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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pr 12. 2020

부활의 의미

PTL Time 39



교회를 오래 다니고 그에 따라 설교말씀을 오래 들어도 주님의 부활… 그 의미가 깊이 다가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이미 오래전 지나버린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또 직접 겪지 못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절기인 사순절과 부활절은 내년에도 다시 올 것이기에 간절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절을 귀하게 여겨 기념해야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아무 죄 없으신 분께서, 낮고 낮은 곳으로 오셔서 기꺼이 십자가 지신 것은 만연했던 인류의 죄 때문이다. 그분이 피 흘리심으로 나음을 입었고 또 깨끗함을 얻었다.



그런데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최초의 부활… 유일무이한 부활이 사흘 만에 일어난다. 십자가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사 모든 것 다 내어 주시고 죽으신 주님께서, 경계가 삼엄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무덤에서 사라지셨다. 상상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부활하심이 아니고서는 증명할 방법이 없는 사건이다. 그래서 부활은 값지고 귀하다. 믿음이 굳건해야 할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활이 없다면 믿음은 헛것이고 버려야 할 찌꺼기일 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드려지는 온라인 예배. 어디 예배뿐일까. 코로나19는 모두의 일상 가운데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꽤 오랜 시간 지속되는 온라인 전반의 삶과 절제의 삶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예배의 경우에 더 그런 것이 1분 1초도 놓치기 싫다. 코로나19 이전에 청정했던(?) 지난날에는 예배의 소중함을 몰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몰랐다기보다 소중하긴 하되 그다지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언제나 주일이 되면 다시 드릴 수 있다고. 오늘 드리지 않아도 내주에 드리면 된다는 이런 안일한 생각이 나를 감쌌다. 사실 이것은 주님께 예배드리는 자의 애티튜드가 아니라 행위로써의 예배. 즉, 종교의식으로의 모습이다. 



물론 지금이라고 회심(回心)을 했다거나 개과천선(改過遷善) 했단 그런 말은 아니다. 나는 나! 나의 속 사람은 여전히 강건하다. 



또 마음은 어떤가. 마음의 길은 꼭 미로와도 같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어지러운 내 마음속을 어찌 가늠할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다만, 보이지도 않을 만큼 조금씩 변하는 애티튜드를 스스로 마주하면서, 주님께서 나를 보시고 쓰담 쓰담해 주신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런데 고백하건대 사실 온라인 예배라는 것, 쉽지 않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이버 대학을 포함한 인터넷 강의는 어떤가. 절차는 절차대로 다 밟고 복잡하게 들어가서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타이핑하고 들어가면 출석도 클릭 한 번에 끝이고 강의도 동영상 속 교수님 혼자 이야기한다. 동기와 이유가 분명하고 절실한 만학도라면 모를까 어지간한 각오 없인 힘든 것이 인강의 현실이다. 혹여 졸기라도 하면 또다시 들어야 한다. ㅠ_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강은 성적이라는 가시적 성과라도 있지 예배는 절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주님을 향해 드리는 것인데 오죽하겠는가. 기술 점수나 집중도 점수 같이 채점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이 또한 한 명도 없다. 예배는 오롯이 주님과 나와의 마주함이다. 때문에 더더욱 온라인 예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영의 관점으로 보면 지루함이나 따분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오로지 내가 의지해야 할 대상이요, 무한한 능을 지니신 분을 만나는 시간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생각과 행동에 열을 올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 주님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4월 말이 되면 무증상 자가격리 3달째이다. 지난 글인 근황 이야기에서 언급했듯 당시의 망중한…. 그 달콤함이 그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코로나19의 종식 선언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 출석을 비롯한 외부활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그전까지는 지금처럼 더 많이 더 자주 주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마음이 주님 안에서 변치 않기를 바라며, 또한 현재의 이 마음마저도,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으스대기 위해 갖는 마음이 아니길 바라며 겸손한 맘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린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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