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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혜 Aug 20. 2023

다시 사랑하지 않겠다는
달콤한 거짓말

(6). 모든 게 컸지만 마음은 작은 남자

        Q는 모든 게 큰 남자였다. 키도 크고, 발도 크고, 눈과 코도 컸다. 거시기는 더 컸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엉덩이가 참 컸다. 그와 포옹을 할 때면 순간적으로 씰룩거리는 펑퍼짐한 엉덩이 때문에 여자랑 포옹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Q는 항상 바빴다. 회사 일 때문에 바빴고, 강의 준비로 바빴고, 책출 판을 위한 글쓰기로 바빴다. 모든 것이 바쁜 그에겐 연애도 바빠야만 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Q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우리 악수하자. 만나서 반가워."

           “너무 많이 바빠서 잘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할게.”     


         마치 그의 바쁜 일상 속에 K가 이미 편입되어 버린 것처럼 일방적으로 교제를 선포했다. K는 바쁜 Q에게서 삶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며 잠잘 시간마저 부족했던 Q는 특이하게도 인형수집을 했다. 그의 차 안에는 앞뒤로 수많은 인형들이 마치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인형 사랑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작은 오피스텔엔 사람 물건보다 인형이 더 많았다. 바쁘단 핑계로 청소도 하지 않아서 인형 위로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지만 Q는 K가 청소해 주는 것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한 번은 K가 마음이 불편해서 화장실 청소를 해준다고 팔을 걷어붙였지만, 작은 화장실을 한 시간이 넘게 청소를 해도 오랫동안 묵은 때는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왜 이런 일을 해. 누가 해 달랬어?”     


    Q의 말이 더 큰 상처가 되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애정결핍이 있어. 어릴 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거든. 마치 아빠도 엄마도 없는 아이처럼 나랑 누나는 그렇게 자랐어.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죽고 싶었어.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알아? 그때 길거리 한복판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인형을 봤어. 생물도 아니고 무생물인데. 그로부터 위안을 받은 거지. 그때부터 인형을 모으기 시작했어. 나한테는 단순히 인형이 아니야. 내 삶이고, 내 친구, 내 삶의 지지대야”


     그는 큰 눈망울에서 덩그러니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K는 자신의 불치병인 모성애가 발동했다.      


            “내가 지켜줘야 하고,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구나."      


         K는 이때부터 Q를 행복하게 해 주겠단 이유로 그를 열심히 챙겨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Q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는 챙김이 오히려 성가신 사람이었다. 타인의 시간과 배려는 중요치 않다. 오직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만 중요할 뿐이다. 긴 키스 끝에 “이제 그만하자.” 라며 일어나서 몇 분되기도 전에 책상 앞에 앉아할 일을 다시 하는 그의 냉랭함(?)처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힘들다고 했잖아. 그래서 도와준 단 건데 왜 받아들이지 않는 거야.” 

            “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니까. 더럽고 정리 안 되고 편의점 도시락 따위나 먹는 나지만, 나한테는 그게 편해. 너의 선의가 반갑지 않다고.”          


         차가운 Q의 말에 K는 당황했다.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보살핌이 아니라 “방치” 이었던 거다. 마치 그의 수많은 인형들처럼. K는 반 농담 삼아      


            “나 한 개만 주라.”            


물어봤다. 분명 농담으로 물어본 건데 Q는 갑자기 심각해졌다.     


            “얘네 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인데 이걸 달라고 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당황한 K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애정결핍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건가, 내가 그의 애정결핍을 채워줄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저 Q의 마음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Q는 늘 마음이 분주했다. K와 함께 있으면서도 내일 해야 할 업무를 생각하느라 자주 멍하니 허공을 볼 때가 많았다.      


            “11시 반부터 1시까지는 사무실에 가서 내일 할 회의 준비를 해야 하고 2시엔 미팅이 있어. 4시부터는 강의 준비를 해야 하고. 5시엔 강의가 있지. 6시부터 임원회의가 있고 8시부터 10시까진 널 만날 거야. 그리고 새벽 1시까지는 오늘 쓸 원고를 써야 하는데 2시까지 쓸지도 모르겠어."    

            “밥은 언제 먹어?”

            “그 사이사이 먹는 거지. 못 먹으면 말고.”

            “왜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8시부터 10 시인 거야. 내가 그때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잖아."

