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쟁이 시선으로 본 드라마
모든 드라마를 섭렵하고 분석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또래 남자들에 비해선 ‘드라마 쟁이’라 불릴 만큼 많이 시청했다. 특히 한국 드라마에는 아직 깨지 못한 공식들이 참 많다. 나름 기존 드라마의 틀을 버린다고 애를 써보지만 결국 그 밥에 그 나물. 그러나 우린 속고 또 속는다. 아니 일부러 속아준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간에 모두가 느꼈을 드라마의 뻔한 법칙에 대해 알아보자.
한국 드라마의 십중팔구, 아니 십중의 십은 사랑이야기다. 정극은 물론이고 사극에서도 이 공식은 존재하며 심지어 퓨전물과 판타지물에서도 이어진다. 물론 이해한다. 사랑 이야기를 가장 선호하는 나로서는 반가워할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심지어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에서도 어김없이 로맨스 요소는 등장한다. 오죽하면 운동선수는 운동장에서 연애를 하고, 의사는 의사 가운을 입고 연애를 하며, 항공사 직원은 하늘 위에서 연애를 한다는 농담이 있을까.
현실 속 실장은 사실 아직까지 제 앞가림만 신경 쓰기에도 벅차다. 하긴 장(長)의 직함을 달았으니 업무 파악이 끝난 건 물론이요. 부하직원을 부릴 수 있다. 그러니 엄연히 그도 능력자다. 허나 그가 거쳐야 할 업무의 산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게다가 졸병 시절 겪은 사회 얼차려는 그에게 과한 아첨 스킬도 선물했다. 때문에 더 높은 곳을 향해 전진해야 하는 아무개 실장은 해바라기처럼 어떤 여자에 반해서 모든 시간과 물질을 허비할 겨를이 없다.
아… 그리고 언제나 아무개 실장의 눈에 들어오는 여자는 사회초년생 신데렐라다. 물론 요즘은 관계 설정을 이전보다는 훨씬 다각도로 접근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실장님들이 호구가 되는 장면은 꽤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안 그런가. 이 세상의 반은 남자 반은 여자인 건 분명한데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속 남자와는 달리 난 오징어 신세라니. 언제부터인가 방송하는 핫한 드라마의 주인공은 지나치게 멋짐과 예쁨이 뿜뿜이다. 이런 현상은 심지어 타인으로부터 나름 ‘호감’이란 소릴 듣는 사람들에게도 좌절을 안긴다. 그러니 김수희 씨의 노래 <애모>의 후렴구처럼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정말 그렇다. 그 혹은 그녀도 TV 저 너머의 처녀 총각을 보며, 안구 정화됐을 텐데… 배우들이 대사를 날리면 꿀송이 같고, 왜 내가 하면 이리도 밍밍한지 모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이불 킥을 했겠는가.
뭐, 다 좋다. 예쁨 콸콸 쏟아지는 처녀총각이 연애한다는 데 더 이상의 설명이 뭐가 필요하랴.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을 하면 되지 치사하게 어쩜 그렇게 갈라놓으려 애를 쓰는 걸까. 솔직히 연애의 강을 건너는 이들은 체력소모가 엄청 심하다.
왜? 평생 볼 눈치를 이때 다 보기 때문이다. 젊을 때 연애를 권장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눈치 보고 몰래 연애하느라 몸이 허해져도 진 빠지지 말라는 큰 뜻. 한데 눈치의 늪을 건넜더니 이게 웬걸. 양가 부모님이란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놀라운 반대 스킬과 더불어 늘 동반되는 액션은 머리 질끈 동여매고 자리보전하고 누운 채로 쏟아내는 매몰찬 한 마디 선포.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돼….”
