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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어린이집

최조운 단편소설

by 조운생각

장맛비가 창을 두드렸다. 흐린 하늘 아래 초록어린이집의 앞마당은 이미 흙탕물로 가득 찼다. 풀잎반 아이들은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빗소리보다 조금 더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 가며 미술 활동 중이다. 승우 역시 교실 한쪽에서 조용히 앉아 크레파스로 오늘의 날씨를 그리고 있었다. 스케치북을 세로로 길게 놓고 반을 접어 위쪽엔 커다란 무지개가 떠 있고, 아래쪽엔 먹구름 사이로 비가 내리는 장면이었다. ‘원래 무지개는 항상 떠 있는데 평소엔 잘 안 보이다가 비가 사람들 눈을 잘 닦아준 뒤 먹구름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그제서야 알아보는 거야.’

그때, 원장님이 교실 문을 열며 풀잎반 담임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잠깐만”

“네, 원장님”

원장님은 문턱에 선 채로 귓속 말하듯 조용히 속삭였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아이들은 그림 그리는 자세를 유지한 채로 귀를 쫑긋 세워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교실에 빈자리 하나 있잖아요? 7세는 학기 중간에 새로 온 애 받는 게 쉬운 게 아닌 거 아는데, 애 엄마가 러시아에서 한국 남자를 만나서 왔는데, 아휴 글쎄 가정폭력이 너무 심해서 지금 엄마 혼자 애를 키우는데, 아 글쎄 일을 해야 한다는데, 아참 이름이 뭐래더라. 아, 소냐라는데 애가 다리를 좀 저네”

길고 구불거리는 금발머리 소냐는 조그마한 체구에 부끄러움이 많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겁먹은 표정은 흐리멍텅한 게 오늘 날씨에 걸맞는데, 그와 정반대로 얼굴색은 구름처럼 하얗고, 눈은 그 구름을 떠받치고 있는 하늘처럼 푸르렀다. 언제든 머리를 묶을 수 있게 손목에 차고 있는 머리끈은 알록달록 무지개색이었다. 소냐를 쳐다보던 승우는 무심코 자신의 그림을 힐끗 쳐다봤다. 담임 선생님이 소냐에게 앉을 곳을 지정해 주자 그녀는 절뚝거리며 가서 자기 자리에 앉았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떠들어댔다.

"와! 외국인이야!"

"눈이 파래!"

"저 걷는 것 좀 봐! 원숭이 같아!”

장난에 늘 굶주린 남자아이들이 주도하여 입을 열자 평소 조용하던 아이들도 소냐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킥킥댔다. 승우도 말없이 소냐를 바라봤다. 처음 보는 외국인의 푸른 눈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엄마 잃은 강아지마냥 몸을 미세하게 부르르 떨며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살짝 안쓰러워 보였다. 소냐는 몸을 작게 움츠렸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친구한테 그러는 거 아냐”

소냐에게 줄 어린이집 가방과 안내책자를 가지고 반으로 들어온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미술 활동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소냐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낄낄거렸다.




소심하여 말수가 적은 줄로만 알았으나 이틀이 지나자 아이들은 소냐가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냐는 아이들의 말장난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놀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소냐가 등원하여 교실로 들어오면 절룩거리는 왼쪽 다리를 흉내 내며 놀렸고, 소냐가 자리에 앉아 집에서 만들어 온 빵을 꺼내 한 입 베어 물자 그 빵을 가지고 놀렸다.

"이게 뭐야? 너넨 이런 거 먹어? 우웩!"

어느 반마다 짓궂은 아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고 풀잎반에서는 그 역할을 주호가 담당하고 있다. 그가 소냐의 빵을 슬쩍 집어 들며 역겹다는 표정을 짓자, 다른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소냐는 빵을 돌려달라는 제스처로 손을 뻗으며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넘어져버렸고 이를 피하려던 주호는 빵을 떨어뜨렸다. 빵 속 내용물이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닭고기 껍데기와 야채를 카레가루 같은 것에 버무리고 그 나라 특유의 향신료를 덧입힌 다음, 몇 번을 재탕했을지 추측도 안 되는 그을린 기름에 튀긴 빵. 무슨 냄새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코를 틀어막고 놀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울음을 머금었으나 그것을 터뜨리진 않는 기묘한 표정으로 소냐는 빵을 집어 책상 위에 놓은 뒤 바닥 여기저기 튀긴 내용물을 주섬주섬 모아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쟤 무슨 좀비 같지 않냐? 하얀 게 절뚝거리면서 양손만 앞으로 내밀면 완전 좀비야. 그치, 승우야! 낄낄낄”

주호가 신나서 소냐 놀리기를 그치지 않는데, 승우는 아까부터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소동에도 그쪽으론 눈길을 주지 않고 다만 학부모들을 응대하느라 어린이집 현관문에서 늑장 부리는 담임 선생님이 왜 빨리 안 오시는 건지 맘 졸이며 얼른 교실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체육활동 시간이다.

