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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Aug 30. 2022

암경험자 입니다만.

당신은 경험하지 말기를...

암 진단을 받고 난 후 유명한 유방암 카페에 가입을 했다.

거기선 치료가 종료되면 암환자보다는 암경험자로 부르길 바란다.

언제까지 환자는 아닐 테고 치료받고 나면 암을 경험해본 그냥 경험자.


돌이켜보면 지난 일 년이 그냥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암 진단 후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그들의 마음에 평생 보답하며 열심히 살아가겠다 굳은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 때면 지난 일들을 회상했다.

주로 남에게 상처 주었던 일, 거짓말, 이기적인 행동들이 떠올라서

아~ 내가 왜? 가 아니라, 내가 한 짓들에 대한 당연한 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책하고 후회하고를 반복했지만

남는 건 나에 대한 미움과 원망뿐이었다.


암은 그냥 암일 뿐이다.

내가 저지른 잘못의 결과도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벌도 아니다.


며칠 전 몸속에 있던 케모포트(항암치료제를 중심 정맥에 투여하는데 

사용되는 중심정맥관의 일종)를 제거했다.

수술방 앞에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그날 수술하는 몇 분과 함께 대기하다

순서대로 수술을 하고 나왔다.

부분 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누워 20분 정도의 간단한 수술을 하고 나면 끝이다.

마지막 순서였던 나는 처음 포트 삽입을 하던 때를 생각하며 덜덜 떨었는데,

앞서 나오는 분들의 표정이 밝아서 안도하며 들어갔다.

모두들 "다시는 병원 오기도 싫다"하며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그래 봤자 6개월에 한 번씩은 병원 와서 종합 검사해야 할 텐데 

그것만 아니면 나도 다시는 병원에 발도 들이기 싫다.


왼쪽 가슴에 13cm 정도의 상처, 왼쪽 옆구리에 마치 담배빵 같은 상처 2개,

오른쪽 쇄골 아래 6cm 정도의 상처, 그리고 아직은 짧은 내 머리카락과

항암제가 덜 빠진 부은 내 몸, 중단된 생리와 그로 인한 갱년기 증상.

맛있는 걸 먹을 때도 이건 먹어도 되나? 이러다 전이되면 어쩌지? 하며

숟가락을 놓기도 하고, 가끔씩 꿈에는 암이 전이되어 말기라서 곧 죽습니다! 라며

의사샘이 말하곤 한다.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여러 가지 후유증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야 하고 살아내야 한다.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세 아이들과 남편, 나만 바라보는 할머니.

내 삶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뒤돌아보며 아파할 시간이 없다.

그들의 삶에 따뜻함으로, 안식처로, 웃음으로 

나를 녹여 오래오래 기억되고 싶다.




#케모포트 #유방암 #항암치료 #치료종료 #삶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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