드라마는 대본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대본이란 것도 하나의 글이다. 글의 요소야 내가 왈가왈부할 경지는 못 되지만, 짧은 소견으로는 대본 역시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의 전통적 특징이자 탈피해야 할 문제점 중 하나는 극의 절정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는 것. 물론 갈등의 요소가 재미를 좌우한다. 아무도 그 의견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데 어느 정도 하다가 봉합되는 부분도 있어야 하는데 이건 뭐 끝장토론도 아니고, 끝까지 싸우자는 식이다. 극의 초반이 마무리되고 배우들도 자신의 역할을 인지해 한 몸이 되어갈 즈음에는 배우들이 고스란히 배역에 녹아들기 때문에 좋은 시나리오라면 재미가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그렇게 배우들이 열연해서 정상급 반열에 올려놓으면 연장방송 또한 인지상정이다. 거기까진 좋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잘 마무리돼야 할 드라마가 그때부터 냉면의 맛처럼 슴슴해진다.
회차를 늘여야 하니 천천히 진행시켜야 하고 그러다 보니 ‘남이 님이 되고 님이 남이 되는 것’조차 그다지 큰일이 아닌 요즘 시대에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바로 위와 직결된다. 절정이 과도하게 모차렐라 치즈처럼 길어지니 갈등을 봉합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상처가 나고 뼈가 부러졌으면 닥터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무시하고 그냥 ‘빨간약’만 들이부은 채, 붕대만 칭칭 감는 듯한 그런 무지를 보여준다.
예컨대 16부 작의 미니시리즈라면 적어도 14회에서는 갈등의 요소가 모두 해결돼야 한다. 그래야 맘 편히 연애나 결혼을 하든 아니면 오랫동안 그리워 한 부자아빠를 만났든 간에 행복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속고 속이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과감히 또 속아주며 제 일인 양 마음 졸였던 시청자들을 위한 진짜 보답 아닌가.
드라마의 피날레를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빨리 감기 하는 비디오의 화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쉬울 것을 그동안은 왜 맘 졸였나 하고 자문하며 자괴감 느낄 때가 있다.
뿐만 아니라 갈등 봉합의 계기 역시 어떠한 당위성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채, 마치 “우리 진짜 친했어. 몰랐니? 이거 촬영이야.”하고 놀리기라도 하듯 무한대의 웃음으로 끝나거나 혹은, 집필하던 펜의 잉크가 마르기라도 한 것처럼 꺼내는 비장의 카드…
1, 3, 5년 후…
그 어떤 격정적 사건이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괴롭혔든 간에 홀수 단위로 흐르는 시간의 흐름은 마음과 몸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적의 치료제다. 꼭 틀린 건 아니지만, 꼭 맞다고 볼 수도 없는 봉합 방식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힘 빠지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삶에 있어 사랑은 정말 큰 감정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주제를 제외하면 드라마가 별로 없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가뭄에 콩 나듯 사랑이 벗어난 드라마는 언제나 상스러운 욕이 난무하는 ‘형님 드라마’이거나, 살인이 일상이라 피로 얼룩진 비극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쭙잖은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물이다. 바라기는 이전에 만났던 시트콤 ‘세 친구‘와 같이 유쾌하거나 혹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장애인 관련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참 좋겠다.
꽤나 오래 주절댄 듯하다. 여태껏 드라마의 법칙, 특별히 한국 드라마의 법칙에 대해 말했는데 사실 글로는 이렇게 떠들어도 또다시 속아보자라는 마인드로 보게 되는 것이 드라마의 매력 같다. 그건 시청자들이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과도 같은 드라마를 통해 잠시 우리 일상의 시름을 내려놓고, 쉼을 얻고자 함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준희가 진아와 꽁냥꽁냥 하는 모습은 참 좋다. 아니 솔직하게는 진짜 부럽고, 진짜 부럽고, 진짜 부럽다. 화가 난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이미지이며 출처는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공식 홈페이지 內 게시판 짤★공장 (퍼가요~♥)이고 본 프로그램과 이미지의 저작권은 JTBC에 있음을 알립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