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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wa Mar 23. 2024

사랑하는 딸이 지저분한 몰골로 있다면,

초등학생 시절,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어. 특별히 바쁘진 않아. 그냥 잠깐 세수하며 눈곱 떼고 옷 입고 가방 메고 나가면 되잖아.

다들 그러지 않았어?


개인 사업을 운영하셨던 부모님은 오전 10시쯤 일어나 준비하고 점심을 먹은 뒤 출근하셨어. 그러다가 밤늦게까지 일하다 밤 12시쯤 정리하고 들어오셔.


늦게 일어나는 부모님 때문에 난 아침은 못 먹고, 점심은 학교에서, 저녁은 엄마가 점심때 만들어둔 김치찌개로 혼자 먹을 때가 많았어.

그렇게 혼자 학교 가고 집에 와도 혼자였어.

씻지 않아도, 늦게 자도, 티브이를 실컷 봐도, 밥을 조금만 먹어도 안 먹어도 말리거나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지.

사실 매일 샤워를 해야 하는지, 머리는 언제 감는지 잘 몰랐어. 하루에 이를 몇 번이나 닦는지, 왜 닦아야 하는지도 몰랐어.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귀찮으니 안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거든.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해.

분명 나를 사랑하시면서 왜 그렇게 내버려 두셨을까. 왜 늘 혼자 두면서 혼자 살아갈 수 있게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심지어 아직도 기억나는 엄마의 한마디...


이 닦는 거 귀찮으면
하루에 한 번만 닦아도 돼


그래서 난 하루에 한 번만 닦으면 되는 거라 생각했지. 그때는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기 전에 한번 닦는 게 깨끗할까, 아님 학교 가기 전에 한번 닦는 게 좋을까 하며 말이야.

그래서 당연하게도 이가 많이 썩었어. 초등학교 때부터 치과에 다니며 치료하기 시작했어. 물론 치과는 혼자 다녔지만 치과 치료비가 비싸든 싸든 상관없었던 것 같아. 엄마가 다 치료비를 내주셨으니. 

난 그저 치과에 가면서도 이를 닦기 싫어 음료수를 마시고 그걸로 입을 헹구고 갔어. 치과선생님이 이를 닦으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하루이틀 지나면 집에서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으니 금세 잊어버리곤 했지.


어른이 된 이후에 생각했어. 돈이 많으면 돈으로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던 걸까라고 생각도 해봤어. 근데 난 내 딸이 이를 닦지 않아 치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돈보다도 고생할 딸 생각이 먼저 나. 치과 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에 아프기 전에  양치질을 잘했으면 좋겠어.

내가 고생해 봐서 아는 걸까? 엄마도 이를 잘 닦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잘 썩지 않는 치아였나? 지금에서야 엄마는 이가 안 좋아 치과를 자주 다녀. 치과에 몇 백만 원 투자 중이지.




이뿐만 아니라 샤워도 잘하지 않고 머리도 잘 감지 않았으니 늘 머리가 기름져서 학교에 갔어.

나중에 친구들에게서

"너 머리 안 감아서 기름졌어"

"너 머리 언제 감은 거야?"

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제야 부끄러워졌어.


아침에 일어나면 심지어 전날 묶은 머리 그대로 풀지도 다시 묶지도 빗지도 않은 채 학교를 갔으니...


한 번은 학교에 걸어가다 문득 가게에 비치는 내 머리가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 자는 엄마를 깨워 머리 좀 묶어 달라 부탁했지. 하지만 엄마는 괜찮다며 그냥 학교를 가라고 하셨어. 내일 묶어준다고...


사랑하는 딸이 그렇게 지저분한 몰골로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저 바쁘다는 이유로 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얼마나 바쁘면 그럴 수 있을까?


선생님이 되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아이들이 있어. 씻지 않아 냄새나고, 머리 기름지고,,,

그 아이들에게서 내 어릴 적 모습을 발견해. 그럼 난 조용히 다가가서 알려주는 거야.


매일 씻어야 해. 

왜 씻어야 하냐면,,,

어떻게 씻어야 하냐면,,,


지금 생각하면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거지만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혼자 할 수 없고, 혼자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많기에...

아무리 바빠도 기본은 가르쳐주는 것이 어른이라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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