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봄밤> 이야기
서른의 후반이 되고서야 세상의 즐길거리들과 즐비한 네온사인보다 투박하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하며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남들은 진즉 졸업해서 이제는 시시할 세상의 즐길거리들과 화려한 무엇들이 아직도 궁금하고 부러우며, 탐험하고 싶기도 한 마음은 아직 있지만 그래도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보다는 덜하다.
어렸을 적 엄마 등에 업혀 다닐 때에도 저 멀리에 바깥세상을 궁금하게 여겼을지언정 집 앞에 핀 꽃 한 송이나 솟아나는 여러 풀들엔 관심이 전혀 없었으니, 아름다운 꽃을 봐도 그게 ‘어떤 꽃’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지금도 별 지식은 없다. 그런데 이런 ‘꽃알못’인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있다. 바로 벚꽃이다. 벚꽃은 색도 곱지만, 떨어질 때면 꼭 눈이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해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벚꽃은 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정확한 시계 아닌가. 그래서 벚꽃이 참 좋다.
벚꽃을 오프닝에 담은 드라마가 있다. 바로 MBC 수목드라마 <봄밤>이다. 해당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 보게 된 티저 영상에는 벚꽃 길을 거니는 한 남자 정해인의 고독한 모습이 보였고, 나지막이 그가 속삭이는 음성이 담겼다. 그런데 그 짧은 영상 속에서 난, 김은 작가와 안판석 연출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분위기를 느꼈다.
내 직감을 믿고 <봄밤> 1회를 시청했다. 그랬더니 놀라울 만한 일이 벌어졌다.
<봄밤>은 김은 작가와 안판석 연출의 작품이다. 그 두 사람의 합은 놀랍도록 잘 맞아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좋은 작품과 함께, 정해인이라는 사람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지만, <봄밤>이란 드라마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흡사해서 꼭 시즌 2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마치 그 드라마를 시청해주었던 이들에게 보답하는 의미로의 트리뷰트 작품인 것만 같다고 해야 하나.
그도 그럴 것이 여자 주인공인 이정인 役에 한지민 씨 외 몇 분만 빼놓고는 중복된 출연자가 많다. 또한 드라마의 전반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사운드트랙 역시 레이챌 야마가타의 보이스가 주를 이룬다. 또한 맥주를 즐겨 마시는 신이라든가 택시가 자주 등장하는 등의 장면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나는 이 드라마를 기다린다. 중복되는 배우들과 비슷한 구도 때문에 식상할 수도 있지만 수요일과 목요일만큼은 그 좋아하는 <뉴스룸> 특히나 <앵커브리핑>이나 <비하인드 뉴스>, 나아가 페이스북과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방송되는 <소셜 라이브>마저 거를 만큼 애청자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은 작가님과 안판석 연출님의 의도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냐. 그건 사랑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 정말 그렇다. 흔히들 “사랑은, 사람을 눈멀게 한다.”라고 말하지 않나. 셰익스피어의 그 표현처럼 말이다.
많은 드라마들이 사랑을 테마로 해서 극을 꾸미곤 한다. 하지만 각자 각자의 이유들과 애달픔으로 인해 눈물바람으로 할애하지 않는가. 물론 사랑에 있어 눈물은 필수요소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만큼은 사랑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 그 본질… 즉, 한 사람을 향해 미칠 수밖에 없는 무모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뻘겋게 눈을 크게 뜨고 서로에게 미쳐 있는데 눈물로 시간을 보낼 여력은 없다.
배우 한지민 씨가 연기하는 이정인은 입술로는 늘 결혼과 사랑을 읊조리는 남자 친구 기석과 돈에 쩔쩔매는 아버지라는 큰 산이 있지만 설사 그 요소들이 방해가 될지언정 막지 못한다. 그렇다면 배우 정해인 씨가 연기하는 유지호는 어떤가. 은우라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지만 대신 ‘미혼부’라는 낙인이 있다. 언뜻 보면, 두 사람의 걸림돌을 비교할 때, 정인이 훨씬 큰 것 같지만 사회적으로는 지호에게 몇 백배는 불리하다. 어쨌든 이런 가운데서도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서 무모해 보이지만 멋지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시청할 가치는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김은 작가님의 장점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괜한 곁가지를 만들지 않는다. 때문에 전작인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센세이셔널해 보였으리라 자신한다. 하지만 혹자는 너무 주인공들 중심의 이벤트만 연속되기 때문에 지나치게 단조롭다는 평도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주인공 중심의 전개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틀린 의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단점이라고 한다면, 왜 굳이 여자 주인공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 데 있어 남자 친구가 걸림돌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또한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남자는 무슨 죄이관대 이미 내 사람이 된 여인을 위해 기다려야 하며, 초라해져야만 하는가.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도리어 위로를 건네는 이른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가. 사실 이건, 남녀 모두에게 마이너스다.
세상사라는 것이 어디 맘대로 되는 건가. 그리고 아까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직진하는 게 좋아 보였고 그게 사랑이라며 이제 와서 뭔 소리냐고 하실 수 있는데, 맞긴 해도 내가 그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런 사랑을 두 번 이상 겪어야 한다면 (밥누나와 봄밤), 분명 제 명에 못 살 것이 분명하다.
세 번째 단점은 <봄밤>의 시청자 게시판에도 게재된 내용인데 레이챌 야마가타의 OST가 극 몰입에 방해를 준다. <봄밤>의 메인 주제곡은 Part.1인 “No Direction”이란 곡인데 물론, 곡 자체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기 때문에 중독성 甲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해당 드라마가 추구하는 서정적이고 세밀한 감정선을 표하는 데 있어서는 비트 있는 사운드가 언밸런스 한 감이 없지 않다. 게다가 빈번하게 반복되는 터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레이챌 야마가타의 곡 중에서 좀 하늘거리는 발라드나 몽환적인 곡도 선보여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진짜 아쉬운 점 하나,
정인과 지호 사이는 그야말로 누구도 틈탈 수 없을 정도의 신뢰와 사랑이 존재한다. 게다가 극의 설정상 둘의 나이는 동갑이다. 그러면 말을 놓든, 예의를 갖춰 존대로 일관하든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존대와 반말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것이 꼭 둘 사이에 무언가를 꼭 더 채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둘이 있을 때는 말을 놓길…
드라마 제목인 <봄밤>처럼 사랑이 반드시 봄에 와야만 할 이유는 없다. 강인한 여름에도, 스산한 가을에도, 처연한 겨울에도 사랑은 올 수 있다. 하지만 보통 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데는 세상 만물도 추위에 움츠렸다가 봄 햇살에 에너지를 얻듯 사람의 마음도 사랑이라는 따뜻한 에너지로 삶을 지펴보라는 숨은 뜻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러니 예상하건대 정인과 지호. 그들의 봄밤은 따뜻할 것이며, 그 따뜻함에 매일을 감사하게 되겠지. 다만 그들 스스로가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지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편안하게,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화도 내가며 그렇게 지켜보려 한다.
드라마 <봄밤>은 MBC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에서도 시청 가능하다.
본문 이미지는 MBC 드라마 <봄밤> 이미지이며 출처는 MBC <봄밤> 공식 홈페이지 內 배너 이미지이고 본 프로그램과 이미지의 저작권은 MBC에 있음을 알립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