 다 제자리였다. 후회와 한숨도, 그녀의 음성과 모습, 숨결까지 다 남아 있다. 잔재가 진하게 남을 수 있음을 간과했다.
공식적으로 언급은 안 했지만 누가 봐도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프로 스포츠 선수의 마음이다. 해서 당분간은 이 러브 그라운드를 떠나야 할 것 같다.
물론 은퇴를 했다가도 무대를 못 잊어 수차례 번복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있지만, 혹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니까 만에 하나 복귀를 입에 올려도 괜찮겠지?
그러나 그땐 그 때고 지금은 떠나려 한다.
아까 전에 여러 먼지와 조각들이 내 안에 가득해서 힘들다고 했었다. 하지만 사랑의 현역을 유지하거나 은퇴해도 내 마음의 포메이션이 지금과 동일하다면 은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비록 여전히 보잘것없는 먼지와 씨름할 것 같지만 타인에게 티 안내며 조용히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렸다.
어쩌면 연애나 사랑은 현실적 시각으로 보면 이뤄지기 전까지는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낼 동안, 드라마에 한편에선 기적 같은 사랑을 하고 있더라. 허준재와 심청의 국경 아니, 인종, 아니 인류를 뛰어넘는 사랑.
그저 인어라고 해도, 설사 그 정체를 알아도. 같이 붙어 있고 오랜 시간 지내다 보면 그리고 그 둘이 잘 생기고 예쁘면 사랑에 빠지더라. 아. 그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인어의 언어를 통달한다. 그리고 그 모두가 참 샘나게도 아름답게 포장되더라.
사랑은 진짜이지만 때로는 가짜이기도 하다. 선택받은 자들에겐 쉽고, 수많은 밤을 지새워가며 작아진 먼지 하나가 놀랍게 불어날 정도로 간직해도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
본문 이미지는 SBS 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 이미지이며 출처는 SBS <푸른바다의 전설> 공식 홈페이지이고 저작권은 © SBS&SBS Contents Hub.에 있음을 알립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