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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 Apr 08. 2023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나다움, 나를 공유합니다.

난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꽤나 현실적인 편인데 이 둘을 함께 품고 간다는 건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설치며 화실을 다니던 중학생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먼저 예고에 들어가 미대를 준비하는 언니를 보고 예체능에 엄청난 교육비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교육비에 비해 터무니없이 불확실한 미래도 덤이며 5살 어린 막내 당시 너무 순했다.


나는 우리 삼 남매 중에 성공을 향해 몸부림칠만한 독한 인간은 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내 나이에 가장 쉽고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루트는 다름 아닌 입시공부였다. '내가 성공하고 부자가 돼서 가족들이 아무 걱정 없이 떵떵거리며 살게 해 줘야겠다.'라는 오만방자한 착각으로 미술을 관두고 입시공부에 뛰어들었다.

그 이후 전공을 선택할 때도 전문직은 성공, 안정 보장이라는 믿음으로 6년제 한의대를 갔고 나름 치열하게 산 덕분에 현역으로 수석 졸업을 한 뒤 한의사가 된 지 벌써 5년 차. 현실은 달랐다.


덧붙여 소수의 직업으로 산다는 건 외롭다. 일을 하면서 주말 양일을 쉬는 건 매우 드물며 연차 또한 희박하다. 나는 아직 페이닥터라 사업가도 아니고 주말과 연차를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직장인도 아니며(직장인이 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 각자의 고충이 있다는 것을 안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그래도 전문직'이라는 꼬리표로 아무에게도 공감을 못 얻는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아니요.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 때문에 공부를 했는데 현실이 생각보다 다른 걸 알고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대한민국 입시제도가 이래서 문제다.'라는 전형적이고 뻔한 얘기를 기대했겠지만 다행히도 난 공부도 좋아했고 세상에 배워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시험이 원하는 요지를 잘 파고들고 또 그것을 즐겼으며 가성비 있게 시험을 잘 치는 입시 최적화된 인간이었다. 물론 더 좋은 결과를 위해 그 가성비 이상의 노력을 병행했다.

대학생활은 1교시부터 9교시까지 꽉 채워진 시간표, 밤늦게 해부를 한 날엔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았던 손톱 사이 유쾌하지 못한 냄새,  못 자고 후천적으로 생긴 음식 알레르기로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해 지금보다 약 10kg이 빠져 앙상했던 내 몸, 그 이상이다.


그래 난 내 직업이 좋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직업을 얻기까지 내가 들였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것을 경험했던, 경험하고 있는 나를 좋아한다. 더불어 누군가가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느끼는 보람은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이다.


아무튼 그땐 내가 엄청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노답 그 자체다. '공부-> 성공, 부자'라니. 동생 말을 빌리자면 초딩 마인드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부모님은 알아서 잘 살고 계시고 나는 내 앞 날이 제일 고민거리인 딸이 됐다. 참고로 난 부자가 못되었으니 혹여 나에게 그에 관한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후 개념과 가치관이 새로이 형성되었고 그때와 많이 바뀌었지만 그 미숙한 가치관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산 덕분에 지금 '하는 게 많은데 넌 안 피곤하냐.'는 말을 들어도 진심으로 안 피곤 하다고 답할 수 있다. 중학생 때부터 잠이 오면 커피 알갱이를 잘근잘근 씹어 먹으며 수면욕을 이겨낸 덕분에 힘듦의 역치가 커졌다.


아직도 난 하고 싶은 게 많고 열정도 많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경험과 깨달음의 반복으로 나를 알고 나다움을 실천하며 사는 것. 여기서 나다움이란 '이상을 추구하는 나', '그럼에도 현실적인 감각을 탑재하려는 나'와 여러 가지 내 모습을 모두 포용한 의미다.


이렇게 뻘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자기 확언을 공개해야지 내가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은 어차피 하고 싶은 건 진심으로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그냥 나를 믿는다.


지금 직업이 내 마지막은 아니며 애초에 직업이라는 게 누군가의 마지막이 될 수 없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 나의 나다움이 전달되어 누군가가 공감을 받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순간 부정적인 감정이 들더라도 마침내 그의 인생에서 긍정적인 영향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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