“풀잎반을 부르시면!”

박자에 맞추어 아이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네! 선생님!”

“오늘 체육선생님이 일이 있어서 못 오신대요.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이랑 풍선으로 재미난 놀이를 할 거예요. 선생님이 2명씩 짝을 지어줄 테니까 이 풍선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두 명이 번갈아가면서 치는 거예요. 알겠죠?”

“네에!!”

체육 특기 선생님이 오시는 길에 비가 많이 와서 빗길에 차가 미끄러져 접촉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담임 선생님이 자료실에서 풍선을 몇 개 가져와서 머리가 어지럽도록 빠른 속도로 불어댔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풍선들을 보더니 아이들은 벌써부터 흥분해서 방방 뛰고 웃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두 명씩 짝지어 풍선놀이를 할 공간을 지정해 주었다. 그리고 승우에게 짝을 지어줄 차례가 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승우야, 너가 소냐랑 짝할래? 소냐가 다리가 불편하니까 풍선 살살 튕기면서 잘 놀아줄 사람이 필요한데, 선생님 생각엔 승우가 우리 반에서 제일 신사다워서 소냐한테 친절하게 잘 대해줄 것 같은데 말이야”

“.....”

“잘해줄 수 있지? 선생님은 승우 믿는다!”

“네…”

풍선 놀이가 시작되었다. 풍선을 튀기며 아이들의 시선이 천장을 향하고 있다. 천장에서 내려다보면 풍선으로 두더지 게임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저기서 알록달록 풍선들이 퐁퐁 튀어 오르다 가만히 내려앉고, 배경음악은 따로 없지만 아이들의 깔깔 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승우는 소냐와 마주 보고 서 있다. 풍선을 든 승우가 소냐를 향해 풍선을 튕겼다. 소냐는 멀뚱히 풍선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다. 풍선이 땅에 떨어지게 하면 안 된다는 투철한 사명감에 승우는 제가 친 풍선을 좇아 재빠르게 서너 걸음 뛰어가 풍선을 잡았다.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쳐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건가? 이 간단한 룰을 몰라? 승우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풍선을 치라는 시늉을 몸짓으로 보인 뒤 소냐에게 풍선을 날렸다. 하지만 여전히 소냐는 움직이질 않는다.

‘아이, 참….’

뭐가 됐든 간에 풍선이 땅에 떨어지면 안 되므로 승우는 다시 뛰어가 풍선을 잡았다. 그리고는 소냐에게 말했다.

“너가 해봐”

소냐에게 풍선을 쥐어주고 제자리로 돌아온 승우 눈에는 다른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재미나게 놀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저도 풍선을 튀기며 하늘 높이 올리고, 천천히 내려오는 풍선을 긴장스레 기다리다 다시 한번 빵 하고 쳐올리고 싶은데. 승우의 표정이 실망으로 약간 일그러졌다. 우리도 좀 재미나게 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소냐를 쳐다봤는데, 그녀가 웃고 있다. 요 며칠 동안 봐온 그녀의 얼굴은 완전 찌그러진 먹구름 같았는데, 지금 소냐가 살짝, 아주 사알짝 미소를 머금은 것이다. 응? 왜 웃는 거지? 승우는 알 길이 없다. 평생 풍선을 손에 쥐어본 적 없는 소녀가 지금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해하며 놀고 있는 자리 한복판에 함께 서서 하나의 기회를 거머쥐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일런지.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 소냐에겐 새로웠고, 처음 만져보는 풍선 하나에 큰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승우가 외쳤다.

