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지혜 Aug 16. 2023

다시 사랑하지 않겠다는
달콤한 거짓말

(3). 황소가 될 수 없는 노새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흐지부지하게 반년 만에 첫 남자친구와 헤어진 K는 얼마 되지 않아서 M을 만났다. M은 한겨울에 두툼한 외투를 입었는데도 덩그러니 큰 키에 허수아비처럼 옷을 둘둘 두른 듯 말랐다. 누군가 K에게 M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황소처럼 우직하고 변함없는 사람”     


    이라고 대답할 거라고 했다. M을 처음 만난 날은 눈이 많이 내렸었다. 강변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M은 멀리서도 한눈에 K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예쁜 큰 인형이 갖고 싶어.”     


         K의 말을 듣고 큰 스누피 인형을 들고 지하철역 4번 출구 앞에 서 있었다. K와 M은 닭갈비에 볶음밥까지 먹고 한참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선한 M이 맘에 들었다. 물론 예쁜 인형도 맘에 들었다. 며칠 뒤 성인식 날이 됐다. M이 만나자고 했다. M은 커다란 장미꽃 스무 송이를 들고 강변역 4번 출구에서 K를 기다리고 있었다. 좀 전까지 온 하얀 눈이 빨간 장미꽃과 예쁘게 어우러져 뭐라 형용할 수 없이 완벽한 성인식의 한 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연인이 됐다. 그날부터 M이랑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도 또 헤어지는 장소도 항상 K의 집 대문 앞이었다. M은 K가 힘들게 어딘가로 가는 게 싫다고 했다. 그 덕에 K는 늘 집 안에서 예쁘게 단장을 마치고 대문을 열면서 M을 만났다. 이런 만남을 이들이 1년 반 동안 했다. M이 군대에 가서 있던 시간을 제하곤 늘 그렇게 집 앞에서 집 앞으로의 데이트가 이어졌다.     


          오랜 시간을 만났지만, K와 M은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다. 이들이 서로 잘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M은 한 번도 K의 말에 반대표를 든 적이 없었다. 늘 K를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준 최고의 남자친구였다. 물론 K도 그런 M이 좋았고,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 갖고 나갔다. M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가난한 M의 주머니 사정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K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M은 경제적으로 아주 많이 힘들었다.     


          M의 가정사를 알게 된 것은 그의 집에 놀러 가서부터였다. 사귄 지 100일이 채 안 된 때였는데. M이 엄마랑 형이 없다며 집에 가서 놀자고 했다. 그의 집은 논현동에 있는 아주 낡은 아파트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M네 집은 믿기지 않을 만큼 초라하고 낡았다. K는 슈퍼에서 사 온 몇 가지 재료를 갖고 볶음밥을 만들어 주려고 부엌 쪽으로 갔다. 너무 오래돼서 휘어진 나무 도마와 거의 쓰지 않는 듯한 무딘 칼, 몇 개뿐인 그릇, 오래된 밥솥과 불이 잘 켜지지 않는 가스레인지, 매일 이곳에서 밥을 지어 먹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K는 잘리지 않는 칼로 볶음밥 재료들을 간신히(?) 잘라서 밥을 만들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M이 집을 둘러보게 해 줬다. 차라리 보지 말걸.     


         M이 보여준 그의 집은 마치 어딘가에 있다가 갑자기 이곳으로 준비 없이 피난 온 듯 정리된 것이 하나 없이 가구와 물건들을 실어 다가놓은 것 같았다. M의 방은 물건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생들이 쓸법한 낡은 책상과 M의 덩치보다 훨씬 작은 의자, 몇 권의 전공 서적. 낡은 침대.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집을 나갔어. 몇 년 전에”

      “어렸을 땐 잘 살았었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M의 아버지는 사업이 망해서 빚쟁이들에게 쫓겨 집을 나갔다. 그 길로 M의 어머니는 술집을 차렸다. 비록 술집을 하지만 예전의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을 벗지 못하고 맞지 않는 과거의 옷을 억지로 걸치고 계셨다. 하나뿐인 형은 분노와 악만 남아서 항상 금방이라도 무슨 사고를 칠 것 같았다. 그 사이에서 견디고 있는 것은 M이었다. 힘든 엄마를 위로하고, 분노만 남은 형을 달래면서.     

