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의 문장

(제13화) 산책길에서 만난 오래된 석상

by 보리수

아침마다 상대적으로 젊은 노견을 산책시켜야 한다.

집 마당에다가 절대로 볼일을 보지 않는 깔끔함인지 나의 건강을 위한 배려인지 알 수 없는 13살의 키다리 노견이 아침에 30분 정도 저녁에 30분 정도 우리를 산책시킨다. 언제부터인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몇 군데를 정해서 하루는 이곳 다음은 저곳, 게다가 아침과 저녁에 겹치지 않게 산책을 시켜야 노견의 신체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노견을, 노견은 우리를 그렇게 서로 길들이는 바람에 겨울에는 함부로 점퍼도 입지 못한다. 점퍼 입고 산책하지 않는 실망감을 안겨주는 그 미안함을 왜 갖아야 하는지 모르는데 우리는 그런 미안함이 발생하지 않게 조심하며 살고 있다.

오늘도 아침을 챙겨 먹으며 ‘언제 나갈 건가?’ 앉지도 않고 희망에 찬 눈길로 따라다니는 노견의 바람을 애써 외면하며 집안일을 서둘러 마치고 드디어 산책을 나섰다.

여러 냄새가 나는 특히 좋아하는 산책루트가 당첨되었다.

아침마다 남편과 나는 ‘오늘은 어디로 갈까?’를 정하는 몇 초의 산책길 선택의 회의를 연다. 힘들 때는 알아서 가지 뭘 꼭 물어보나 싶지만 ‘뭘 먹을까?’ 같은 산책길을 선택하는 의식은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과 같이 노견에게 작용한다.

질척거리지 않으며 너무 추운 바람이 몰아치지 않는 곳... 어제는 가지 않은 곳.

그곳으로 가기로 정하며 우리는 ‘얘가 오늘은 좋아하겠다’라는 기대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본격적인 산책이 이루어지는 길에 다다르기까지 노견은 시큰둥하다. 하지만 좀 더 가면 기대에 찬 냄새가 노견의 오감을 자극하나 보다.

시큰둥한 걸음걸이가 적극적으로 냄새 맡는 자세로 바뀌고 소심한 녀석이 뒷발질로 자신감을 뿜뿜 내 비친다. 인기척 없는 산길과 조용함을 즐기며 맘 놓고 있던 새들이 푸드덕 날면 사냥스킬이라곤 전혀 없는 노견도 신나서 코와 눈에 윤기가 흐른다.

자연의 자극은 나이 들어가는 우리나 개에게도 훌륭한 자극제가 되는 것 같다.

겨울이 되면 나오는 게 꾀가나서 그렇지 이렇게 겹겹이 무장하고 나오면 눈으로 코로 귀로 느껴지는 자연이 경이롭고 대단하다는 걸 매번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저 놈 산책시키느라 나오게 되니까 이런 걸 보지. 저 놈 없으면 집에서 꼼짝 안 할 거야.’ 그러면서 고마움을 살짝 느낀다. 하지만 다음에 우리는 또 꾀가 날 것도 알 고 있다.

그렇게 신나 하는 노견을 보며 오늘은 모처럼 해도 나니 좀 더 즐기라는 의미로 좀 더 가 보기로 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도 있고 낙엽 위는 말랐지만 밟을 때마다 얼음이 바스스 부서지는 곳도 있다. 나무 아래는 눈이 없는데 조금이라도 해를 등진 북쪽방향은 얼음으로 땅이 살짝 부풀어 올라있다.


무덤과석상.jpg

좀 더 길게 길을 따라가 보니 오래된 산소모습과 석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단으로 만들어 놓은 곳은 여기저기 좀 흩여졌지만 마주 본 두 석상은 그대로 서 있고 산소는 주저앉아있고 그 위로 소나무가 듬성듬성 자라 있다.

예전에 스님이 읽어주신 글 중에 ‘내 무덤 아닌 곳이 없다’라는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산소를 볼 때마다 떠오른다. 우리 집과 나와 인연을 맺고 간 동물들을 땅으로 보내며, 나의 부모를 보내며 주위의 장례식을 가면서 살아온 세월만큼 죽음의 모습과 소식을 접하는 횟수가 는다.

누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다는 소식도 접하지만 점점 죽음의 소식을 접하는 횟수가 늘었다. 어떤 소식은 기쁘고 어떤 소식은 슬프다. 그 경계가 무엇인지. 살면 살수록 그 구별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산소를 보면 왠지 나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지 않았을까? 궁금해지며 그 당시 누군가 떠났을 모습을 생각하면 이승과 이별하는 시간이 안 슬플 수 있었을까? 초연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 추측해 본다.

이 석상은 어떤 옛이야기를 알 고 있을까?

어떤 사람이 이 아래 묻혔을까? 혹시 전생의 나와 인연 있지는 않았을까?

여러 생각이 들다가 육체가 사라지고 나면 이 생각들은 어떻게 어디에 머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내가 격지 못한 죽음에 대한 의문 때문일 것이다.라는 결론을 낸다.

나고 죽고 나고 죽고 그중에 하나의 일과에 동참한 이 석상들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하며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하는 것도 같다.

석상의 눈 코 입을 찾으며 한참을 쳐다보다 보니 주위를 돌며 냄새를 맡던 노견이 볼일 다 봤다는 듯 쳐다본다.

스쳐가는 시간처럼 우리도 이렇게 스쳐갈 텐데 다음의 내가 다시 존재한다면 이곳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해 줄까? 언젠가 내가 했던 생각을 또 하며 의문을 품을까?

재미있는 수수께끼 같은 생각을 하며 오늘의 아침 산책을 마무리했다.

저녁에 오기엔 무리인 길이니 다음 밝은 날 또 찾아보길 기대하며 인사를 건넨다. 또 봐요 석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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