“소냐! 시작! 스타트!”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이해 못 했으나 풍선을 튀겨보라는 뜻일 거라 짐작한 소냐는 손을 엉거주춤 움직이기 시작했다. 풍선을 어설프게 양손으로 움켜쥐고는 위로 날렸으나 그닥 높게 오르진 않았다. 승우는 다시 소냐 쪽으로 달려와 얼른 풍선을 튀겼다. 땅에 닿으면 안 되니까. 간신히 소냐 머리 위까지 붕 뜬 풍선을 보며 소냐가 신이 났는지 입을 살짝 벌리며 웃는다. 그리고 가만히 내려오는 풍선을, 이번에는 제대로 튀겨보자는 마음으로 손을 뻗고 힘을 주면서 무릎을 살짝 굽혔다. 아차차 그 순간 소냐가 휘청거린다. 한평생 귀한 대접을 받고 살아온 그녀의 왼쪽 다리가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서 관심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고는 소냐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여 간신히 받치고 있던 소냐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꺅!”

비명을 지른다고 질렀건만 그 소리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풀잎반 친구들은 모두 풍선 놀이에 집중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소소하게 다투고 있는 남자 아이들을 말리고 혼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냐의 미소 짓던 얼굴이 놀람과 당황으로 급격히 변하며 강당 바닥으로 넘어지는 장면을 지금 승우만이 목격하고 있다. 넘어지고 있는 소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표정은 마치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렇게 끝나 버리면…’하는 것 같았다. 소냐가 넘어지는 장면이 천천히 눈앞에 펼쳐지는데 왠지 모르게 승우가 서글퍼졌다. 좀 전에 봤던 그 하얀 미소. 좋았는데. 곧 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혀 먹구름 낀 표정으로 돌아와야 하다니.

승우는 재빠르게 소냐에게 두 손을 벌리고 달려갔지만 그녀는 이미 넘어진 뒤였다. 친구들은 찬찬히 내려오는 그들의 풍선을 잡고 그제서야 소냐와 승우 쪽을 향해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 승우와 소냐의 풍선은 파일럿 잃은 비행기가 불시착하듯 땅에 쿵하며 부딪혔다. 주인의 손길을 잃어버린 풍선은 승우의 등 뒤에서 말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체육활동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선 풀잎반 아이들은 자신의 컵을 들고 정수기 앞에 줄을 섰다. 풍선놀이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상태로 땀을 닦아가며 서로 잡담을 주고받는 중이다. 선생님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와 뒤늦게 교실로 돌아온 소냐는 자기 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다. 선생님은 얼른 에어컨을 켰지만 습하고 더운 풀잎반의 공기가 상쾌해지려면 약간의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다. 아이들은 덥다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정수기 앞에서 물을 받고 있는 다른 아이에게 빨리 비키라며 재촉한다. 승우도 자신의 컵을 들고 조용히 줄 뒤쪽으로 붙어 섰다. ‘뭣하러 줄 앞켠에 서서 서로 밀치고 아웅다웅 다투고 재촉하고 그럴까. 그냥 조금만 참으면 내 순서가 올 텐데.’ 이윽고 자신의 차례가 되어 쪼르르 물을 담는 동안 승우는 고개를 돌려 소냐 쪽을 쳐다봤다. 소녀의 이마에서 시작된 땀이 금빛 머리칼을 따라 흘러내리자 그녀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훔쳤다. 그리곤 손목에 차고 있던 무지개 머리끈을 빼내어 능숙한 솜씨로 머리를 하나로 묶어내었다. 더워도 덥다고 말을 못 하니 그냥 참는 수밖에. 목이 말라도 누구 하나 물 마시라고 권유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본인의 컵도 없다. 어른들로부터 위생 관념을 철저히 배운 어린이들은 자신의 컵은 자신만이 써야 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다시 시선을 물컵으로 돌린 승우는 컵의 주둥이까지 물을 채운 뒤 조심조심 소냐에게로 갔다.

“마셔”

소냐가 고개를 든다. 자신 앞에 물컵을 든 승우가 서 있다. 물컵을 두 손으로 들고 물이 넘칠까 봐 살짝 부들거리는 소년이 있다. 무심한 표정인 듯하지만 그 안에 넘치는 정이 느껴진다. 주책없이 물이 넘쳐흐를까 봐 승우는 얼른 소냐 앞 책상에 컵을 내려놓는다. 컵 주둥이에서 찰랑거리는 물결이 재밌게 요동치고 있다. 그 박자감이 묘하게 ‘얼레리 꼴레리’하는 듯하다.

“스파씨보”

승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 뭐라고??”