 

         K는 M의 가난이 싫었다. 왜 하필 M이 이렇게 불우한 환경에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건지. 그래도 K는 이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M을 사랑했다. 짊어지고 가보기로 했다. 형이 두들겨 패서 팔이 부러지던 날. 깁스를 한 M을 보면서 연민과 사랑이 동시에 올라왔다. 

    

      “M을 지켜주자. 절대 슬프게 하지 말자.”        

  

          M의 아픈 팔이 슬펐다. 가난 따위가 뭔데 불우한 환경이 뭔데. 이겨내면 되지. 꿀꺽하고 그의 현실을 삼켰다. K와 M은 이 일로 더욱더 가까워졌다. 누구도 떨어트릴 수 없을 만큼 감정도 단단해졌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M은 학교를 휴학했다. 공부를 잘한 M은 명문대학교 공과 생이었다. 하지만 집안 환경과 가난은 M을 공부에 몰두하게 두질 않았고, 돈이 급하다고 생각한 그는 오토바이 배달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배달 일을 하는 지역은 하필이면 논현동의 오피스텔 주택가. 술집에서 일을 하는 직업여성들이 사는 동네의 분식집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광경들이 그곳에서 벌어진다고 했다. 한 번은 M이 배달을 갔는데 한 여자가 치마차림에 쭈그리고, 다리를 벌린 채 거스름돈을 주는데 속옷을 입지 않아 하반신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했다. M은 그 여자가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여자들의 동거남들이 건들거리면서 나와서 팁을 건네기도 했다. 이런 험한(?) 곳에서 몇 번의 사고까지 당하면서도 M은 배달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배달이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K에게로 달려왔다. M은 배달 일을 하면서 첫 월급을 받던 날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50만 원의 월급 받은 날. M은 K 손을 끌고 당시 최고 인기가 있었던 프랜차이즈 식당에 데리고 갔다. K는 한 번도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맨날 도시락을 들고 편의점에서 500원짜리 물 하나 사놓고 구석에 앉아 밥을 먹었는데, 그날은 M을 만나고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은 날이다. K는 너무 신기해서 다이어리에 영수증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 두 번째 달 월급이 나왔을 때는 K를 데리고 옷 가게를 갔다. 자기는 맨날 단벌옷을 입고 다니면서 K가 예쁜 옷을 입는 걸 보는 게 행복하다며 예쁜 후드 티와 바지를 사줬다. 그리고 K가 옷을 입은 모습을 보면서 K보다 더 행복하게 웃던 M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늘 M은 K가 먼저였다.          


      “네가 행복하면 난 행복해.”     


         M은 이 말을 자주 했다. M은 없는 형편에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K를 위해서 썼다. 한 번은 K가 뚱딴지같이 피자를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곧장 M은 피자를 사주겠다며 늦은 시간에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나 찾아다녔다. 그리고 만 원짜리 피자 한 판에 그 밤, 몇 시간이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가을의 한 중턱, K는 M과 춘천에 갔다. 매일 용돈을 모아서 여행경비를 만들어 놓았던 이들은 근사하진 않지만 아늑한 숙소도 구했다. 그리고 그날 K는 M과 처음으로 같이 잤다. 둘 다 첫 경험이었기 때문에 뭐가 맞는 건지, 정말 그걸 한 건지 몰랐다. 다만 K가           


           “하반신이 너무 아파.”           


     울먹였고, K가 울먹이는 것을 보자 M은 당황해서 벌떡 일어나 한참 동안 K의 다리와 엉덩이를 주물러줬다.          

           “미안해, 아프게 해서.”

            “나 피 왜 안 나오지? 책 같은데 보면 분명 피가 나온다고 했는데.”         

