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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wa Mar 16. 2024

엄마는 놀고 싶었어. 아이 없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는 30대 중반이었어. 한참 놀고 싶었을 것 같아. 여행도 가고 싶었을 거고.

그것도 나 없이 말이야.

이번 엄마, 아빠의 여행에 오빠와 난 집을 지키는 역할이었어. 난 늘 조용히 있었고 오빠도 크게 사고를 치지 않았으니 우리 걱정은 안 했을 거야. 차라리 우리 둘만 있었음 다행이었을 거야.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큰 짐을 두 개나 맡기고 여행을 갔어. 같이 여행을 가는 이모의 아이들 말이야. 그 아이들은 2살, 4살의 꼬맹이들이었어. 엄마는 내가 아기들을 좋아하니까 괜찮을 거라 했어. 평소에도 이모가 놀러 오면 아기는 늘 내 차지였거든.


세상에, 2살 된 아이를 만나본 적 있어? 난 1살보다 2살 된 아기가 더 무섭더라. 걷거나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다 만지며 사고를 치는 시기거든.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고. 그럼에도 여전히 분유를 타줘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잠도 재워줘야 해. 또 밥도 먹여줘야 하고 자주 안아줘야 해.

9살 꼬마에게 2살의 무게는 감당 가능했을까. 4살 아이도 아기나 다름없지 머. 둘은 이모와 엄마가 나가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어. 엄마 보고 싶다고.

그래 나도 엄마가 보고 싶어.


나와 오빠는 아기들을 달래려고 액자 속 사진을 가져와 이모를 보여주었어. 아기들은 이미 그 사진이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보자마자 던져버리고 더 크게 울어댔으니.


엄마가 여행을 가서 이모들과 신나게 하하 호호하고 있을 때 나는 아기들을 돌보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지. 그래도 우는 아기들이 있어 엄마가 없는 집이 무섭진 않았어. 그저 밤이 길었을 뿐.

낮도 길고 저녁도 길고, 밤은 특히 더 길고 아침도 길었어.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엄마는 오지 않았어. 생각해 봐. 여행을 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 놀았다면 다음날 아침은 늦잠도 자고 해장도 하고 다시 짐도 싸야 하고 할 일이 많잖아. 그럼 빨라도 점심쯤은 되어야 오겠지. 멀리 여행 갔다면 오는데만 몇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




어릴 적 생각이 났어. 그때는 사촌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이었나 봐. 오빠와 나 단 둘이 집에 있었던 거 보니... 그럼 내가 5살? 6살쯤?

아파트에 살기 전 주택에 살고 있을 때야. 


오빠와 나 단 둘이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장면이 기억이 나. 엄마 언제 오나 하고 엄마만 기다리는 거야. 오빠가 자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안 그래도 겁먹는 나를 더 무섭게 만들었어. 나는 거의 울기일보 직전이었을 거야. 나는 상상 속에서 거실 가득 큰 구렁이가 기어 다니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어.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정말 무서웠지.




그래서 그런가.

난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무서워.

이렇게 어른이 되어 커버린 지금은 상상 속 구렁이나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아무도 없는 외로움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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