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매사가 마음에 안 드는 남자
길을 가다가 우연히 인연이 될 사람을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세계 인구는 약 80억 4,531만 1,447명이다. 길에서 옷깃만 스치는 데도 거의 80억 분의 1 확률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 사람들 중에서 나와 인연이 될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옷깃만 스치는 가능성의 반이라고 해도 40억 분의 1이다. 이렇게 힘든 확률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만남이 결혼에 이르기까지 또 얼마의 확률게임을 해야 하는 걸까. K는 G를 소개팅으로 만났다. 아는 동생이 누나랑 비슷한 공부를 하는 형이 있다면서 만든 자리였다. 이 자리가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비슷한 전공 공부를 한다는 말에 친구라도 되지 않을까 하며 나갔다. K의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각이 지고 커다란 얼굴에 코주부 같이 큰 코와 그보다 더 큰 콧구멍, 작은 눈을 더 작게 보이게 하는 두꺼운 안경, 언제 이발을 했는지도 모르게 덥수룩한 머리, 이런 외모가 전혀 맘에 들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논문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정성껏 얘기해 주는 G가 고마웠다.
얼마 후 G는 K를 파티에 초대했다. K는 망설이다가 호기심에 파티에 갔다. K를 비롯한 여학생 둘과 G, G의 친구 넷이 저녁을 먹는 자리가 됐다. 제법 모양새를 갖춘 저녁상을 보면서 G가 조금 달리 보였다. 그 뒤로 G는 좋은 공연이 있다면서 K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K는 매번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표 값만 인터넷 뱅킹으로 부쳐주는 게 전부였다. 약속 장소에 못 나간 것은 G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그랬지만 조울증과 공황장애 때문에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랬다. 두세 번 약속을 펑크 냈으니까 G가 포기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또 다른 공연이 있다면서 전화했다. 듣고 보니 정말 좋은 공연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조울증이 발목을 잡았다. G는 표 값을 만나서 직접 줄 것을 요청했다. K는 울며 겨자 먹기로 표 값을 들고 극장으로 갔다.
“자요. 이제 됐죠?”
“그냥 가기 서운한데 맥주라도 한잔 마시고 헤어지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인데 맥주를 마시자니. K는 G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그녀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게 될 줄은 몰랐다. 조울증 환자들은 술을 마시면 행동이 과감해지고 의도하지 않는 쪽으로 상황을 만들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맥주가 한잔 들어가고, 술이 오른 K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G와 키스를 하고 있었다. 키스를 하면서도
“어 이거 아닌데…. 아닌데…”
를 속으로 외쳤다. 다음 날, G는 아침 일찍 전화를 했다. 만나자고. K는 다시는 G를 만나기 싫었다. 어제의 행동은 실수였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K는 어느새 G가 말한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까지만 만나고 그만 만나야지’ 다짐하고 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뜻대로 일은 흘러가지 않았다.
“왜 나는 안 되는 거죠?”
G는 K에게 대뜸 물었다.
"마음에 안 드니까요.”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요?”
“나이도 많고…. 그쪽도 나처럼 공부하는 사람인데, 앞으로 돈도 많이 못 벌 거 아니에요. 가난하게는 못 살아요 난.”
“가난하게 안 살면 되죠.”
“어떻게요.”
“내 앞으로 강남 50평짜리 아파트가 있어요. 거기 살면서 먹고살 것만 같이 벌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나한테서 멀어지지 말아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들어가서 살 집이 있단 말과 함께 왜 자신이 K와 결혼해야 하는지 한 시간이 넘게 열띠게 토로하는 그에게 어느새 설득 당했다. 그렇게 그들의 연애는 시작됐다. 처음엔 어떤 만남이든 다 그렇듯이 큰 부딪힘 없이 잘 지내는가 싶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서부터 그들의 싸움은 시작됐다. G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하루 종일 주장하고 다녔다. 한 번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 욕을 몇 시간이고 계속 반복적으로 했다. 도저히 듣기가 거북해서 이제 그만하면 안 되냐고 하자, G는 오히려 더 흥분해서 왜 욕을 못하게 하냐고 화를 냈다. 이런 것뿐만이 아니었다. 매 순간이 싸움이 돼 버린 것은 교제한 지 얼마 되지 못해서다. 하지만 이렇게 격렬하게 싸움을 하는 둘이 헤어지지 않고 만남을 유지해 간 것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하다. 한국과 영국이라는 거리상의 문제도 한몫했다. 잠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 양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그 길로 결혼 날짜가 잡혀버렸다. K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뭔가 싶고, 정말 옳은 건가 싶고. 결혼 날짜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싸움은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결혼까지 하게 된 둘. 정신을 차려보니 G와 결혼해 있었다.
이들은 심지어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싸웠다. 뭐가 그렇게 싸울 일이 많았던 건지…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딘가를 찾아 길을 걷고 있었다. 런던 외곽 도시인 윈저에 살 때였다. 윈저에서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크고 작은 여러 마을들이 나온다. 그리고 드넓은 초원에 사슴이 뛰어다니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초원을 따라 걷다가 길 건너편에 산딸기가 있는 걸 봤다. 산딸기가 얼마나 탐스럽게 많이 달려있던지. 하지만 그 딸기를 따러 건너편으로 가려면 외길다리를 건너가야 했다. 딱 보기에도 노후화된 다리는 왠지 으스스했다.
"그깟 산딸기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안 먹고 말지."