소냐는 피식 웃으며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

“스파씨보”

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상황에 소냐가 할 수 있는 말이 최소한 욕은 아니겠지라는 생각과 소냐가 살던 곳에서는 고맙다는 말을 저렇게 욕 비스무리하게 하는가라는 생각에 승우도 풉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럴 땐 고마워라고 하는 거야. 따라 해봐. 고,마,워”

“......”

“스파씨보, 노노, 땡땡땡, 따라 해봐. 고, 마, 워”

“고… 마.. 오”

“응 잘했어. 고마워”

“고.. 마.. 오어”

하나는 앉아서 또 다른 하나는 서서, 그러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그 둘은 환하게 웃었다. 승우의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짧다면 짧고, 나름 길다면 긴 일곱 살 생애 처음으로 겪는 느낌이었다.




토요일 아침. 밤새 내린 비에 땅 위로 올라온 지렁이들이 꿈틀거린다. 하얀 꽃을 내기 시작한 초록의 사철나무 틈바구니에 앉아서 참새들은 지렁이를 보고는 군침을 흘리며 짹짹거린다. 그 소리에 단잠을 깬 승우도 침대에서 기지개를 쭈욱 켜며 일어났다. 좀 더 늑장을 부려도 되겠지 하는데 번뜩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서둘러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엄마 아빠 방으로 향했다.

“엄마, 저 어린이집에 가져다 둔 물컵 있잖아요? 우리 집에 그런 거 하나 더 있어요?”

“응? 그건 왜?”

“아이 아무튼, 더 있어요?”

“모르겠네. 한 번 찾아볼게”

“엄마, 그리고 물티슈도 필요해요. 새걸루다가.”

“그건 거실장에 있어. 근데 그것들은 다 왜?”

“어린이집에 가져갈 거예요”

“그것들 다 있잖아 어린이집에”

“아 그게요 엄마… 비밀이에요~ 히힛”

“쟤가 왜 저래? 뭐지? 엄마 궁금한데~ 일루 와라 욘석아! 얼른 말해라!”

엄마가 승우를 침대로 잡아당겨 간지럽히자 승우는 자지러지게 웃는다. 엄마의 손간지럼에 반응한 것이련만 어린 소년의 웃음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소냐의 얼굴이 떠오른다.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승우는 자신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다. 설명할라치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겠는데 그럼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거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안 하는 게 낫겠다. 실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선생님도, 반 친구들도, 심지어는 엄마한테도 아직은 비밀이다. 나중에 가면 엄마한테만 살짝 말할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 나중에. 나아중에. 그러나 결국엔 모두가 알게 되겠지. 숨길 수가 없을 거야.

무지개는 아직 자신의 때가 아니라는 걸 아는지, 구름 뒤에서 조용히 단장하고 있었다.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며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는 중이었다.




하늘이 깊은숨을 들이마시는 듯 고요하더니, 저 멀리 먹구름 사이로 번개가 한 번 번쩍였다. 잠시 후 거대한 북소리 같은 천둥이 낮은음으로 땅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이 장맛비가 더욱 거세게 퍼부었다. 유리창에는 수없이 많은 물방울이 부딪혔다가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빗물은 서로를 밀어내다가 이내 하나로 합쳐져 길게 자국을 남기며 흘러내렸다.

승우는 문쪽을 바라보고 있다.

“선생님, 오늘은 소냐 안 와요?”

점심시간 막바지에 짬을 내서 알림장을 쓰고 있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승우가 조용히 물었다.

“응. 오늘 안 그래도 소냐 엄마랑 문자 메시지 나눴는데, 비 오고 천둥 치면 그 소리가 무서워서 집 밖을 못 나간대”

“천둥이요?”

“소냐가 애기 때 천둥소리 때문에 놀래서 침대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친 거래. 원래 겁도 좀 많아 보이긴 한데 특히 하늘에서 그런 굉음이 들리면 소냐가 많이 힘들어하나 봐. 승우는 천둥 안 무서워?”

“천둥…”


그랬구나. 그래서 다리를 절뚝인 거였구나. 그래서 천둥을 무서워하는구나. 승우 자신이 천둥을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5살 때부터 같은 반 여자애 중 하나도 예전엔 천둥 치면 무섭다고 울더니 이젠 괜찮아졌는지 신경도 안 쓴다. 하긴 걔는 천둥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되진 않았으니 좀 다르긴 하다마는. 여튼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승우는 물컵과 물티슈가 들어있는 자신의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어린이집 등원하는 길 내내 승우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하늘을 보니 여전히 컴컴하고 비는 살짝 내리는 듯하지만 천둥까지 치지는 않는 분위기다. 오늘은 소냐가 나올까.


