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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wa Apr 09. 2024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어릴 적 엄마와의 이야기를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으면서, 엄마에게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거든.


그래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했어. 브런치북의 글을 발행하라는 메시지를 매주 받으면서 몇 주간 고민하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은 어디서 채워야 할까요?]라는 글을 보게 되었어. 질문자는 나와 전혀 다른 상황이긴 했지만 이에 대한 한 스님의 말씀이 내가 찾던 대답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들어볼래?


무조건 ‘사랑해 주세요’ 이러지 말고요. 그 당시 어머니는 본인이 가능한 범위에서 질문자를 사랑했을 겁니다. 사랑의 정도가 내가 원하는 만큼 아니었을 뿐입니다. 어머니도 살아가기 힘들고 바빠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애들한테 악을 쓰고 했겠죠. 내가 어머니에게 바라는 만큼은 아니지만 어머니 수준에서는 할 만큼 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어머니에게 어릴 때 사랑받지 못했다고 하거나 학대를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어머니는 동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서 자식들을 키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은 아닌 건 맞아요. 그러나 어머니의 당시 입장과 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인 역량 내에서는 그 정도 한 것도 죽을힘을 다해서 한 거예요.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1,000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나한테 100을 해줬다고 하면 내가 좀 섭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100의 힘을 가지고, 나에게 100을 해줬다면 어떻습니까? 나한테 100을 해줬다는 것은 같지만 후자는 최선을 다한 것이죠. 역량이 100밖에 안되는데도 모두 준 것이니까요. 질문자의 어머니는 역량이 적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수준에서는 부모로서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어머니는 동의를 못 합니다. 질문자의 생각에는 지금이라도 엄마가 뉘우쳐서 나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좀 풀릴 것 같겠지만, 정작 어머니 본인은 그런 생각을 절대 못 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당시에 할 수 있는데 안 한 게 아니고 자기 깜냥으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의 말을 들으면 오히려 괘씸한 생각이 들 거예요. ‘내가 온갖 고생을 해서 키워놨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https://m.jungto.org/pomnyun/view/84725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는 자기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 했을 수도 있겠다 하는 그런 생각.

그래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까맣게 알지도 못하겠다 하는 생각.

오히려 엄마가 나에게 서운해 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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