 

         언제 울먹였는지도 모르게 K는 피식 웃었다. 그날 밤새도록 M은 K를 쓰다듬어줬다. K가 잠들 때까지. M이 군대에 가던 날. M의 친구들과 M의 어머니가 K의 손을 꼭 잡아줬다. 다른 사람이 마음이 변해도 K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M이랑 K는 영화 속에서 나올 법한 연인이라고. M이 군대에 가고 나서 천 통 가까이 되는 편지를 매일 썼다. 일기를 쓰듯이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썼다. 중대장이 중대가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편지가 오는 건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M은 부대에서 유명해졌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M은 제법 군인 표시가 났다. 군대 따위가 서로를 갈라놓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M이 곧 이사를 가서 휴가를 나온다고 했다. K는 당연히 이삿짐 나르는 걸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삿날에 맞춰 M과 함께 집에 갔다. 새로 이사 간 집을 찾아가는 길. 설마, 아니겠지 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다닥다닥 여러 세대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긴 다세대 주택. 그게 이사 간 M의 집이었다. 현관 앞에 신발을 벗으려고 서는데 한 사람이 겨우 서서 움직이기도 힘들 만큼 현관은 매우 비좁았다. M은 자기 옷가지를 담은 짐이라며 작은 라면 박스를 들고 들어갔다. 박스를 여는 순간 너무 놀랐다. 그 작은 라면 박스가 반도 차지 않았는데 그게 옷가지 전부라니. “어서 들어오라”며 반기시는 M의 어머니를 K는 도저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눈치라도 챈 듯 M은 K손을 잡고 급히 집을 나섰다. 커피숍에 가서 마주 보고 앉아있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건 M도 마찬가지였다. M은 말없이 K의 손을 잡았다. 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자신이 울면 M이 슬퍼질 까봐. 집에 돌아온 K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M과 함께하면 이 모든 힘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없었다. M이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이면 함께 살아가야 할 환경은 이렇단 말인가? 이제 제대가 반년도 남지 않은 시기. M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K에게 편지로 썼다.           


            “마음이란 건 순간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한 거야. 이해해. 그렇지만 떠나지는 말아 줘. 부탁할게. 네가 없으면 난 살 수가 없어.”          


             M의 회유와 부탁에도 점점 K의 마음은 멀어지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현실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결국 K는 M과 사귄 지 3년이 채 되기 전에 결별을 선언했다. M의 방황은 예상보다 컸다. 막무가내로 집 앞에 찾아와 K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오열을 했다. 그때 M은 그를 알았던 3년 동안 가장 마르고 야윈 모습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단벌옷이 눈에 보였다. 슬펐다. 왜 또 저 옷이야? 왜 하필 단벌옷을 입고 와서 이렇게 매달리는 건데. K는 M의 모습이 슬픈 황소를 보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한 눈을 애써 참으며 끔뻑이는 황소, 아니 다시 그를 보니 황소가 아니라 늙은 노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거운 짐들을 싣고 다니다가 지치고 힘들어서 거죽만 남은 노새. 깡마른 그의 몸과 얼굴은 슬프기보다는 초라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K는 자기 자신마저도 노새가 될 것만 같은 공포마저 들었다고 한다. K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일어서서 뒤돌아 갔다. M은 멍하니 그렇게 돌아서서 가는 K를 지켜만 봤다.       


           M은 그 후로도 여러 번 K를 찾아왔다. 그러나 한번 달라진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M도 서서히 이별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이들은 헤어졌다. M과 헤어지고 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다. 모든 것이 편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모든 일상은 삐걱거렸고, M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시간이 흐를수록 깨달았다. 그만큼 그들은 서로에게 전부였다. 모든 것을 함께했던 그들이었기에 M의 부재는 아주 오랫동안 K의 삶도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M을 다시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M은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었다. M에 대한 그리움과 빈자리 때문에 K는 M과 닮은 사람을 만나기도 해 봤다. 물론 그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K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마음이 힘들 때면 자기도 모르게 M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면 M은 조용히 K의 얘기를 들어줬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냥 K의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M은 K와 헤어진 그 자리에 서있었던 거다.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 M 없이도 어느 정도 일상적인 생활을 할 자신이 생겼을 때쯤. K는 마음의 죄를 사죄하고 싶어졌다. 너무나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상처 주고 나서 사죄를 하는 건 도대체 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된 K는 M에게 사죄했다. 못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M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걱정하지 마. 괜찮아.”          