“어머니 안녕하세요! 승우야 안녕!”

풀잎반 선생님이 승우와 그 엄마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비가 정말 그칠 생각을 않네요.”

현관에서 승우 엄마가 잠시 풀잎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승우는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놓고는 복도를 지나 풀잎반 창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쪽을 살폈다.


있다! 다행이다.

승우는 어깨에 맨 가방 끈을 꼬옥 움켜쥐며 풀잎반 문에 들어섰다. 먼저 온 아이들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며칠 동안 집에만 있다가 왔을까? 얼굴을 보니 오늘 좀 더 하얗다. 어디 아픈가?’

곁눈질이지만 소냐의 동태를 상세히 살피던 승우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가방을 풀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른 아이들이 들을까 봐 조용하게 가방 지퍼를 열고 조심스레 손을 집어넣어 물컵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기 전에 다시 한번 사주경계를 하며 자신의 행동이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오직 한 명만 알면 된다. 그래. 지금이 딱 적당한 타이밍이다. 이제 물컵을 꺼내고, 소냐에게 갖다 주기만 하면 된다. 아직 주지도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승우는 마냥 즐겁다.


한편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사자마냥,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시시해진 주호가 다른 놀잇감을 찾고 있었다. 주호는 기지개를 쭈욱 켜며 일어서서 주변을 스윽 한 번 둘러봤다. 친구들은 각자 자신의 놀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디에 껴서 놀면 될까 궁리를 하며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노란 머리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노란 머리라니.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돼. 염색을 한 것도 아니고. 진짜 웃기네. 저 머리끈은 또 뭐야.


“야, 노란 머리에 웬 무지개가 걸려 있냐? 크크크 이리 줘봐”


주호는 소냐의 머리끈을 잡아당겨 낚아챘다. 소냐의 손은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머리끈을 따라가 보았지만 그것은 이미 소냐의 머리를 떠나 주호의 손에 들어간 상태였다. 포기하고 책상에 엎드린 소냐. 또다시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렇게 싱겁게 끝낼 수 없던 주호가 다시 소냐에게 다가가 소냐의 머리를 툭 내리치며 시비를 걸었다.

“노랑머리, 파란 눈, 무지개 머리끈, 하얀색 얼굴. 얘는 무슨 크레파스네. 오케이. 넌 이제부터 크레파스 좀비다, 크레파스 좀비!!”

그걸 들은 아이들은 뭐가 웃기다고 까르르 뒤집어진다. 주호는 좀비를 물리쳐야 한다며 교실 청소용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높이 쳐들고는 칼과 방패라 한다. 덤벼라 좀비야! 내가 무찔러주마! 이 크레파스 좀비야! 빗자루로 소냐의 옆구리를 찌르고 쓰레받기로 머리를 툭툭 친다.


툭툭… 우두두두

굵어진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차 커져갔다. 하지만 빗소리는 풀잎반의 소동에 묻혔다.


“이 못된 좀비야, 너를 이 무지개 끈으로 묶어버리겠다!” 하며 머리끈을 높이 들어 보이자 소냐가 자신의 끈을 쳐다본다. 주호가 끈으로 소냐 머리를 톡톡 치자 소냐가 앉아서 머리끈을 향해 손을 뻗다가 안 되겠는지 일어서려 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의자를 뒤로 살짝 밀어내고 일어나 천천히 주호가 들고 있는 머리끈을 향해 두 손을 뻗고 다가갔다. 주호의 주문대로 소냐는 지금 영락없는 좀비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엉클어진 머리, 창백한 피부에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절뚝절뚝. 주호는 머리끈으로 좀비를 유인하며 이리 오라고 소리치고 있고, 그걸 바라보는 아이들은 깔깔대고 있고 있다. 바로 그때였다.


번쩍.


창밖에서 큰 빛이 잠깐 깜빡였다. 순식간이었지만, 그리고 그 빛을 아무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대단했다. 그 빛은 자신이 세상의 모든 빛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는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빛이 남긴 것은 인상만이 아니었다. 곧이어 하늘로부터 커다란 바위가 깨지는 듯한, 아니 큰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 쾅!


