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에 앉아서
큰아이는 고 1 올라가면서 집 밖 생활이 시작되었다.
좀 이른 나이에 필요한 자기 짐을 챙겨야 했고 나도 별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아이가 가져갈 짐을 챙겨주느라 우왕좌왕했다. 처음엔 먹을 것이 걱정돼서 먹을 것도 챙기고 필요한 비상약도 챙겨주고 사계절 덮을 이불과 옷도 더울까 봐 추울까 봐 챙기니 이사 가는 것처럼 많아졌다.
집에서 생활하면 안 샀을 물건들을 새로 구입했고 애착 가는 물건들은 필요해 보이지 않지만 챙겨 가져가기도 했다.
그렇게 떠난 방은 난장판이었다.
넣을까 말까 고민한 물건들과 가져가겠다고 찾느라 뺴 놓은 물건들...
그러다 보니 중학교 때 사용하던 많은 물건들이 덩그러니 떠난 자리에 남아있었다.
이어서 대학 때까지. 대학원 때 잠깐 집에서 2년을 머물렀다.
집 떠나고 7년 만에 집에서 보낸 2년도 그중 반은 거의 밖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경제적 독립을 하면서 일터와 집 중간에 적당히 혼자 지내기 좋은 방을 구했다.
이제는 완전한 독립이 되었다.
거의 다시 집에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집에 함께 있던 잠깐의 2년이 내게는 소중했다.
큰아이도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그 2년 사이에 많은 감정적 변화가 내게 있었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아이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나의 일로 내가 무척 힘든 시기였다.
그때 큰 아이가 함께 있는 게 많은 도움이 되게 자라 있었다.
큰 아이도 말은 안 했지만 속 깊은 아이라 7년 만에 함께 생활하며 본 달라진 엄마가 딱했나 보다.
'엄마 잘 지내냐'는 걸 물어보며 내게 이런 거 저런 거 하라고 알려준다.
아이가 집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
오기 전에 서둘러 방을 대충 정리했다.
정리와는 담쌓고 살던 우리 큰아이가 7년 동안 집 밖에 생활을 하고 오더니 조금씩 관리를 하며 나를 위한다고 열심히 더 어지럽히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떠난 자리에 남겨진 중학교 때 물건들은 대충 담아 상자에 넣어 한쪽에 몰아놓았고 그렇게 기숙사에서 나올 때마다 쌓인 상자가 이제 3개다.
그렇게 상자를 끼고 2년이 흘렀고 드디어 집 떠날 준비를 하며 정리한다며 꺼내놓고는 잔뜩 둘이서 추억팔이만 했다.
독립을 하면서는 그리 큰 방이 아니다 보니 키우던 물고기들과 크게 자란 식물들은 두고 갔다.
물도 주고 물고기 밥도 주러 매일 아이방에 올라온다.
얼마 전 겨울 옷 가져간다고 들려서 펼쳐진 옷들을 개서 다시 장에 넣는데 예전에 떠 준 목도리가 보인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정리하긴 뭐 하고 이걸 할 나이는 아니고... 그걸 장 한쪽에 걸어 놓았다.
작년에 분가시켜 놓은 새끼 낳은 엄마 물고기가 떠났다.
아직까지 식물들이 어항을 차지하고 있어 치우지 않았는데 식물사이로 왔다 갔다 하며 생기를 보여주던 물고기가 없는 빈 어항을 보니 참 많은 인연들이 만났다 사라진다는 생각이 든다.
왔다가 가는 우리들
그중엔 누군가는 서있고 누군가 그 옆을 지나간다.
서있던 사람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지나서 저 멀리 갈 것이다.
순간이 소중하고 지나치는 시간과 인연에 아쉬움을 느낀다.
큰아이는 가끔 집에 들른다.
주말은 쉬고 싶을 테고 데리고 간 고양이가 맘에 걸려 집에 오기 힘들다.
난 아이들이 집에 오는 게 좋기도 하지만 가고 나면 음식 몇 개 해서 차려 먹느라 안 쓰던 에너지를 써서 피곤하다. 하지만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부모의 부담스러운 마음이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표현은 안 하려 한다.
자신들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집이었으면 좋겠고 부담 없이 떠날 때 떠났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떠난 방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물건들도 못 버리고 이렇게 미련을 떨며 책상 먼지나 닦고 있다.
작은 아이도 기숙사에서 나와 작은 방을 얻어 살고 싶어 한다.
괜히 그 말이 서운하게 들린다.
그래도 가끔은 집에 오는 게 기숙사에서 살기 때문인 것 같은데 완전히 독립하려 하는 말로 들려서...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살던 터를 떠나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뿌리를 내리려 한다.
집이 양평이다 보니 독립들을 일찍 한다.
좋은 듯 아쉬운 듯.
남편은 좋아하는 거 같고 애들하고 가끔 만나니 사이는 좋다.
그리움은 나의 몫이다.
엄마가 주책 떨지 말고 미련두지 말고 잘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내게 주문을 건다.
너도 떠날 때 미련 두지 말고 주변에서 네게 미련두지 않게 우리 쿨하게 쿨하게 살다 잘 떠나자고.
떠난 자리 미련두지 말고 떠날 때 미련두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