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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May 29. 2018

최선을 다한다는 것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존재하니까



“저희들은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JTBC의 보도담당 사장이자 평일 뉴스룸을 진행하고 있는 손석희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언제나 이와 같다. 이는 뉴스룸의 전신이기도 한 뉴스 9 때부터 그랬고, 예상컨대 손 앵커께서 직접 뉴스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늘 동일할 것 같다. 처음엔 그저 으레 하는 인사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러나 5년이란 시간 동안 같은 멘트로 일관된 클로징을 장식하는 것은 평소 소신에서 비롯됐다고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내 라이프 모토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됐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의 내 오랜 모토는 ‘Never Give Up…’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때때로 세상에게 백기투항 하고픈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빌미로 그저 생애의 끈만 부여잡는데 그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패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의 인생이지만 거듭되는 실패에도 최선을 다한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진 않을까 하는 맘에서 모토를 교체하게 됐다.



그다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난관이었다. 가진 역량은 부족한데 미천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것일까 하는 자문(自問)도 늘 따랐다. 물론 최선에 있어 왕도는 없지만 자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똑 부러지지는 않았어도 주어진 일을 미루진 않았고, 몸이 축나는 한이 있어도 약속을 깨는 일은 없었다. 모바일 메신저가 주류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많게는 두세 번씩 메일을 체크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었다. 이밖에도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해왔다.



Source : Pixabay



그런데 언제부턴가 최선을 다 하던 삶의 형태가 조금씩 무뎌져 가기 시작했다. 재작년 11월 말에 발목 골절이 되면서 통깁스와 반깁스를 오가는 부상의 날들을 살았다. 가뜩이나 움직이기 힘들다고 편견 담기 매거진을 비롯한 브런치 전반에 써 왔지 않는가. 한데 더 힘들게 된 것이다.



화장실을 한 번 가려해도 난장판에, 누워서만 지내다 보니 몸은 점점 쇠해갔다. 그렇게 9개월여의 긴 여정이 흘러 완쾌라는 행운을 얻었지만 후유증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 후유증들 가운데는 완전 작별한 것도 있지만 동행하게 된 것들이 있는데 사실 여전히 힘든 점이 존재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상황이 녹록지 않았으므로 완벽성을 추구하고 싶어 하던 모습 가운데도 변화가 불가피했고, 그 일환으로 내려놓을 건 되도록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전히 몸을 돌보는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사실 별건 없다. 그저 덜 먹고, 덜 스트레스 받으려 힘쓰고, 맘의 노동을 덜 하는 것 정도일 뿐. 물론 대부분이 그렇듯 쉽지만은 않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메일함을 열었다. 업무용 메일이었다. 그러다가 그냥 넘길 수 없는 하나의 메일을 발견했다. 내 글을 주의 깊게 봤는데 전문 필진 활동을 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고료는 많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작자란 가난하고 주린 마음에서 나오는 글로 사는 사람이기에.



비록 칼자루는 그쪽이 쥐었더라도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취함과 동시에 최대한 예의는 지켰다. 그리고 답신을 기다렸다.



조금 불안했다. 그쪽에서 보낸 시일이 꽤 지나서다.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다음날, 늦었다는 통보가 담긴 메일을 읽고 말았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 메일함을 열지 않았던 자세는 고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태만했다. 하나를 쥐면 다른 것은 놓아야 하는 원칙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난 이것이 최선을 다 하지 못한 탓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신중하고 사려 깊게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본다.



본인은 일을 놓쳤지만 많은 이들은 일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잃곤 한다. 상실은 찰나의 순간이거나 한 번의 방심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당신 자신의 탓이라고 규정지을 순 없으리라. 그러나 사소하다고 느꼈을 그 무엇. 이제는 시간을 할애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그 무엇을 지금 이 순간 다시 떠올려 행함으로서 훗날에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게 되기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존재하기에.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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