아이들은 귀를 막으며 짧은 비명을 질렀고, 모든 장난은 중지되었다. 천둥과 함께 건물의 전기도 사라져 버렸다. 에어컨의 바람 소리, 냉장고의 모터 소리, 공기청정기까지 모두가 소리를 잃어버리자 적막이 빈자리를 채웠다. 전등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이에 비상등이 켜지며 풀잎반을 짙고 어두운 초록색으로 물들여 버렸다. 하던 일을 멈추라고 말한 이는 없었지만 모두가 ‘얼음’이 되어버린 순간이다. 다만, 의도하지 않았으나, 천둥소리에 놀란 소냐만이 그 작은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휘청거려 그 공간의 움직임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승우의 눈에는 소냐의 넘어지는 모습이 슬로 모션으로 들어왔다. 소냐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갈래갈래 올라 은빛으로 흩날렸고, 다시 머리칼이 천천히 소냐의 어깨에 내려와 부딪힐 땐 반짝이는 먼지를 일으키며 금빛으로 되돌아왔다. 하늘 향해 뻗은 가늘고 긴 손은 하얗기 그지없다. 소냐의 옆에는 귀여운 아기천사들이 방긋 웃으며 소냐를 보고 있다. 소냐가 넘어지고 있는 자리 바닥에는 무지개 색 러그가 깔려 있었는데 마치 절름발이 친구가 넘어질 때면 언제라도 다치지 않게 받쳐주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다치면 안 돼 소냐.’

그때 소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악!”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소냐가 넘어졌고 승우는 꿈에서 깨어난 듯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제서야 인식했다. 주호와 다른 남자아이 몇은 여전히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소냐를 둘러싸고 서있었다. 소냐의 긴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몸이 잠시 부르르 떨리더니 곧 들썩이기 시작했다. 우는 건가? 그동안 울 뻔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꾹 잘 참아왔는데 이번엔 소냐가 울고 있다. 머리카락 사이로 자세히 보니 아파서 눈을 찡그리고 있는 것 같은데 입술을 깨문 채로 소리는 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왜, 왜 소리를 내서 울지 않는 거지? 다리가 아플 텐데… 넘어져서 손이랑 무릎도 다쳤잖아… 친구들이 하는 말도 못 알아들어 답답할 텐데… 친구들이 괴롭혀서 속상할 텐데… 왜 소리를 내서 엉엉 울지 않는 거지? 그동안 맨날 참아온 거 내가 다 봤는데… 많이 힘들었을 텐데… 왜 소리도 못내 바보같이…

순간 승우가 소리를 질렀다.

“야아아아!!!”

승우는 코뿔소 마냥 냅다 달려 주호 가슴팍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주호가 뒤로 밀리며 쿵하고 넘어졌다. 하지만 승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씩씩거리며 다시 있는 힘껏 외쳤다.

“나빠!!”

승우는 넘어진 주호에게 달려들어 그의 왼팔뚝을 양손으로 단단히 붙들고는 있는 힘껏 꽉 깨물었다.

“아아악!”

주호가 소리를 지르는데도 승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과 깨문 이를 풀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누구에게 물리기만 해 봤지 벌레 하나도 못 죽이던 승우. 대단한 결심이었을까? 아니다. 지금은 이성이 잠시 그의 영원한 동반자인 마음에게 승우의 몸을 내어준 시간이다. 승우의 마음이 너무 아파하자 ‘시간이 약’인 것을 안 이성이 마음에게 그 자리를 슬쩍 비켜준 것이다. 이제 승우는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온 힘을 다해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세게 물었건만, 지금 누구보다 아파하고 있는 것은 승우였다. 그 마음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승우는 고사하고 소냐 자신도 그 아픔을 이해하기엔 한참이나 어리고 부족하다. 너도 나도 그 아픔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저 행복을 꿈꾼 어린 소녀의 마음이 뭐 그리 대단한 욕심이었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강당을 뛰어다니며 힘껏 풍선을 쳐올려 천장까지 닿게 하고 싶었을 거고, 줄넘기랑 술래잡기도 하고 싶을 건데. 같은 반 여자아이와 다정하게 소꿉놀이를 하고 싶었을 텐데. 아니 다 관두고, 그냥 제대로 걸을 수 있기만 해도 좋았을 것을. 애기 때부터 저랬는걸. 이놈의 세상.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만 가득한 세상. 자신의 언어로 맘껏 동화책을 읽고 싶고, 동화 속 공주님처럼 예쁜 드레스를 입고 꿈속에서 왕자님도 만나고 싶을 텐데. 많은 걸 바란게 아니고 그냥 딱 그 정도였는데. 아무도 몰라줬다. 관심이 없었다. 사탕 하나만 뺏겨도 세상을 잃은 듯한 슬픔으로 집이 떠나가라고 목청 높여 우는 것이 어린아이의 일반일 텐데, 이 소녀에게 지어진 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마음을 뚫고 나와 울음이 되어도 이유를 물어봐주는 이가 없고, 아니 설명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른 세계에서 온 이 소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소녀는 소리 없이 우는 법을 배웠을 뿐이고, 그걸 보는 승우의 마음이 아팠다.