가도 다리를 건너가서 딸기를 따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겼다. 생각보다 긴 다리였기에 다리를 건넌다는 것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는데 G는 길을 건너자고 했다. 설마 다리가 무너지겠냐는 거다. 그래 뭐 죽으면 죽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고 다리를 무사히 건넜고 한아름 산딸기를 따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힘들게 딴 산딸기를 들고 K와 G는 큰 싸움을 했다. 딸기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종류에 대해 말을 하던 참이었다. G는 자꾸 산딸기, ‘라즈베리’를 ‘랍스베리’라고 우겼다. 아무리 ‘라즈베리’라고 말해도 ‘랍스베리’가 맞다고 했다. 이거 하나 때문에 싸운 시간만 몇 시간. 결국 K의 말이 맞는다는 걸 알게 됐지만 이미 서로 감정이 상해 있었고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따온 ‘라즈베리’는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탁자 위에 놓았다가 다음날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렵게 딴 산딸기, ‘라즈베리’를 한입도 먹지 못한 것이다. 아까운 산딸기는 금세 뭉그러졌고 빨간 열매들은 뭉그러진 립스틱처럼 하수구에 처박혀 곧 음식물 봉투에 들어갈 신세가 됐다.
그들의 싸움 속에는 섹스리스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컸다. G는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면 말을 흐렸다. K는 자신이 정상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지 않은 상태보다 더 비참한 것 같은 기분은 뭘까. 여자인데 여자 같지 않은 무생물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은 뭐지? G를 원망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싫어졌다. G에게 여자가 아닌 것 같아서. 한 입도 먹어보지 못한 라즈베리만큼이나 한 번도 하지 않은 섹스는 그녀를 풀이 죽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원시적 동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까? K는 자기 자신이 미개한 동물이 된 것 같아서 슬펐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인데, 막상 현실 속의 K는 아무것도 아닌 거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제 이름을 잃어버린 ‘라즈베리’ 같았다. 결혼생활을 하는 내내 아니 결혼을 하기 전부터 둘은 먹지 못한 ‘라즈베리’처럼 치열하게 싸웠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결혼을 7년이나 유지한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한번 싸우면 늘 한 명이 뒤로 넘어갈 때까지 싸움은 멈추질 않았다. 외나무다리를 건널까 말까를 토론할 때는 마음이 잘 맞던 이들은 이내 산딸기가 영어로 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 때문에 죽일 듯이 싸우다니.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우습다. 그냥 당신 말이 맞다 하고 끝내 버려도 될 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서로 옳은 것이 달랐다. 진실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내가 옳은 것은 절대 너에게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물론 이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부부사이의 관계를 틀어지게 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보다 힘들었던 건 G의 거짓말과, 모든 것을 대충 넘어갈 줄 모르는 그의 습관 때문에 매사에 싸워야 하는 이슈들이 너무 많았고 그로 인해 삶이 너무 피곤했다는 거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발짝만 양보했더라면 한 번만 상대방의 생각을 그냥 받아줬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내 눈앞에 펼쳐진 이야기는 하나다. 객관성을 갖고 아무리 본다고 해도 그것을 보는 우리의 눈은 주관적인 필터를 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객관적이라고 믿어버린다. 가끔 K는 생각한다.
"만약 랍스베리를 주장하는 G의 의사를 ‘그래 맞다’고 말해줬더라면 정치인을 한없이 비방하는 그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렸더라면 매사에 토론을 하려는 그의 행동을 그냥 동료 학자의 진지함으로 받아들였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헤어지지 않아도 됐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분명한 건 K와 그 사이에 벌어진 수많은 일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그 일들에 대한 K의 생각은 예전과 지금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일인데 왜 생각이 달라질까? 살아가면서 종종 만일 그때 그 시간이 다시 돌아오면 같은 선택을 절대 하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한 적이 몇 번 있다. 어떤 일말의 사건들은 끊임없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 문제는 K와 G가 인연이면 같은 문제도 좋은 방향으로 해석되는 것이고, 그들이 인연이 아니라면 해석은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에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는 건 둘은 인연이 아니란 뜻이다. 같은 일이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아주 큰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차분하게 해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답일까? 정답은 없다. 어떻게 해석하든 그건 당신의 마음이다. 하지만 반드시 내 마음이 편한 쪽이어야 한다. 내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이렇게 해야 일이 잘될 거 같다고 내 마음과 반대되는 해석을 하면 그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틀릴지도 모르지만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옳은 해석이다. 비록 결과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내 마음이 편한 길을 택해야 한다.
“흘러가는 대로 생각하라.”
이별은 파도처럼 밀려갔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서서 K는 흘러간 시간들을 주으려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남은 것은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알처럼 의미 없는 슬픔만 울고 있었다. 이혼한 것을 후회한 적 없냐고 종종 친구들이 묻는다. K는 없다고 말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종종 윈저성 앞 긴 산책로인 롱웍을 걸으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논문에 대해 G와 함께 토론을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토론했던 시간이 또 있었을까 싶을 만큼 그리움이 마음에서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삶의 해석을 갖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사건들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에픽테토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서서 K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 힘든 인연의 시작도 이렇게 허망하게 끝난다면 이 세상 어떤 인연도 영원할 순 없겠구나.'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K는 더이상 인연을 믿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를 믿고 사랑한다는 건 어두운 골목 길 어귀에서 혼자 그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오늘 K는 뒤돌아서서 골목길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묵묵히 걷기로 했다. 기다리는 이가 저 앞에 서있을 거란 기대는 이제 하지 않는다. 다시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