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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wa Mar 10. 2024

엘리베이터 괴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예전 주택보다 훨씬 좋았어.

햇빛도 잘 들어오고 깨끗했어. 14층인 데다가 앞에 막고 있는 다른 아파트가 없어서 햇볕이 따뜻하게 잘 들어올 수밖에 없었지. 게다가 이제 큰길만 한 번 건너면 더 이상 좁은 골목길을 걸어갈 필요가 없어졌어.


새 집엔 내 방도 생겼어. 엄마가 새 침대에 새 책상까지 사주셨지.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핑크핑크 공주방이 꿈이었지만 그런 꿈에 그리던 방은 아니었어. 그냥 네모난 침대에 네모난 책상. 엄마가 좋아하는 꽃무늬 이불. 나한테 한 번이라도 물어봐주었으면 좋았겠지만..

핑크색커튼이라도 있었으면...

복에 겨운 투정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당시 우리 집은 적당히 잘 살았어. 갖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고민 없이 살 정도는 되었지. 하지만 난 한 번도 먼저 무엇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어.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몰랐거든.

그냥 해주는 데로 가만히 받기만 했어. 나도 공주방 갖고 싶다, 치킨 먹고 싶다 생각은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어.


한 번은 엄마가 이모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


"우리 딸은 치킨 사달라는 소리를 안 하더라. 근데 사주면 잘 먹고"


엄마의 말을 들으며 다른 친구들은 사달라고 먼저 이야기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왜 나한테는 말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나에겐 의견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면서 이모에게는 왜 저렇게 말을 하는 걸까. 나는 그냥 해주면 해주는 대로 순종적으로만 받아들였거든. 이건 성격 때문인 걸까. 엄마의 교육 때문인 걸까... 

뭐, 그 뒤로도 여전히 난 원하는 것을 잘 말하지 못했어.

내가 기억하기로는 중3쯤 돼서야 내 의견을 말했다가 크게 싸우고 집까지 나갔으니... 이 이야기는 나중에 차근차근 들려줄게.



아무튼 그거라도 충분한 거지. 나만의 공간이 새 물건으로 가득 찼으니.


다 좋은데.. 다른 문제가 생겼어.

1층 집에 살다가 14층이나 높은 곳에 사는 게 신기한 건 아주 잠깐 뿐이었어.


나는 엘리베이터가 너무 무서웠어.


그때 한참 2학년 친구들 사이에 엘리베이터 괴담이 유행했거든. 혼자 엘리베리터를 탔는데 각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열렸다는 이야기, 같이 탄 사람이 사실은 귀신이었다는 이야기, 어떤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문쪽에 작은 창문이 있는데 그 창문을 계속 보고 있으면 유령이 쫓아오거나 피를 흘리는 것을 본다는 이야기 등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이야기가 귀를 막아도 자꾸만 들려왔어.

혼자 있을 때면 무서운 귀신이야기가 자꾸만 떠올랐어.

그 엘리베이터 좁은 공간에 혼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 14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너무 길게만 느껴졌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갈까 몇 번 생각했는데 14층까지 올라갈 엄두가 안 났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다 다른 사람이 오길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어.

그러다가 결국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기로 했던 것 같아. 엘리베이터가 너무 무섭다고. 학교까지 안 데리러 와도 되니 엘리베이터 탈 때 같이 기다려주면 안 되겠냐고. 아니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현관 앞에 나와 있어 주면 좋겠다고.


물론 엄마는 그 어떤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어. 오히려 뭐가 무섭냐고 그냥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오면 금방이라고  귀찮아하셨지. 

그 뒤로 눈을 꼭 감고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하는 내 방식대로 서서히 두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었어.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아 엘리베이터가 무섭다고 하면 꼭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줘야지 생각하면서...




Ps. 그 뒤로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은 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는지 궁금하니?

나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아파트 20층에 살았는데 아이 혼자 밖에 보내본 적은 없었어. 항상 데려다주고 데려왔지. 그래서 물론 엘리베이터도 함께 탔고.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어 이사 온 곳은 전원주택인데 학교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이고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라  등하교는 동생과 둘이 했지. 그 길로 동네 아이들이 다 학교 가는 길이라 학교 가는 길엔 동네친구들 다 만나서 같이 가더라고.

물론 처음엔 학교 가고 오는 길도 엄마와 함께 여러 번 걸으며 알려주었고. 이제 혼자 갈 수 있겠다고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주었지.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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