         그때 알았다. 이제 정말 M을 보내야 한다는 걸. 그를 위해서, 스스로를 위해서. 가끔 생각해 본다. 만약에 시간을 돌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M과 계속 만났을까? 그럴 수 없었을 것 같다. 헤어지고 나서 얼마 후 M이 전화를 했다.     

         

        “휴가 때마다 장미꽃 만드는 색종이를 사 간 거 기억나?”

        “기억나.”

        “내가 접으려고 사갔던 거야. 동기가 심부름시킨 게 아니라. 네가 장미꽃 천 송이 받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잖아.”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니. 언젠가 M이 K에게 소원이 혹시 있냐고 물어봤다.     

     

        “예쁜 장미꽃을 내 얼굴을 다 가릴 정도로 아주 많이. 한 천 송이쯤 받아보고 싶어. 장미꽃 천송이 낭만적이지 않니?”

     “휴가 때마다 가져간 장미꽃종이를 제대할 때까지 천송이를 접자고 시작했는데. 거의 다 접어가고 있을 무렵, 네가 이별통보를 했지. 하루하루를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어. 사람들이 내가 탈영을 하거나 자살을 할까 봐 걱정했지. 그리고 한 친구를 소개해줬어. 그 친구한테 네 얘기를 했어. 그냥 말없이 다 들어주더라.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온통 네 얘기였지만. 난 마음을 다질 수 있었어. 그리고 거짓말처럼 장미꽃 천송이를 제대하던 날 다 접었다. 천 송이 꽃다발을 그 친구에게 줬지. 그게 지금 내 여자 친구야.”          


           눈물이 났다. M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 때문에 흘러나온 눈물인지, 천 송이 장미꽃을 접고 있을 M이 떠올라 나온 눈물인지, M을 버린 것에 대한 후회의 눈물인 건지,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프기 때문에 더 큰 사랑이다. 오늘을 살고 있지만 가끔 어떤 날에는, 어제의 너에게로 돌아가 웃음 짓는다. 힘들고 아팠던 어제의 기억을 끄집어내면 되레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아이러니한 감정은 무엇일까.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절망스러운 M에게는 그의 마음을 그저 앞으로 조금만 끌고 가줄 믿음과 확신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짊어지고 가기엔 K는 약했다. 황소처럼 우직한 모습에 반해서 좋아했던 M이지만 이제 그는 우직한 황소가 아닌 힘에 버거워 간신히 스스로를 지탱하는 노새가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른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K는 M을 떠올리면 풋풋했던 스무 살로 돌아간다. 무엇을 주고받는 계산 하나 없이 자신이 싸 온 도시락과 편의점 500원짜리 물 한 병에도 하루 종일 행복할 수 있었던 K와 M.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주며 웃는 그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면서 미소 짓던 따뜻한 마음의 M이 떠오를 때면 힘든 일이 있다 가도 웃을 수 있다.      


        비록 아름답게 끝나진 못했지만 아프고 또 아프게 지나갔지만 이 진짜 첫사랑을 오래 두고 기억할 것 같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할 때 마음은 하나로 이어져있다. 그들이 이별을 말하게 될 줄 몰랐다. 푸른 저녁, 달빛처럼 떠나지 않고 영원히 빛날 것 같았던 그들. 달빛은 사라지고 암흑이 찾아왔다. 먼저 떠난 것은  K인데, 홀로 남겨진 사람처럼 슬펐다. M은 곧 K 안에 스며 어떤 이별도 한 사람의 이별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은 암흑 뒤에 찾아오는 여명처럼 언젠가는 새로운 만남을 기약한다. 이별을 마음에서 삼켜버렸다. 보고 싶은 그리움을 내뱉었다. “이제는 정말 너를 보낼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M과 이별했다.       

이전 02화 다시 사랑하지 않겠다는 달콤한 거짓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