            “그때밖에 시간이 없으니까. 정말 몇 번을 설명해야 알겠어. 1분 1초가 너무 바빠. 단 몇 분이라도 밀리면 모든 게 엉망이 된다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래도 저렇게 바쁜 와중에도 Q는 K에게 전화도 틈틈이 했고, 선물도 자주 줬다. 한 시간을 만나더라도 하루 일상 속에 K를 꼭 집어넣었다. 그러니 K로서는 Q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Q는 섹스를 잘했다. 모든지 열심히 해야 직성이 풀리는 Q는 그것도 열심히 했다. 마치 숙제나 보고서를 쓰는 사람처럼 어느 순서 하나 놓치지 않고 시간까지 계산한 듯 열정적이었다. 항상 섹스가 끝나면 물었다.       


            “나 오늘 어땠어?”

            “응 좋았어.”

            “그냥 좋기만 했어?”

            “최고였어.”

            “지금 몇 시야? 보고서 쓸 시간 된 것 같은데. 미안한데 집에 돌아가 줄래?”     


     숙제검사가 끝나면 애틋한 시간이 있을 거란 생각은 K만의 착각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Q는 다음 할 일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옷을 입는데, 벌써 뒤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부스스한 머리로 일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로 작은 노트북을 만지고 있는 Q의 모습이 불쌍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둘 다 아닌 건지 K는 헛갈렸다.       


            “나를 사랑하는 건 맞아?”

            “바빠 죽겠는데 왜 그런 쓸데없는 얘길 해.”

            “항상 나와의 시간은 뒤로 밀리고 그 짧은 시간마저 아깝다며 일을 하잖아.”

            “난 최선을 다하고 있어.”

            “최선을 다하다니. 사랑이 일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럴 거면 우리 헤어지자.”     


 K는 자신의 입으로 그런 말이 나온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 Q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노트북 쪽으로 시선이 갔다.     


           “왜 대답 안 해?”

            “…………”

          “대답 왜 안 하냐고.”

          “그런 말할 거면 가.”

           “이제 우리 끝이다.”

            “…………”     


        입술을 깨물고 짐을 챙겨서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끝이면 끝인 거지 뭐.’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는 몇몇 연인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 K는 생각했다.           


        ‘저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도 Q 하고는 누릴 수 없어. 다 끝난 거라고.’     


     이틀, 삼일이 지나도 Q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괴로웠지만 이제 정말 끝났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강하게 먹자 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밤, 전화벨이 울렸다. Q였다. K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문자가 왔다.     

        “전화 받아, 제발. 할 말 있어.”     


그리고 다시 온 전화. K는 전화를 받았다.    

 

        “무슨 할 말? 난 그날 할 말 다 했는데.”

        “내가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몰라. 그냥 다 잘못했어. 다시 돌아와 주면 안 돼? 너 없음 안 돼.”     

 

        며칠 도 안 돼서 전화를 건 Q를 보면서 K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한편으론 이 사람을 계속 내가 안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함께 들었다. 그러나 그런 망설임과 고민을 갖기에는 Q의 행동이 빨랐다. 마치 망가진 부품이나 엉망이 된 서류를 고치는 사람처럼 빨리 K가 자신의 삶에 다시 들어오기를 바랐다. K는 그렇게 Q에게 이끌려 갔다. 그렇지만 K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Q는 달라진 게 없었다. 예전처럼 시간대별로 스케줄을 정했고, 그 계획에 맞춰 K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Q의 업무 계획은 그의 방에 빼곡히 놓인 곰돌이 인형처럼 틈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날 K는 Q와의 섹스 중 벽과 책장에 세워진 인형을 보는데 숨이 막혔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자꾸만 숨 막히는 시간들이 계속되면서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Q의 오피스텔에서 쫓겨나듯 나와서 승강기를 탔다.  


        “잠깐만요.”     


하더니 큰 남자 손 하나가 승강기 안으로 쑥 들어왔다. 승강기 문을 다시 열자, 잘생긴 남자가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여기 사시나 봐요”

        “아뇨 친구가 살아서요.”     


         K는 옷매무새를 똑바로 하고 시선을 피해 승강기 숫자 쪽만 봤다. “잘생겼네.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그때였다.     


        “혹시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 같이 하실래요?"

        “네? 혹시 제가 혼잣말하는 거 들으셨어요?” 

        “아뇨. 뭐라고 하셨기에.”      


     K는 L과 커피숍에 갔다. K는 이래도 되는 건가. 한참을 생각했다.


