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불안하던 스물아홉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피곤할 리가 없다.
뭐 하루에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밥 먹고 동물들 좀 챙기고 나면 몸이 노곤해지며 누워있고 싶다.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 정년이 필요한 제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라에서 이 정도 일하면 좀 쉬어~라는 제도가 정년퇴임 아닌가? 하지만, 그건 공무원들에게나 적용되는 제도지 일반기업에서는 정년이 있긴 하지만, 그전에 못 버티고 명예퇴직이라는 아주 듣기 좋은 이름을 만들어 퇴직을 일찍 종용한다. 미리 돈을 좀 더 주고서라도 높은 월급의 노령화된 인력을 내보내겠다는 심사 아니겠는가.
사실 내가 출산휴가로 IMF지나 강퇴를 당할 때 자존심도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공식브레이크에 내가 걸린 게 속 시원했다.
그만 두기엔 아까운 직장, 아침마다 아이는 울고, 우는 아이를 친정집에 맡기며 돌아서는 아침 일과가 너무 힘들었었다. 회사 와서 점심 후 현대백화점 지하를 지나쳐서 오는 지름길이 있는데 거기서 유모차밀고 백화점에 장 보러 온 아기 엄마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대상이었다.
아이를 좋아하긴 했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온 신경이 내 아이에게로 쏠리며 엄청난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던 시기였다.
얼마 전만 해도 29 되던 해에 퇴근 버스를 타고는 내가 뭘 이뤘지?
라는 자괴감과 불안감이 들던 때가 있었는데, 결혼하면서 온통 고민은 시댁과 친정에 대한 의무와 애정의 경계에서 주말을 피곤해하다가 출산 후에는 그마저도 나의 사고의 중심에는 나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곧 29를 넘어가려고 한다.
어제 전화에 “ 엄마 나 곧 30이야 ” “좀 있으면 엄마가 날 낳은 나이야.”
갑자기 아이의 코 막힌 목소리가 들렸다. “ 너 울었어? ”
중간에 많은 대화가 오고 가며 알게 된 건, 그동안의 해야 할 일도 많았는데 어제 따라 딸은 뜻하지 않게 퇴근시간 후에도 마무리해야 하는 일로 스트레스가 꼭지까지 올라온 상황이었다.
“ 허무해? 벌써 30이라는 게? ”
“ 나이 들면 39는 바쁘게 가고 49는 좀 몸이 삐그덕 거려서 그거 신경 쓰다 보면 지나고 59는 늙음에 적응이 되니까 생리도 안 해서 몸만 건강하게 만들면 세상 편해 ”
“ 나 나이 드는 거 싫어. 무섭기도 하고. ”
“ 엄마도 나이 들면 뭔 낙이 있나 했는데 일도 더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이 변하면서 나름 또 살만해. 더 편한 것도 있고. 어쨌든 적응되더라고. 정신적으로 여유롭고. 경제적으로는 아니지만. ㅎㅎ”
“ 엄마 내가 AI로 사주를 봤는데...”
아이가 많이 답답했나 보다.
아이들이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대견하지만 가끔 힘든 상황을 만나 침울하게 빠져들 때에 옆에서 다독거리지 못하게 되면, 어렸을 때 불리불안을 심하게 겪게 만들었던 그 당시 심정으로 돌아간다.
나이가 들어도 영원히 살펴주고 싶은 마음이다.
마음이 좀 짠 했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살아보니 많다. 아무리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그 당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안타까움에
“ 아깝지. 속상해하는 그 시간이. 지나 보면 무슨 일에든 끝이 있어. 그 끝이 어딘지 알려고 애쓰지 말고 지금 마음 돌려서 이만하면 좋다 이만하면 좋다 하고 좋은 것만 생각하는 연습 해야지. 지나 놓고 보니 걱정하고 싫어하며 보낸 시간이 제일 아까워. 머리 복잡할 땐 몸을 움직여. ”
“ 엄마 그 소리는 정말 많이 들었지. 알았어. 알았어. ”
잔소리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내 말에 나도 속으로 ' 아이고 고만해야 하는데...’ 하면서 무슨 말이 도움이 될까 찾아본다. 이론상으로 그냥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하지만 뭐라도 한마디 보태고 싶어 말을 찾고 있는데
“ 맞아. 나도 내가 이 정도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는데 그게 그렇게 맘이 안 돌아가네. ”
“ 그래... 사람이 내 생각 내 맘 돌리는 게 참 힘들지. 끝없이 연습해야지. 그 정도 말하는 것도 훌륭하다 야! ”
아이의 말을 들으니, 불안했던 나의 스물아홉 퇴근 버스 창가에서 바라보던 해지던 밖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 아이도 그만큼의 강도로 무상함과 조급함이 조합된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고 있는 걸까? 참... 이런 건 안 닮아도 되는데... 돌고 도는 거 같다. 물려주고 싶지 않아도 물려지는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