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L Time 16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를 지켜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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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다시 할게요. 하나님 오늘은 자주 드리는 방식 말고 다르게, 대본 없이 가볼게요. 아… 방금 한 말은 웃게 해 드리려고 농담한 거였어요. 평소에도 대본은 없어요 아시죠? 그리고 이 말은 꼭 해야겠어요. 왜냐하면 지금 아니면 이런 솔직한 대화 자주 하지 못할 거 같아서요.
하나님 정말 감사해요. 아침마다 일어나게 해 주시는 거. 제 심장에 시동을 끄지 않으시고, 영혼을 거두지 않으셨단 이야기잖아요. 덥다 덥다 앓는 소리를 해도 그래도 활동하기 좀 더 나은 여름이 더 좋은데, 실은 가을과 겨울 사이의 한기도 사랑해요. 운치 있잖아요. 힘 빠진 태양광은 또 어떻고요.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아요. 다만 미세먼지 많은 천국? ㅡ.ㅡ
만지고 느끼지는 못해도 하얗게 물드는 설국도 기가 막히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건 주님의 덕택이에요. 그림의 ‘ㄱ’자도 모르지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 밥 로스 씨를 100명쯤 데려와 보세요. 주님의 작품만 같은가. 그래서 내 일상이 매일 비슷하게 흘러도 웃을 수 있는 거죠.
아버지는 늘 같지만, 꼭 다르게 하시니까…
그런데 주님! 1년 아니 하루 이틀만 흘러도 난 매일 변해가요. 그리고 늘어가는 건 걱정거리이고요. 오늘의 염려는 오늘로 족하다고 하셨지만 사실 아시잖아요. 이게 마냥 성격 탓만은 아닌 거. 새로운 염려가 생겨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요. 꼭 나한테 닥쳐 올 시련 같은 걸 걱정하죠. 물론 아버지께서 해결사시니 덕분에 이겨냈죠. 그런데 삶이 꼭 산봉우리 같아서 늘 굴곡져 있어요. 낮은 포복으로 배밀이를 하든 네 발 자세로 기든, 깜냥대로 아니 도움받으면서 가까스로 넘으면 또 새로운 봉우리가 나타나요. 그래서 언제나 저는 허리를 펼 세가 없죠. 가끔은 아버지 ‘당신께서’ 지나친 장난을 하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엄마한테 한 번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은 깍쟁이시라고. 천하제일 장꾸시라고요.
들으셨죠? 그것도 선명하게 ㅎㅎㅎ
그 봉우리를 성경에선 ‘연단’이라고 표현하는데 제가 겪는 모든 일들이 그저 연단이라고 칭할만 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연단이란 말은 굉장히 경건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서… 때로는 주님의 연단이 아닌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비롯된 트랩 같기도 하고요. 해서 모든 좋지 않은 일들을 굳이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그 둘 중 어떤 형태이든 행복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물론 맨날 불행을 쥐고 살진 않지요. 하지만 그래도 힘들 거든요. 1년 아니, 하루하루가 걱정의 가루 속에 뒤덮일 만큼.
이 증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요. 아버지가 정해놓으신 날짜와 시간의 흐름, 그 불변의 법칙에 따라서요. 그 흐름은 책임이라는 옷을 하나 둘 입혀요. 덥거나 추워서 이탈하고 싶다가도 출구는 없고, 벗을 수도 없어요. 그렇게 했다가는 가르치기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손가락질할 거거든요. 마치 나만 빼고 모두 한대 짠 듯이 말이죠. 그렇게 되면 손가락들이 무지 싫을 거예요. 원망스러워서 나쁜 맘을 갖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요.
나이를 먹고 자라 가고, 늙어간다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물론 주님 계신 높은 곳에선 하나의 점 같아서 조그마니 귀여울지도 모르겠네요. 꼭 요새 뜨는 아기 윌리엄과 벤틀리처럼요. 뭐, 근데 인격적이시기도 하고, 예수님을 보내시기도 하셨으니 이해는 하시리라 믿어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뭐냐면요. 힘이 든 줄 몰라요. 아니 모르는 게 아니고 알려고 하질 않지요. 그저 기회만 있으면 피하려고 하죠. 그저 먼발치서 망원경을 들이밀고 가늘게 눈을 뜬 채 천체를 관전하는 그런 상황이랄까. 물론 모르면 오기 싫죠. 저만해도 그러니까요.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이래요. 왜 아시잖아요. 어린아이들이 뭔가 새로운 게 있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주저 않고 돌진하는 거요. 그게 부모이든 물건이든, 먹을 것이든 아이들은 무언가 만져보고 입에 넣고, 핥거나 빨아요. 그 정도가 심해서 가끔은 때리기도 하고. 아기들은 궁금하면 다가와요. 그리고 좀 더 크면 묻기도 하고, 이리저리 훑어보기도 하고요. 적어도 약자들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면 배우들이 뜨는 방법은 단 하나잖아요. 대중의 관심.