         “뭐 어때. 일 밖에 모르는 놈”          

    

 L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면서 K에게 커피를 가져다줬다.     


            “아까 승강기에서요. 다음 승강기 타도됐었는데 그쪽이 예뻐서 잡은 거 에요”

            “네.”

            “알았어요? 너무 티 났나."

            “잠시 딴생각하느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L은 묻지도 않는데 술술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대학교 졸업 후 이제 막 군의관으로 제대하고 병원 개원 준비 중이라고 했다.      


            “초면에 실례가 안 된다면 재밌는 영화 한 편 볼래요?”          


         K는 어떻게 자신이 L과 영화를 보러 갔는지 그리고 그날 저녁 어떻게 그와 함께 밤을 보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Q에게서 여러 번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우리 오늘부터 1일이에요. 알았죠? 아 내가 나이 더 많으니까 반말한다. 알았지?”          

 

    L은 K에게 키스를 했다. K는 사람이 동시에 두 사람을 교차로 좋아할 수 있는 걸까 생각해 봤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뇌에 닿기도 전에 이미 그녀의 몸은 L을 원했다.     


            “헤어지자고 말하면 되지 뭐”     


 Q에게 전화가 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돼. 좀 만나자”

        “나 바빠.”

        “바빠? 내가 더 바빠. 그러니까 암말 하지 말고 나와.”        

   

    Q가 기다리고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면서 마치 큰 죄를 짓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K가 등 뒤에 와서 서 있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Q는 K를 기다리면서도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나 왔어”     

           “어… 어 왔구나.”     

           “일 아직 멀었어?”     

           “조금만 기다려”     


    K는 Q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어떻게 이별통보를 할까 고민했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있잖아. 나 할 말이 있어,”

           “무슨 말인데. 또 끝이네. 헤어지자. 이런 말만 하지 마라. 무섭다 무서워.”

           “그 말하려고 부른 건데.”

           “뭐!?”     


     Q는 헤어지려는 이유를 물었지만 K는 L 때문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Q가 만들어 놓은 삶의 그림 속에서 K의 행동은 이미 한 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K는 그냥 힘들어서 헤어지는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K의 어두운 표정을 읽고 Q는 말없이 냉커피를 들이켰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               

    

 Q는 처음 만났을 때도 악수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도 악수를 청했다.     


           “나랑 만나느라 고생 많았어.”

           “오빠…”

           “잘 살아. 아니 잘 살자!”     


     Q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K는 이상하게 눈물도 나지 않았다. 사랑했다면 눈물이 나야 옳은 것 같은데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얼마 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L을 만났다.

           

           “잘 헤어진 거지?”

           “응”

           “됐어 그럼.”     



     K는 L과 함께 새로운 길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 만남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유학을 결심한 L 때문이었다. L은  같이 떠나자고 했지만 K는 자신이 없었다. 떠나기 전날, L은 다시 한 번 물어봤다.     


           “정말 나랑 같이 갈 생각 없어?”

           “오빠 하나만 바라보고 떠날 자신은 없어.”     


        L은 더 이상 어떤 말도 물어보지 않고 떠났다. 그 이후로 둘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Q와 헤어지고 나면 시간의 여유도 많고 틀에 박힌 일정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헤어지고 나서 시간이 텅 빈 것 같았다. 하지만 L을 만나면서도 항상 뭔가 빈 시간이 있는 것 같고, 그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1년이란 시간 동안 Q가 만들어준 시간표가 몸에 배어버린 걸까. 어쩌면 이별은 이들의 처음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만남이 그렇듯, 사랑은 이별과 1+1처럼 늘 함께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는 Q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K는 덤덤히 이별의 아픈 시간들을 보냈다. 통실 통실한 Q의 엉덩이가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흘러간 것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지나간 것이 모두 그리운 것은 아니다. 이별을 선택한 것 같지만 아름답고 그리운 것을 등지고 예고도 없이 아프게 찾아오는 마음이 있다. 당신을 잊을 거라고 말했지만 아직도 그와의 이별 속에 머물고 있다. 이별도 그리움과 같아서 가시처럼 따갑다. 하지만 차가운 바람이 멈출 때쯤, 그를 잊을 것이다. 나를 보며 웃던 당신의 미소를 담고, 그의 포근한 품도 담고, 따뜻한 그 손도 담고, 차곡차곡 쌓인 모든 시간을 담아두었다. 오늘 K는 그를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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