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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Jul 19. 2023

이 결혼은 실패했다

내 남편은 돌싱, 그리고 그의 이혼사유





나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남편과 미친 사랑에 빠져 혼전임신을 하고 결혼하였다.


남편은 분명 걱정할 거 없다고 큰소리쳤다.

아이 갖는 게 중요한 분이라고, 아이가 생겼는데 기뻐하지 안 좋아할 리가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자신감이 있었다.

나를 싫어하는 어른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좋아하실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남편도 나도 착각을 아주 단단히 했다.

아이 갖는 건 중요하지만 나의 시어머니는 며느리만큼은 그 누가 되어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을 분이셨고, 나 또한 나를 싫어하는 어른을 처음 만났다.







남편은 한번 다녀온 돌싱이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아이 없이 이혼한 케이스이다.

그래서인지 시댁걱정은 말라며, 무조건 좋아하실 거라 했고, 우리의 설득 당사자는 친정이었지 시댁이 아니었다.


실제로 우린 임신사실을 알고서,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때 나는 전혀 긴장을 하지 않았고, 남편은 옷을 일곱 벌이나 갈아입고 갈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었다.



결과는 예상의 반대였다.

엄마는 분명 나의 임신사실을 알고서

"애 아빠는 볼 것도 없이 네가 문제야!" 하던 분이었다. 결혼 반대를 한다 해도 나의 선택이기에 물러설 생각은 없었지만 남편을 처음 만난 날, 엄마는 남편을 사위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귀한 사위로. 내 딸을 사랑하는 게 눈빛에서, 행동에서 모두 보인다고, 이제 바통터치 해도 되겠다고 말이다.



문제는 시댁이었다.

전혀 긴장하지 않았던 데에 비해 시댁은 마치 선심 쓰듯 한 말씀하셨다.

"다른 건 하나도 바라지 않으마. 세례는 받았으면 좋겠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세례만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세례도 받아야 되는 것이었다.






임신 5주차부터 7년간 나는 매 주말마다 시댁을 만나왔다. 기혼 여성들은 단번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시댁에서 생활비 조로 용돈 받는 거 아니야?"


실제로 주변에 증여세를 아끼려고 부동산이나 목돈으로 주는 대신 생활비를 현금으로 주느라고 한 달에 한번 시댁을 만나는 집이 있었다.


우리집은 아니었다. 시댁은 그 당시에 잘 사는 편이었지만 우린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아니 주신다고 해도 거절했을 것이다. 내가 돌싱인 남자와 결혼한 건 사랑해서가 맞지만 시댁 도움 없이 사는 것이 나의 결혼조건이기도 했다.



둘이 데이트할 시간도 부족한데 매주 시댁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건 많이 불편했고, 임신 초기여서인지 시댁 만날 생각에 속이 메슥거리고  신물이 왈칵 올라오기도 빈혈이 생길 때도 있었기에 더 이상 참기보다 남편에게 말을 해야겠다 싶었다.



임신한 지 10주 정도 되었을까, 시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던 어느 일요일,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말을 꺼냈다.



"오빠, 양가 부모님은 명절이나 경조사에 함께 봤으면 좋겠어. 나는 집에서 쉬어도 되니 부모님과 시간 보내고 와요"


"결혼했으면 당연히 같이 다녀야지! 명절이나 경조사에만 보는 건 누가 정하는데! 안 되는 일이야!"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느꼈다. 이 결혼은 실패했다고.



남편은 8살 어린 나와 결혼한 이유가 있었다.

나이 어린 여자, 초장에 휘어잡아 이번 결혼은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이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결혼하면 무조건 본인의 뜻에 맞추는 게 아내의 도리라고 믿은, 아내의 희생이 본인의 이기심을 채워주는 게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







남편과 나는 8살 차이가 난다.

남편의 전 부인은 나보다 5살이 많았다고 했다.

그들의 이혼사유는 흔히 말하는 성격차이였고 조정이혼으로 이혼한 케이스였다.


전 부인과는 일 년 정도 만나다 보니 명절에 여자친구 집에 인사오라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결혼이야기가 나왔고 얼떨결에 결혼했는데, 다들 그렇게 결혼해서 사는 줄 알았다고 했다.

죽을만큼 사랑해서 결혼했던 케이스는 적어도 그 당시에 남편 주변엔 없었다.

전 부인은 남편이 밤에 늦거나 술자리가 있을 때 전화를 안 받으면 부재중 50통이 찍혀있을 정도로 숨 막히게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혼사유가 무엇이었냐고 묻자,

본인은 이혼사유가 없다고 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장을 갔는데 집에 있는 콘돔을 챙겨 간 것을 전 부인에게 들켰다고, 그날부터 이혼하자 소릴 입에 달고 살더니 결국 바람이 났고, 이혼해 준 거라고 했다.

본인은 챙기기만 했지 쓴 적은 없다고, 어느 영화에서 남자끼리 여행을 가는데 아내가 여행선물로 콘돔 을 챙겨주었다며, 그것이 문제될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말이다.

애석하게도 그 영화는 노부부들 간에 나누는 대화씬이였고, 아내와 남편의 머리는 새하얗게 새어있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그랬다. 방귀 뀐놈이 성낸다고 바람은 전처가 피웠으면서 이혼하자고 혈안이 되어있었다고.



그 땐 그저 성격차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남편이 실수했었지만 살다보면 서로 인정과 이해가 쌓이면 될 일이라 '콘돔사건'을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7년간 내가 살아보니, 이 남자와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로, 남편이 아닌 전 부인의 이혼사유인 콘돔사건은 단순히 성격차이라고 하기엔 그 무게가 너무 무거운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만난지 두 달만에 초고속으로 결혼했다. 부부상담을 4년간 받으며, 협의이혼서류를 여러번 고쳐쓰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남편은 나를 사랑한다. 본인 자신 보다도.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우린 서로에게 미쳐있었고, 남편도 나도 그간 만나온 사람들은 있었지만 살면서 이렇게 사랑한 사람은 서로가 유일했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듯한 감정을 느낄때마다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나의 남편은 사랑하는 사람에겐 할 수 없을 만큼의 이기심으로 똘 똘 뭉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철이 없어도 심각할 정도로 없어서 통상 그 나이에 이해할만한 수준의 경험도 부족했고, 본인이 경험한것만 이해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무너져 본 적이 없는 무적의 안하무인 강남키즈였다.



지팔지꼰이라고 내가 딱 그 꼴인 것 같았다.



남편은 8살 어린 나를, 시어머니는 본인 딸보다 11살어린 며느리를 통째로 개조하려고 했다. 본인들 뜻대로 요리하기 쉽게 말이다.



임신초기 임산부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어쩌지

이번 생에 결혼은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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