그것 하나면 돼요. 그거 하나면 일약 스타가 되죠. 저나 다른 약자도 마찬가지예요. 엔터테이너가 현업이거나 선망하는 직업이 아닌 이들에게도 관심은 필요해요. 관심이 있어야 궁금증이 생기고, 궁금증이 풀려야 갭이 줄어들잖아요. 친해지는 거… 그게 곧 갭 줄이는 일 아닌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글을 마구마구 쓰는 거예요.
“아, 저 사람은 내가 살 수 없는, ‘다른 차원문’에 사는데 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근데 나랑 별반 다른 게 없네. 우와 신기하다. 저 사람 좀 궁금한데. 완전! 레알! 진심으로 말이야.” 이렇게요.
그 사람이 하나든 둘이든 상관없어요. 주님이 내 글을 통해서 새 인연을 만나게 하신다면, 그거야 말로 축복이죠. 그것처럼 놀라운 일은 없으니까요. 해서 제 글에는 밝은 층보다 어두운 층이 더 많은지도 몰라요. 왜냐면 이것 역시 주님의 이끄심이니까요.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고, 좋은 펜이나 PC가 있어도 아버지의 이끄심 없인 단 한 마디도 쓰지 못해요. 이건 전적인 제 경험입니다.
말과 글 모두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적절함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아요. 필요한 것이라면 따라야죠. 한데 모순인 것은 세상은 아픔이 있는 자, 상대적으로 나보다 약한 자들에게 인내와 관용을 바란다는 거예요. 저의 삶과 글 모두 똑같아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갈망하죠. 역전 영화 같이 짜릿하거나 미담 스토리를 바라요. 눈물이 저절로 흐르는 따뜻한 소재라면 더더욱 금상첨화고요.
저도 알아요. 쓸 줄도 알고 쓸 수도 있어요. 이미 써 온대로, 아버지께서 도우신다는 전제라면요. 제 까짓 게 글이지 뭐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갈까요. 모르긴 해도 몇 편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결국엔 작위적이고 허위 같아서 길게는 매력을 못 느낄 거예요. 적어도 소설이 아니라 내 삶을 써낸다면 진실한 게 좋을 것 같아요. 질그릇도 쓰시는 하나님, 질그릇이 써내는 글이기에 그 성분 또한 변할 리 없으니 한없이 싱겁고 밋밋할지라도 그럴수록 더 오래 단단히 빚어지게 하시고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내도록 도와주세요.
주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냥 그런 게 아니라 수퍼 퍼펙셔니스트예요. 다만 상황 때문에 그 성질을 많이 죽이고 살뿐. 제 성향은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제 성향을 바꾸지 않으신다면, 세월의 흐름 따라서 아무리 죽이고 산들 변치 않겠지요. 앞서서 책임이 무거운 게 싫다는 식으로 말씀드렸는데 사실 완벽주의자들은 책임을 지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거든요. 제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원치 않는 걸 밝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케어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보를 과다하게 알아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물론 이걸 오늘날의 사람들은 투 머치 인포메이션 (Too Much Information) 줄여서 TMI라고도 하던데 제가 딱 그래야 할 사람이거든요. 비밀은 별로 없고, 사생활 보장은 되지 않는.
아무튼 TMI가 필수인 저라는 사람도 가끔은 정보 공유의 횟수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해요. 뱉어내는 말과 지어내는 표정, 그리고 행동거지 등을 너무 많이 적나라하게 오픈하면 저로 인해 받은 타인의 상처는 어찌 치유될까 싶어서요. 드라마 <디스 이즈 어스 This Is Us, 2016~Present>의 주인공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잭 피어슨처럼 거대한 책임은 못 지더라도 최소한 내 두 눈에 들어온 ‘내 사람들’이 저로 인해 슬픔의 눈물이나 걱정의 눈물은 짓지 않도록 최대한의 책임감으로 살아보려 합니다. 도와주세요!
말은 이렇게 해도 심히 ‘쫄보’라서 언제 그랬냐 하고 변하는 것이 제 약한 심령입니다. 긍휼히 여겨주시고 굳건하게 하여 저를 모르는 타인까지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세요. 주님! 오늘은 제가 감히 세상에서 가장 건방진 기도를 주님께 드렸고, 더불어 활자로도 남깁니다. 용서해주시고, 솔직했던 부분만 바라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겁나는 세상사, 힘든 세상사보다 빛나는 천국 위에 좌정하신 빛의 근원 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죄로 인해 주님을 잊고 사는 시간 있다고 해도 주님을 떠나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오늘처럼 주님과 많은 대화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지금도 살아계신
나의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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