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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Jan 15. 2021

그들의 딸, 그들의 엄마

나는 누군가의 딸이라는 역할을 잘 연기했는가?

나는 누군가의 엄마라는 역할을 잘 연기했는가?

     

정호승 시인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책을 덮고 가장 먼저 해본 질문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한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일과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는 일이 똑같이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입장과 역할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무게는 결국 같다. 어느 것이 무겁고 어느 것이 가벼운지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으니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p535  

   

시인은 1950년 생이니 이제 자신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자신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 역할을 나누어 잘해 나가시겠지. 그렇지만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르겠다. 어떨 땐 아이같이 철없고 무모한 나에게 놀라고, 때론 한참을 늙어버린 마음과 생각에 실망하기도 한다. 도전을 망설이고 정체하려 하는 나에게 굴복하고 나를 찾는 일을 게을리하는 나에게 번번이 패배한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그래서 먼저, 이젠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정리된 나에 대해 정의해 본다.    

 

나는

머리로는 종종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고 그 세계에서 많은 것을 해본다.

마음으로는 슬픔이 나와 잘 맞아 홀로 길 걷는 아이만 보아도 내 마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운다.

손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과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지치지 않는다.   

  

안갯속에서 찾지 못했던 나를 더듬더듬 찾아내어보니 꽤 괜찮다 싶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고 그가 써 놓은 한 줄에도 눈물 흘리는 나는 이만하면 되었다.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지금처럼만 살아가면 좋겠고 조금은 더 그늘보다 햇살을 좋아하면 좋겠다. 그냥 내가 제일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를 정의해보고 내가 바라는 나를 세워보고 나서 나의 ‘나’들이 할 일도 정해 본다.

부모님께 살가운 딸은 아니지만 내 가정 내 건강 잘 챙기며 걱정 끼쳐 드리지 않으며, 겉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지키고 있는 엄마가 될 것이다.   

     

여인

    

가네 가네 한 여인이

풍랑 속을 가네

비바람 세파 속을 헤치며 가네

기우뚱기우뚱 풍랑은 쳐도

그 여인 어머니 될 때

바람 잦으리   

  

정호승 시인의 어머님이 쓴 이 시가 내 마음에 쓱 들어와 앉은 것은 이제 내가 그 마음을 아는 어머니가 되어 그런 것인지, 나를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를 돌아보게 되어 그런 것인지.


이제 알게 되었고 앞으로 더 깊이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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