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나 Feb 02. 2024

축구에 소질이 있나 봐, 심장이 뛰었다

처음 축구클럽에 간 날, 그날 바로 축구 경기에 투입되었다. 오늘 축구공과 첫 만남인데 진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오늘 처음이면 서로 눈치도 좀 보고, 서로 어떤지도 좀 따져보고, 서로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뻥 차라니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축구 클럽은 1시간 20분 정도 연습을 하고 40분 정도 축구 시합을 했다. 연습 시간에 몇 번 축구공과 인사하긴 했지만 여전히 서먹한 관계인 우리가 시합에서 만날 수 있을까? 몇 번의 거절을 했지만 이렇게 하면서 배우는 거라며 회장님은 친히 경기장 안으로 손을 이끌어주었다.

[축알못]인 나는 선수가 서는 위치도 모르고 심지어 축구 규칙도 모른다.


그저 다들 하는 한마디.


- 골대에 공만 넣으면 돼!


나는 골대를 헷갈리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내가 넣어야 하는 골대는 저쪽! 이쪽이 아니라 저쪽!

경기가 시작되었다.


회장님이 이끌어 세워준 자리는 공격에 해당하는 맨 앞자리였다. 나는 그저 공을 보며 죽어라 뛰었다. 나의 머릿속에는 골대에 공만 넣는 거야,라는 목표만 그려 넣었다. 그 큰 경기장을 끝에서 끝까지 많이도 달려 다녔다. 뛰지 않아도 될 때에도 부지런히 공과 친해지기 위해 쫓아다녔다. 애달픈 사랑이 부족할까 열심히도 따라다녔다.


그렇게 의욕이 넘쳐 열심히 쫓아다니니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골대 앞으로 달려가는 나에게 패스된 축구공, 이제 나는 골대 쪽으로 공만 툭 차서 넣으면 된다.


오늘 축구와 첫 만남에 너무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와, 나 생각보다 축구에 소질이 있나 봐 하는 김칫국으로 심장이 뛰었다.

이미 머릿속엔 골을 넣고 환호하는 내 모습과 축구클럽 회원들이 손뼉 치며 좋아하는 모습으로 두근거렸다. 처음 하는데 잘하네, 소질 있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까. 달리기를 해서 심장이 뛰는지, 좋아서 뛰는지 모를 콩닥거림은 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골대 앞으로 달려가는 나에게 패스된 축구공은 내 발 앞까지 제대로 배달되어 왔다. 잘 배달된 축구공을, 물론 아직 친해지지 않은 서먹한 축구공을, 있는 힘껏 차주면 끝이다. 여기서 밀당은 필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치도 없게 축구공과 내 발이 만나는 순간, 발에 힘이 쑥 빠져버리고 말았다. 분명 힘 있게 달리고 있었는데 막상 공을 차려니 아직 친해지지 않은 축구공과의 만남이 부끄러워 그런지 괜한 헛발질이 웬 말일까.

나에게 헛발질당한 축구공은 힘없이 데굴데굴 굴러가고 나도 같이 축구장에서 나름 사이좋게 같이 굴렀다. 이 정도면 나에게 친해질 기회를 줄려나. 어느새 축구공은 골키퍼손에서 웃고 있을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