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편견 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OFTEARS May 28. 2018

사랑함에도 편견은 있다

다른 종류의 편견

벌써 10년 가까이 되는 일이다. 교회 하계 수련회를 1박 2일로 가게 됐다. 보통은 다른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걸 싫어해서 당일코스만 다녀오거나 아니면 1박을 하는 일정이더라도 그날 들어가거나 이튿날 아침 일찍 귀가하는 편인데 그땐 꽤 먼 곳으로 가서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내 마음은 항상 모든 일정을 소화하길 원했던 것이 사실이다. 주님께서도 그런 마음을 아셨는지 날씨는 무척 좋았다.



한여름 뙈악볕도 마다하지 않고, 무한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후배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지만 늘 내게는 신체라는 장애물이 있었고 그때마다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한 번은 고독이 뚝뚝 묻어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목사님께서 “티어스. 그대는 나와 1:1 데이트를 합시다.”라는 제안을 하셨다.



후배들은 일제히 “오~~”하는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눈치 100단의 삶을 살아온 내게는 그 말이 곧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파악하기 쉬웠다. 그것은 곧 긍휼의 의미요. 또 책임감의 연속이었다.



모든 인원이 발을 물리고 마침내 목사님과 나만이 넓은 홀에 남게 됐다. “우리 생각보다 깊은 대화를 많이 못했다.”라고 먼저 운을 뗀 목사님은 젠더의 차이는 개의치 말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고 하셨고 난 그러자고 답했지만 각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딱 떠오르는 게 없었다. 



결국 이야기의 주도권은 목사님이 가져가셨다. 고민이 없냐는 물음에도 없다며 거짓말을 했고, 그저 웬만하면 다 좋다고 얼버무렸다.



나로서는 당신이 가진 책임감과 긍휼심만 고맙게 받을 테니 어서 그 짐을 내려놓으시라는 일종의 배려였다. 하지만 목사님은 마치 그런 내 애티튜드를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고개를 저은 후, “지금 얘기하지 않으면 널 위해서 뺀 내 시간이 무의미해진다.”면서 마인드 게임을 걸어오셨다. 



그 역시 알아챘지만 이 상황을 진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이 게임에서 패배하는 것이었다.


Source : Unsplash



고민 끝에 결국 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고 그 과정에서 옛 일을 드러냈으며 문제는 사람들의 시선 즉, 장애인-비장애인 간의 만남에 대한 눈초리라고 말했다. 꼭 그녀가 아니더라도 훗날에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게는 사랑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했으니 ‘오래오래 행복했다’는 동화적 관점은 통하지 않는다. 내 짝은 반드시 비장애인이어야 한다. 단호하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며, 이건 조건을 따지는 것이 아닌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나는 목사님이 이런 류의 묵직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응했다. 목사님의 동공은 미세하게나마 흔들리는 것 같았다.



여러 말씀을 했지만, 요지는 간단했다. 장애는 있지만 네 정신세계 때문에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연애나 결혼 상대를 정할 때 비장애인만을 고집하지 말고 장애인도 고려해 보라는 것. 아마 장애인 남성이 장애인 여성을 이성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 우습게 보이셨던 모양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용납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시간이 답을 줄 것이라는 말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됐다. 그 마무리에 따르면 사랑도 내 원대로 하지 못하는 신세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과연 시간이 내 생각을 바꿔놓았을까. 아니 동일하다. 오히려 지금이 더 굳건해졌다. 그리고 내 생각이 바뀌지 않은 것처럼 끼리끼리 만나야 한다는 세간의 사고방식 또한 변하지 않았다.



현대의 사랑을 두고 인스턴트다 조건부다라며 사회적으로 날을 세우면서도 장애를 가진 개인이 비장애인과의 연애와 결혼을 바라면 코웃음 치는 모순.



어차피 비장애인과 결혼하더라도 원활히 돕지 못할 텐데 최선이 아닐 바에는 차선으로 마음이라도 맞는 사람을 만나라는 어쭙잖은 논리는 어디서 온 걸까. 물론 현재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접은 지 오래니까 아무렴 어떤가 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내가 타인으로 하여금 고집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과거부터 원칙을 고수했던 건 장애를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장애를 인정하는 건 물론이요, 내 상황 또한 잘 알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세월의 흐름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결혼 생각까지 접게 했다. 남의 집 귀한 딸 고생시키는 것 아닌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 컷. 출처 =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홈페이지 內 포토갤러리 게시판.



드라마 상에서 앙칼진 언행과 과격한 액션으로 신체 건강한 남녀를 두고, 모자라다며 격렬히 반대할 때, TV에서 보이는 것보다 수만 배는 심할 내 운명을 보고, 몇 번씩이나 잘한 결정이라고 되뇐다.



그러나 만일 끝끝내 이 같은 결정을 하지 않고 여전히 연애와 결혼 사이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고 해도 누굴 사랑하고 누구와 결혼하느냐의 대한 선택은 내 몫 아닌가. 격렬한 반대와 눈물 쏟아내는 상황이 끊이지 않아서 맘의 피가 마를 날이 없다한들 말이다.



어쩌면 이 역시 또 다른 종류의 편견일지 모른다.



본문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이미지이며 출처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공식 홈페이지 內 포토갤러리 게시판이고 본 프로그램과 이미지의 저작권은 JTBC에 있음을 알립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우는 슬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