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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May 22. 2020

그 남자의 눈물 밥

그 남자는 열아홉 살 이후 처음 맛보았다 했다.

엄마 밥.

유난히 몸이 약했던 3대 독자 아들을 위해

밤낮으로 해댄 손맛 가득한 그 집밥.

   

요즘 말로 썸을 타는 단계에서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던 우리 집에 놀러 온 날,

마침 저녁시간이기도 하여 할머니가 끓인

된장찌개와 집 앞 텃밭에서 가꾸신 갖가지

나물 반찬, 작은 조기구이를 저녁으로 차려주었는데 그만 묵묵히 밥을 먹던

그의 어깨가 들썩임을 보고 말았다.

   

그 남자의 서른 살 여름,

처음 만난 나에게 눈물 꾹꾹 참으며 한 말들은

스물네 살 나에게 덜컥

결혼이라는 걸 생각하게 했다.

한 날 한 시 돌아가신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그리움이 더 컸던 그의 새까맣게 탄 속을

내가 박박 긁어 내주고 싶었다.


우리는 만난 지 6개월여 만에 나의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나는

갖가지 시어머니의 집밥을 겁도 없이 배워 나갔다. 살아계시지도 않은 시어머니의 집밥을 배우는 일은 참 많은 상상력과 도전과 실패가 필요했다.

   

워낙 정직한 성격의 남편은 표정에서부터 음식의 점수가 결정지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메뉴를 내어 놓을 때면 늘 긴장하였다. 남편과 두 시누이로부터 전해 들은 시어머니의 음식들이 가끔 거의 비슷하게 완성될 때면 참 뿌듯하고

왠지 그들의 빈 곳을 내가 채워주는 것 같아 기뻤다.

     

일 년에 여덟 번 있는 제사에는 항상 단골처럼 올라가는 메뉴가 있는데 생닭을 손질하고 오랜 시간 지켜보며 정성을 들여야 제맛이 나는 ‘간장닭’이다.

    

기름기를 꼼꼼히 제거하고 잘 씻은 다음 큰 냄비에 닭을 넣고 물과 간장, 소금, 올리고당을 넣어 끓이면서 계속 간장물을 닭에 끼얹어 줘야 한다. 다 익을 때까지 지켜보며 색이 까무잡잡하게 나올 때까지 만들려면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제사 지낸 후 닭을 내려 양손으로 잘게 찢어 남은 간장물에 바글바글 끓여 내면 하얀 쌀밥 위에 얹어 먹는 맛이 여느 닭 요리보다 맛있다고들 한다. 달콤 짭조름하고 손으로 찢어 가슴살까지 양념이 잘 배어들어 큰 장닭 한 마리가 순식간에 상위에서 사라진다.

    


시집와서 첫제사에 이 간장닭을 해보았는데 모두들 반응이 너무 좋아 뿌듯해하며 그 뒤로는 나의 필살기가 되었다. 특히 막내 시누이가 매우 좋아하는데 어머니 돌아가실 때 중학생이었던 그녀는 늘 이 간장닭이 너무 먹고 싶었다고 한다. 이제 서로 가족이 된 지 17년이 되어 마흔이 넘은 나이인데 아직도

제사에 오지 못하면 우스갯소리로

 “새언니야 간장닭 못 먹어서 병나겠다 택배라도 좀 보내주라.”한다.

    

내가 하는 집밥은 병약했던 자식을 생각하는

애끓는 시어머니의 모정 대신 이기도 하고,

그런 마음을 이어받아 남은 자식들에게

원망도 지나친 그리움도 걷어주려는

아내의 사랑이기도 하다.        

남은 나날들 동안 그에게 또 우리의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깊은 맛을 간직한 추억을 품은 집밥을

선물하고 싶다.


이제 그 남자는 눈물 밥 대신 아내와 세 아이들과

함께 매일 행복한 집밥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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