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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륭짱 Mar 14. 2023

순례 20일 차 : #레온 #생일 #김치 #아니 벌써

26.9살 막바지에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22/11/08 화요일 Stay

In 레온(Leon)


로그로뇨(Logrono)에 이은 두 번째 머무름이 레온에서 시작되었다. 지친 몸과 물집으로 고생 중인 발을 달래주기엔 너무나 적절한 쉼이었다. 어젯밤에 레온 성당을 살짝 보고 왔는데, 까만 밤하늘과 대비되어 그런지 성당은 더욱 밝고 웅장한 모습이었다.


긴 밤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밝아왔다. 모처럼 오롯이 쉬는 날을 맞게 된 우리들은 아침 일찍 성당 내부를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달달한 초코맛 시리얼을 와그작 먹으며 레온성당에 갈 준비를 했다. 대략 7유로쯤 하는 티켓을 사들고 나란히 줄을 서서 들어갔는데, 외부와는 또 다른 화려한 공간을 마주하게 되니 정말로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밤에 보는 것과 내부에 들어와 성당 안을 보는 것은 정말로 달랐다. 외부의 빛을 받아 화려한 색을 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층고는 또 어찌나 높은지 고개를 위로 쳐들었어야 했는데 그 때문에 목은 조금 아팠지만, 시선을 뗄 수가 없을 만큼 화려하며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엔 너무나 충분했다.


레온 성당 내부


약 1시간여의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인근 알베르게에서 순례자 여권을 1개 더 마련하였고, 동시에 저번에 보았던 너무나 유쾌한 프랑스인 순례자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와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짧게 인사를 하고 바로 헤어졌지만, 꽤 특별하고 인상 깊던 순간임에는 분명했다.


아직 레온에서 할 것이 많은 우리였기에 점심으로 N언니가 준비해 준 쌀국수를 먹고 다 같이 쇼핑몰로 향했다.

마침, 이날은 N언니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우린 N언니가 좋아하는 와인과 케이크를 사서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다.


조금은 쌀쌀하고도 촉촉이 내리는 빗방울에 날씨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파티는 멈출 수 없었다.


셋이 돈을 합쳐 조금은 비싼 와인과 케이크(정확히는 큰 빵..)를 사곤 곧장 숙소로 들어갔다.


크고 네모난 식탁엔 케이크, 와인, 4개의 와인잔, 수육, 김치가 가득했다. 제대로 김치를 만들고 싶다는 N언니의 소원이 여기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솜씨 좋은 N언니가 전날부터 절여놓은 배추에 김치 양념을 쓱- 발라 무친 먹음직스러운 김치였다. (스페인에서 김장김치를 먹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해피벌쓰데이


모든 준비가 끝난 파티는 거실의 불이 꺼지며 시작되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를 끄며 소원을 빌고 맛있는 음식들을 나눠먹으며 끊임없이 얘기를 나눴다.


다시 내일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먼 길을 떠날 테지만, 이젠 앞으로 걸어갈 날보다 걸어온 날이 더 많았다고 생각이 드니 왠지 모른 아쉬움이 가득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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