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TL TIME

가룟 유다에게서 나를 보다

PTL Time 18

by LOVEOFTEARS
출처 = Pixabay



가룟 유다



개인적으로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다. 사탄과 마귀 같은 영적인 악의 존재도 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최종적으로 명령한 본디오 빌라도 역시 싫지만, 그래도 은 30에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야 말로 생각하기 싫은 인물 중 하나다. 은 30은 당시로써도 많은 돈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다는 주님보다 재물을 사랑했던 자다. (배후에는 사탄이 있긴 했지만)



유다는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고 알려졌다. 열 두 제자들 가운데 돈 관리를 맡았을 정도로 셈에 훤했고 자금 흐름에 대해서도 특출 났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일까. 성경에서 그가 언급된 곳에는 언제나 돈이 연관돼 있다.



또 그는 제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남유다 사람이었다. 때문에 나머지 제자 11명이 소위 왕따를 시켰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출신지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경에 가룟 유다가 주님의 말씀에 겸손함으로 순종하는 장면은 찾기 힘들다.



유명한 사건 중 하나인 ‘향유 옥합 사건’ 때도 300 데나리온 어치라며 “이것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면 좋을 것을…”(마가복음 14:5) 하면서 여인에게 호통을 쳤다. 여인은 물질보다 주님이 먼저였고, 소위 엘리트 제자였던 그가 오히려 물질을 택했다.



어디 그뿐이랴.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는 주님의 말씀에도 뻔뻔하게 “주님 저는 아니지요?” (마태복음 26:25)하고 되물었다. 또 예수님께서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요한복음 13:26)라고 말씀하시며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완악함은 극에 달해 자신의 일을 행했다.



사실 이 모든 건 주님의 싸인이셨다. 이제라도 돌아오면 용서해주시겠다는… “네 맘 속에 품은 악, 즉 죄를 앎에도 불구하고 널 여전히 사랑한다.”는 성스러운 프러포즈(?)였다.



그럼에도 그는 깨닫지 못하고, 아니 더 정확히는 깨달을 생각조차 없이 철저한 아집에 쌓여있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형의 내부 고발자였던 사람.



생각할수록 치 떨리는 이의 모습 가운데서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내가 겹쳐 보였다.



나의 주인은 누구신가.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주님인가. 아니면 유한하고 불안정한 세상인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건 무엇인가. 나를 창조하신 주님인가. 아니면 그분이 창조한 피조물인 인간인가. 혹, 물건은 아닌가.



내 우선순위는 무언가. 내 쾌락과 유희와 오락인가. 아니면 그분의 명령인가.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것과 간음하면서 입술로만 주님을 시인하는 것은 아닌가.



뉴스 꼭지 가운데 어두운 부분이 보도되면 혀를 차며 비난하면서 실제로 내 마음엔 어마어마한 무언가를 숨기는 것은 아닌가. 한 영혼인 사람이 두 주인을 모시면 그것이야 말로 역모이고 반란이다. 유다는 그 대가를 치렀는데 난 과연 온전한지 심히 고민된다.



절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후배들이 우글거리는 삶의 현장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20대 때나 30대 초반에 누렸던 피지컬이나 멘틀적 강단은 예전보다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더불어 나를 돕는 친구 형, 누나는 물론 가족들은 점점 더 노년에 접어든다. 그러니 하물며 인생의 멘토이신 부모님은 어떠실까.



요즘 들어서는 매사에… 그 종류가 무엇이 됐든 실수하는 게 싫고 두렵다. 최대한 안전하게 가고 싶고, 폐 끼치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뿐만 아니라 계절과 기후는 교회에 못 가는 이유에 아주 적절히 포함된다. 한파이니, 최악의 미세먼지니 하는 것들에 무릎 꿇는다. 주위에 우려와 걱정 또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핑곗거리다.



사실 고백건대 이것들은 전부 핑계가 아닌 팩트다. 허나 문제는 이 모든 것을 핑계로 치부하지 않으면, 나는 분명 ‘상황’ 속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 말고도 어떤 방향으로든 주님과 멀어질 상황은 넘쳐나고, 꼭 해야 한다는 걸 빌미로 유혹의 요소들은 끝없이 쏟아진다.



나는 현대판 가룟 유다인가. 아니면 더 한 사람일까. 둘 다 아니라면 그 중간 즈음일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이 순간에는 설사 잠시 잠깐의 마음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든 보이지 말아야 할 눈물이 흐르고 있다. 빨리 닦아내야겠다.



현 시각부터 영원까지 오직 주님만 나의 유일하신 주인으로 섬길 수 있길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린다.



본문은 분당 한울교회 김성국 담임목사님 설교를 본 후 작성했습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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