다른 친구들이 승우를 말리려고 몰려들었다. 한 명은 승우의 팔을 잡고, 다른 친구는 승우를 뒤에서 안았다. 또 누구는 승우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어떻게든 주호에게서 떨어뜨리려고 다들 안간힘을 썼다. 승우는 절대 놓아주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이는 여전히 악물고 있었으며, 두 눈에는 악에 바친 눈물이 고였다. 넘어진 소냐는 여전히 혼자였다. 아무도 소냐 옆에서 그녀를 위로해주지 않았다. 여전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고 있는 소냐의 모습이 승우의 눈물에 거울처럼 비쳤다. 승우는 주호의 팔을 문 채로 소리를 질렀다.

“으으으읍! 으으으으읍!”

승우는 소냐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외쳤다.

‘이렇게 해. 아프면 소리 질러. 슬프거나 울고 싶으면 소리를 지르라고. 만약에 그게 힘들다면…

내가 대신 소리 질러 줄게!’

문이 열리고 담임 선생님이 달려왔다.

먹구름이 조용히 흘러가면서 뿌리고 간 빗줄기가 점차 가늘어져 갔다.




괜히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이라도 잘못 나는 날엔 원아들이 무더기로 퇴소를 하게 되거나 어린이집이 담당 공무원들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옳았다. 아들이 물려서 멍이 들었다는 연락을 받은 주호엄마가 어린이집으로 찾아와 난동을 부리자 원장은 손가락으로 소냐를 가리키며 모든 것을 말 못 하는 그녀에게 뒤집어씌워 버렸다. 승우가 주호를 물긴 하였으나 그 둘이 평소에 워낙 문제없이 잘 지내던 사이였고, 그들의 엄마들끼리도 자주 만나 카페도 가고 서로 공감을 많이 하던 사이였기에 주호엄마를 설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쪽에다 분풀이를 하려는데 하필 여러 상황들이 잘 들어맞았다. CCTV도 정전으로 멈춰버렸을 때 일어난 일이었고, 이미 풀잎반 선생님과도 입을 맞춰둔 상태였다. 좀 미안한 일이지만 평소 조용하고 착했던 승우보다는 ‘교실 분위기를 흐리면서 말도 못 알아듣는 외국애’가 어린이집을 나가는 것이 모두를 위해 더 낫다고 판단했기에 원장은 소냐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소냐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언어적으로도 따라오지 못하여 다른 아이들의 교육에 방해가 되고 있음을 피력했다. 소냐 엄마는 별다른 대꾸도 못한 채 어설픈 한국말로 죄송하다며 내일 아침에 소냐의 물건을 챙기러 어린이집에 마지막으로 들르겠다고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엄마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등원한 승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엄마는 원장님과 선생님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말을 이었다.

“주호엄마랑은 어제 통화했어요. 어찌나 죄송하던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승우도 어제 많이 혼났어요.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예요. 그치 승우야?”

“.... 네”

아침부터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막으려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거의 본능적으로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그래 승우야. 이제 괜찮아. 앞으론 친구들이랑 잘 지내자? 그동안 잘해왔으니까. 선생님은 승우 믿어!”

“네”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승우가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깜빡했다는 듯이 승우에게 무언가를 건네준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좀 전에 소냐랑 걔엄마가 왔다가 갔는데, 소냐가 나한테 자기 머리끈을 주더니 글쎄 뭐라는지 아니? ‘승우, 고마워’라는 거야. 어린이집에 며칠 있었다고 한국말을 그새 배웠더라고. 승우한테 소냐가 주는 선물인가 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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