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의 문장

(제11화) 어려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있었다

by 보리수

자정 바로 넘어 오빠가 들어왔다. 하마터면 12시 통행금지에 걸릴뻔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즈음인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여름에 좀 큰 한옥으로 이사 간 집엔 큰 대문과 쪽문 두 개가 있었다. 식구들은 주로 쪽문으로 다녔고 쪽문의 존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문으로 찾아왔다. 그날 쪽문의 띵똥 벨소리가 옆집까지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려 내가 잽싸게 나가서 문을 열어줬다. 엄마와 아빠도 안방에서 걱정하다가 나오셨다.

‘어디 있다 왔니?’, ‘오다가 별일 없었니?’, ‘조심해야 해’ ,‘내가 오늘 들은 소리가 있어’ ,‘대통령이 죽은 것 같더라’ ,‘밖에 군인들이 깔려 있는 거 같아요’ , ‘너 늦게 다니지 마’ ,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 ‘내일은 되도록 나가지 마라’ , ‘나가야 하는데요?’ ‘왜?’ ‘.....’

난 마당 중간에 서서 오빠와 아빠를 번갈아 보며 스산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왠지 모를 묵직한 기분에 큰일이 났었다는 느낌만 갖었었다.

대학가 더니 자주 통행금지에 걸릴뻔하게 집에 오는 아들이 걱정돼서 하는 말씀만은 아닌 것 같았다. 동대문과 광화문과 가까운 위치에 집이 있었기에 아버지는 그 당시 일어났던 일들이 무척이나 걱정되셨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날의 기억이 중 1 때라 어렴풋하다.

오빠와 아빠의 단답식 대화사이에 흐르던 공기가 막연하게 서늘한 두려움으로 전달되었던 기억밖에 없다.

그렇게 그 기억은 묻혔다.

그 기억과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이어져서 기억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냥 그즈음에 대통령이 돌아가시니 세상이 어수선해서 아빠가 통행금지 전에 들어오란 말인가 보다 했는데 그 당시 수상하면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지금 보면 말이 안 되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중2로 올라갔을 것이다.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학교에서

‘어제 삼촌이 전화했는데 광주에서 군인들이 사람을 죽인대’

‘연락을 이제 못할 것이라더라고’

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와 팔짱 끼고 화장실까지 같이 가는 사이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앞 뒤로 앉아 함께 도시락을 먹고 수다 떠는 친구이기에 그 친구 말이 흘려 들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말하면 잡혀간대’라는 말까지 덧 붙이면서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던 중학생친구의 모습이 요즘 부쩍 생각난다.

그 이유는 요즘 하 수상한 시절 때문일 것이다.

작년 12월 3일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게엄이래’

난 노견뒷수발에 피곤해서 벌써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게. 아빠도 봤다. 이게 뭔 일이라니’

잠 결에 딸의 전화벨 소리와 남편의 대화를 들으며

‘무슨 일이래?’

딸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게엄이란다. 남편은 TV를 틀었고 나는 잠깐 일어나 앉았다가 몰려오는 잠에 다시 누웠다.

‘뭐 별일 있겠어?’ 나는 웅얼거리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좀 있다가 노견께서 버리 적 거리며 쉬아가 마렵다는 신호를 보냈다.

잠결에도 그 소리는 명료하게 들려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게엄이 해제되었대. 국회에서...’

‘그렇겠지... 그게 말이 되나?’

그때까지도 잠에 취해 심각성을 몰랐다.

난 노견의 뒤처리를 하고 다시 누우려 하는데 TV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회상황을 다시 보여줬다.

잠깐 별일 아니지 않나? 하던 생각이 달아나면서 어렸을 때 그 기억과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과 작년의 오늘을 떠올렸다.

‘그날 게엄은 나를 잠에서 못 깨워도 우리 집 노견이 짖는 소리엔 내가 벌떡 일어났잖아.’

지나간 일이니 말은 이렇게 해도 1년의 과정을 보면 중학교 올라가 어리바리하던 시절 느꼈던 서늘함의 공포가 생각난다. 어쩌면 작년 12월 3일도 그렇게 어리바리하게 당했을 수도 있었는데 많은 현명한 사람들 덕에 오늘을 살 수 있게 되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지치지도 않고 줄줄이 사탕으로 악의 모습이 드러난다. 언젠간 이일도 끝이 있을 것이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완전히 깨끗하게 끝이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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